2019년 봄 118호 -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2] 근육장애인 K씨와의 인연 *윤샘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2]
근육장애인 K씨와의 인연
윤샘 | 화려하고 자극적인 행복보다는 단순하고 안정적인 행복을 추구하며 1일 1선을 실천하려는 사람
14년 전 근육장애인 K씨를 알고 나서 내 인생은 정말 많이 바뀌었다.
미래는 내 예상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내가 지금 장애인 활동지원사 일을 하고 있을 줄은 예전엔 상상을 못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서 누구든 그렇겠지만 어떻게 하면 이 사회에서 성공할까를 늘 계획하며 살았지만 정작 나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하지 않아서 회사를 그만두었고 우연히 K씨를 알게 되었다.
K씨를 통해 장애인야학을 알게 되었고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를 하는 장애인분들과 무보수로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야학 선생님들을 알게 되었다.
K씨는 선천성 근육장애라는 힘든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참 열심히 공부를 해서 고졸 검정고시를 패스했고 야학 선생님들이 만든 사회적기업 노란들판에 인턴으로 취업을 해서 정직원이 되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K씨가 대단하다. 그렇게 1년 6개월 정도를 K씨와 함께 보내고 나는 다시 예전 사회로 돌아왔다.
다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K씨와 인연으로 근육장애인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근육장애인 전국 정모에 봉사자로 참여하면서 협회 임원진 분들뿐만 아니라 전국의 많은 근육장애인분들과 친해졌다. 그러다 보니 근육장애에 대해 참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3000여 종류의 근육병이 있고 선천적인 경우와 후천적인 경우가 있으며 가장 중요한 건 추위와 감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추위와 감기는 근육병을 빠르게 진행시키기 때문이었다. 여유가 있는 분들은 겨울 동안 호주 같은 따뜻한 나라에 머물다 오시기도 한다.
그러던 중 내 몸이 아프기 시작해서 다시 회사 일을 그만두고 좀 쉬다가 예전에 장애인 활동보조 일을 했던 좋은 기억이 있어서 장애인센터를 갔는데 참.. 인연이란 게 이상하게도 또 다시 K씨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다시 만난 K씨는 여전히 노란들판에서 컴퓨터 디자인 일을 하고 있었다.
근육병이 많이 진행되어 있었지만.. 꿋꿋이 노란들판을 다니고 있었다.
현재 K씨는 12년째 같은 직장을 다니고 있다. (2019년 기준)
14년이란 세월은 K씨의 근육병을 많이 진행시켰고 예전보다 힘든 상황이 되었지만 K씨는 노란들판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노란들판은 K씨에게 삶의 거의 대부분이 아니지 않을까? 많이 아프면서도 회사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고 오늘도 열심히 일하는 K씨를 보며 나는 참 많은 것을 느낀다. 그리고 K씨의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니의 사랑이란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도 배운다. 세상의 많은 어머니들이 위대하지만 K씨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각별하다. 최근에 K씨 어머니는 K씨를 더 잘 돌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셨다.
K씨와 나는 오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데 세월이 갈수록 상대를 좀 더 이해해가는 것 같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배울 것이 있기에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오고 있다. 나는 K씨를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내가 참 많이 부족한 사람이란 것도 깨닫고 있다.
K씨를 통해 야학 선생님들, 근육장애인협회 분들과 봉사자님들 그리고 노란들판 직원들을 알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 공통적인 건 이분들이 모두 착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착하지 못해서인지 몰라도 난 착한 사람이 좋다.
난 K씨의 근육병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근육병은 참 힘든 병이지만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정말 많은 차이가 난다.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잘 관리를 하면 충분히 삶을 즐길 수 있다. K씨가 앞으로 더 건강관리를 잘해서 건강하게 오래 노란들판을 다니도록 나도 옆에서 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