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겨율 113호- [노들아 안녕] 오랫동안 이 세계를 알아가 보고 싶다 / 유지영
[노들아 안녕] 오랫동안 이 세계를 알아가 보고 싶다
유지영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2017년 초겨울, 노들장애인야학에 교사로 자원했다. 그 계기를 말하자면 상당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할 것 같다. 특수 교육을 향한 관심은 대학서 배운 '특수교육학개론'이라는, 장애 학생을 가르치는 방법론을 다루는 수업에서 시작했다. 지금은 다른 업계에 몸을 담고 있지만 당시 한참 동안 열렬히 특수교육에 몰두했던 기억이 있다. 직접 특수학급 수업 참관도 해보고 비장애인 학생들보다 상대적으로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야 할 장애인 학생들에 더 눈길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노들장애인야학을 알게 된 건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를 통해서였다. 비마이너 후원 회원이었던 나는 비마이너의 독자 인터뷰에 응하며 차츰 노들야학을 알아갔다. 장애운동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박경석 선생님이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장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잠시 잦아든 불씨를 다시 활활 키우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노들야학 교사 대표인 김진수 선생님 앞에 앉아 신임교사 지원서를 쓰고 있었다.
직장과 야학 간 상당히 먼 거리도 '하고싶다'는 생각을 이기지 못했다. 위에 인용한 문장은 노들야학에서 교사가 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신임 교사 세미나' 자료집 맨 앞에 적힌 문장이다. 비장애인으로서 그저 장애와 장애학에 단순히 조금의 '관심'이 있다는 이유 말고도 노들야학에 되도록 오래 머물기 위해 내게는 좀 더 제대로 된 (정교한) 이유가 필요해 보였다.
사실 맨 처음에는 저 문장을 받고 막막했다.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들과 함께 했을 때 '나의 해방'이란 대체 뭘까?' 그저 선한 의지만이 아닌 '타인의 해방과 나의 해방을 연결시키려면 내가 여기서 무얼 해야 할까?' 여러 가지 물음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섞어놓았다. 며칠 전 그저 순수하게 '하고 싶다'는 열망만으로 덤볐을 때와는 달리 복잡한 질문으로 엉켰다. 다른 야학 교사들이 하는 수업을 들으면서 그 자리에서 수업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잘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언어장애를 가진 분들이 하시는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기도 힘들어 과연 내가 이 세계에 제대로 접속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던 것 같다. 장애인들만 있던 노들야학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 순식간에 이 길에 장애인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낯설었다. 많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비장애인의 세상,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 세상이 내게 조금 더 불편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내가 언젠가는 제대로 장애를 이해할 수 있고 그 넓은 세계에 제대로 접속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아마 결국 그런 것이 '나의 해방'이지 않을까? 나름대로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 글은 노들야학을 너무도 좋아하는 내가 야학에 던지는 일종의 '출사표'다. 좋은 교사가 될지 실은 아직도 자신이 없다. 그래도 치열하게 고민을 해보겠다고 말하고 싶다. 조심스럽게 한발자국씩 디디며 오랫동안 이 세계를 알아가 보고 싶다.
그게 '꼬꼬마' 신입 교사로서 노들을 안지 이제 몇 달 채 안 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