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여름 111호 - [노들아 안녕] 알록달록, 다시 만나는 노들
[노들아 안녕]
알록달록, 다시 만나는 노들
이현아
안녕하세요. 노들야학 교사로 자원하게 된 이현아입니다. 제가 정말 어려워하고 자신 없어 하는 많은 것 중의 하나가 자기소개인데요. 이렇게나 큰 과제를 주시다니(...) 글을 쓸 때는 내 글을 읽어 줄 독자를 생각하며 쓰게 되는 것 같은데, 아는 얼굴들이 스쳐 지나가며 민망하기도 하고, 노들을 알고 좋아한 지 십 년이 넘게 흘러서야 “노들아 안녕”에 글을 쓰게 되어 새삼스럽기도 합니다.
저는 대학교에서 운동권 선배들이 주축이 된(?) 장애인권 동아리 활동을 하며 장애인운동을 접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노들야학이라는 공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간마련을 위한 천막야학 당시까지도 매체로만 접하다가 졸업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 되어서야 늦바람이 들어 이런저런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석암비대위 탈시설학교 문해교육에 보조교사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대학로라는 좋은 위치에 자리 잡은 알록달록 페인트칠을 한 예쁜 공간이 마음에 든 이유도 컸습니다.) 시설 장애인들과 직접 소통해본 경험이 처음이어서 편견과 두려움이 컸지만, 생각보다 정말 즐거운 사람들과의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십여 년이 지났지만, 며칠 전에 참관했던 수업에서 저를 기억해주셨던 동림 님 정말 감사합니다.ㅜ_ㅜ)
하지만 동시에 그 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현실을 마주함에서 오는 부끄러움과 분노의 감정이 복잡하게 엉켰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많은 장애인들이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살아왔고,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수의 장애인들이 집에서 혹은 시설에 갇혀 야학조차 나올 수 없는 상황에 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장애인으로서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지만,나는 그야말로 “나”의 문제밖에 알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노들야학은 “너”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게 해준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너”의 문제를 있게 한 상황은 나의 상황과 너무도 닮아있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자칫 사고라도 생기면 전적으로 부모님께서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를 쓰시다시피 하고서야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그렇게 편의시설이 전무했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부모님의 전적인 헌신으로써 마칠 수 있었던 나의 상황은 나의 장애를 온전히 내 가족의 책임으로 돌렸던 사회 구조의 산물이었고, 중증장애인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집이나 시설에서 사육당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상황 역시 장애인의 삶은 그러한 삶이어도 괜찮다는 사회적 폭력의 결과였습니다.
처음의 알록달록 예뻤던 공간이 지금은 세월의 흔적이 확연히 느껴지기는 하지만, 더욱 고민을 확장해나가고 익숙한 많은 얼굴들의 열정을 변함없이 느낄 수 있는 이 공간에서 함께하며, 변함없는 고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수업은커녕 개인 과외 경험도 한 번도 없는 터라 교사라는 역할이 많이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삶의 맥락을 가진 학생, 교사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어 많은 기대가 됩니다.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이런저런 고민만 많은 소심한 성격이라 앞으로도 많은 우여곡절이 예상되지만, 야학의 명성(!)에 민폐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