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겨율 113호 - [노들아 안녕] 드디어 페이스 친구가 되었다 / 윤민진
[노들아 안녕] 드디어 페이스 친구가 되었다
윤민진
2011년 4월에 청주에서 장애인활동보조인 교육을 받았다. 강사가 했던 말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저는 disabled person이라는 말을 싫어해요. differently abled person(다르게 기능이 발달된 사람)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내가 보조를 했던 첫 번째 이용자는 근육장애를 가진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었다. 그는 무릎을 거의 굽히지 못했고 낮은 문턱에 걸려서도 충격이 심하게 넘어졌다. 모두 내 잘못처럼 느껴졌고 그 후로 언제든 부축할 수 있도록 긴장하며 걸어 다녔다. 통합학교에 그는 비장애인과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수영장 안에서는 넘어져도 충격을 받지 않으므로 얕은 물에서 걱정 없이 운동할 수 있었다. 나중에 이 친구가 중학생이 되었는데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첫 번째 이용자 말고 남는 시간에 내가 보조했던 이용자가 한명 더 있었다. 그녀는 특수학교 고등과정을 마친 뇌병변 장애인으로 휠체어를 탔다. 도서관이나 병원에 동행했다. 그녀는 우울증때문에 외출하지 않는 날이 많았다. 승용차로 함께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이라도 내가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2012년 6월에 나는 환경단체에서 일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친한 형에게 말했더니 한번 해보라고 했다. 나는 두 명의 장애인 이용자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형은 활동보조 일은 나중에라도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환경단체 일을 시작하며 두 명의 이용자를 생각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나는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2년 동안 환경단체에서 일하고 나서 다시활동보조 일을 시작했다. 친구를 통해 서울에 있는 재야 인문학 연구소 선생님의 페이스북을 알게 되었다. 그분이 어느 날 박경석 고장 선생님의 글을 공유하셨다. 새롭게 보조하게 된 이용자는 경석 선생님과 비슷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산에서 등산로가 아닌 길로 내려오다가 추락해서 척추가 손상되어 휠체어를 탔다. 그 이용자는 다리의 통증을 덜기 위해 나에게 다리 운동을 부탁하였다. 과외를 하러 일주일에 한두 번 외출하는 것 빼고는 항상 집에 있었다. 경석 선생님과 노들이 생각났다.
2015년 3월에 위에서 말한 재야 인문학 연구소에서 요가를 시작했다. 김유미 선생님을 거기서 만났다. 얼마 후 급식후원주점에 오게 되었다. 그날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밤늦게까지 나누었다. 물티슈 한 상자까지 챙겨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2017년 6월 10일 급식항쟁 날에 충무아트센터에서 연극을 보느라 쿨레칸 공연을 놓치고 말았다. 노들 분들이 고생해주시는 덕분에 이번에도 좋은 시간을 보냈다. 박종필 감독님 추모 영화제가 끝나고 우연히 참석하게 된 비마이너분들 술자리에서 경석 선생님은 처음 만난 나에게 말씀하셨다. “언제 야학 교사 할 거예요?” 드디어 나는 선생님의 페이스 친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