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겨울 117호 - 빚 진 마음에 벽돌을 놓습니다 / 박정숙
[2018 여름 <노들바람> 115호 中]
빚 진 마음에 벽돌을 놓습니다.
대항로 시대를 여는 벽돌 후원인 이야기
박정숙│노들야학 한소리반 재학생이고 노란들판 상근 활동가입니다.
오십을 훌쩍 넘어 끄트머리에 살면서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면 그때 그 시간에 해야 할 것들을 놓쳐버린 순간은 지금도 떠올리면 아쉽고 후회되지만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 수년이 지나도 설핏 마음이 멈춰 진다는 것입니다. 30년도 전에 결혼을 하고 어려움이 많아 신혼여행을 미뤘습니다. 30년째 꿈만 꾸고 있던 여행을 제주도로 정하고 목적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여행을 안 다녀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몰라 우선 돈에 이름을 붙여 줬지요. 제주도 여행 기금.... 이렇게 하니 모여졌고 적지 않은 돈이 생겼지요. 이제 하나는 이루어지는구나. 그러나 이미 신혼여행은 아닐 테고 그때의 느낌도 아니겠죠. 놓쳐버린 것은 이러나저러나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것 말고도 이지가지 지나쳤던 순간들이 늘 마음을 헤집는 밤들이 잠 못 들게 하는 요즘 옛일 교훈삼아 비춰볼 때 놓치면 안 될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딱 그만큼이 지금 내게 있습니다. 한두 번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한두 번은 제주도를 생각하고 마음에게 물어 놓치지 말아야한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아직도 나는 가난하고 아프고 불편한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렇
지만 그것에 대해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몸과 마음, 인생을 바쳐 장애인차별철폐를 위해 싸워준 동지들 때문입니다. 자주 생각합니다. 2,30년 전부터 동지들을 알았다면 참 좋았겠구나, 장애인으로 살면서 권리와 인권을 주장하고 싸울 수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무기력하게 청년시절을 보낸 것이 후회되고 아쉽습니다.
투쟁하는 현장영상을 보며, 저분들이 나의 투쟁을 대신해주었구나 가슴 뭉클하고 고맙고 내가 바로 빚 진 사람이구나 생각합니다. 지금도 내가 있는 자리가 현장에 나갈 수 없기에 늘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내가 알지 못했던 그 긴 시간의 투쟁들이 모여서 어제보다 조금씩 나아진 세상에서 함께 있다는 것이 감동이고 고맙습니다. 온몸을 던져 싸우면서도 편히 앉아 일할자리
없이 이리저리 다니다 이제 드디어 다 같이 모여서 밥을 먹고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자리가 대학로에 마련되어서 기쁘고 감사하기에 머릿속 계산기를 버렸습니다. 우리는 이곳을 대항로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참 좋습니다.
과거의 암울했던 시절과 투쟁으로 이겨나가는 오늘 그리고 마침내 싸우지 않아도 되는 미래를 위해 동지들의 목마름을 풀어줄 한 모금 물에 한 방울이 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더 나이가 들어 후회하지 않으려고 주어진 기회를 덥석 잡았습니다. 지금은 한 방울이지만 두 방울 세 방울이 모여 한 대접이 되고 우리 모두가 목마르지 않는 세상으로 나아갈 거라 확신합니다. 나는 늙어가
지만 동지들과 함께 이곳에서 살붙이로 살고 싶습니다.
동지여러분 사랑하고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내가 알지 못했던
그 긴 시간의 투쟁들이 모여서
어제보다 조금씩 나아진
세상에서
함께 있다는 것이
감동이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