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가을 112호 - [노들아 안녕] 함께 보내는 하루하루에 마음을 다하고 싶어요 / 최은화
[노들아 안녕]
함께 보내는 하루하루에 마음을 다하고 싶어요
최은화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노란들판 디자이너로 입사한 최은화입니다. 자기소개를 하려니 매우 쑥스럽네요. 하하. 노란들판에 입사한 지 이제 갓 한 달이 넘었어요. 아직은 새로운 환경에서의 일이 낯설긴 하지만 많은 분들이 너무도 세심하게 신경 써주시고 챙겨 주시는 덕분에 조금씩 적응해가며 지내고 있어요.
예전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팀장님께서 제게 지어주신 별명이 ‘나노변화’였는데요. 말수가 적고 새로운 환경이나 사람에 낯을 가리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누군가와 친해지는데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대신 가까운 사람과는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가는 편이고 또 친한 사이에서는 엉뚱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장난도 잘 치고 이야기도 잘 나누는 편이기도 해요.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거나 음악 듣는 걸 좋아해서 예전에는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들을 정도로 듣는 걸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가만히 멍 때리거나 하염없이 걷는 것을 좋아해서 조용한 곳으로 여행가는 것을 좋아하고 무엇보다 잠자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노란들판 디자이너 채용 공고를 보고 입사 지원했을 때 사실 이곳에서 일하기 위한 특별한 목표나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할 수 있는 회사는 어떤 곳인지 내가 이곳에서 디자이너로서든 아니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궁금했고 같이 일을 해보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 하나만으로 지원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곳에선 서로 경쟁하며 날을 세우지 않고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 배려하며 함께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을 품고 노란들판의 문을 두드렸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지적장애를 가진 이제는 가족과 떨어져서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생활하는 형제가 한 명 있어요. 노들에서 외치는 장애인시설 완전 폐지라는 구호를 볼 때 그리고 장애인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하고
마음이 조금 무거워지기도 해요. 이런저런 고민들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지만 너무 많은 생각들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것들, 지금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부딪혀가며 경험해 보고 싶어요.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꽃들이 햇살을 어떻게 받는지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외면한 채 한 곳을 바라보며
고작 버스나 기다렸다는 기억에
목이 멜 것이다.
- 조은 <언젠가는>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시구인데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많은 것들을 보지 못하고 놓아버리는 지금을 살기 보다는 내가 살아가는 지금, 내 곁에 함께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 하루하루에 온전히 마음을 다해 살고 싶다는 생
각을 해요. 언젠가는 지금의 시간들이 쌓여서 제가 좀 더 선하고 강인한 사람이 되고 싶고 진심을 다했던 사람이었다고 기억되고 싶은 바람이 있기도 해요.
입사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좀 더 노력해서 노란들판에서의 일과 사람들에 대해 알아가고 저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해나가고 싶어요. 거북이의 속도로 익숙해지더라도 앞으로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