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자료실

조회 수 23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故박 종 필 감 독 을 추 모 하 며

당신의 삶은 
제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류미례 추도사

 

“박종필 감독은 장애인운동의 눈물과 한숨, 분노와 슬픔, 기쁨과 희망을 아는 유일한 감독이다. 그는 영화를 만들며 성장해왔고 카메라는 그 성장의 과정을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사한다. 그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세계는 이 땅 장애인권운동의 역사, 바로 그것이다.”

2009년에 박종필 감독의 장애인권 3부작 DVD 자켓에 제가 썼던 글입니다. 소개글을 부탁했던 박종필 감독은 제가 쓴 글을 보더니 “내가 그런 사람이냐?”하며 씩 웃었습니다. 얼마 후 DVD가 출시됐는데 표지 인쇄가 잘못돼서 제 이름 한 줄만 빠져버렸습니다. 괜찮다고 했는데도 미안해하더니 박종필 감독은 결국 제 이름만 다시 인쇄를 해서 일일이 딱지를 붙여줬습니다.


박종필 감독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문장 하나라도 수고한 사람의 이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 선배라서 저는 박종필 감독이 부르면 어디라도 갔습니다. 박종필 감독을 따라 장애인미디어교육을 처음 시작했고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같이 만들었고 홈리스행동에서 미디어교육을 했습니다. 종필 선배가 부르는 곳에 가면 늘 제가 바치는 수고보다 제가 얻는 양분이 더 많았습니다. 박종필 감독은 평생 그렇게 저의 길잡이였습니다.

 

박종필_류미례1.jpg


그러다가 2015년,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회원으로서 세월호 1주기 추모행사를 촬영하던 저는, 지나가던 박종필 감독을 발견하고 인터뷰를 해야 하니 잠깐만 촬영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늘 박종필 감독이 저를 이끌었는데 그 날 처음으로 제가 박종필 감독을 이끌었습니다. 그렇게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활동을 시작한 후 박종필 감독은 참 많은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김관홍 잠수사가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까지 함께 있었고 그래서 펑펑 울면서 추모영상을 만들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반복되는 깊은 슬픔이 박종필 감독을 아프게 했을 것입니다.


박종필 감독이 간암으로 투병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저는 너무 미안했습니다. 2015년 4월에 우리가 우연히 만나지 않았다면 박종필 감독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슬픔과 후회와 미안함에 힘들어하다가 장례식장에서 송윤혁 감독의 말을 들었습니다. 박종필 감독의 다이어리에 이런 글이 씌어 있었다고 합니다.


“세월호를 만났다. 세월호는 나에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 곁에서 늘 카메라를 들고 있었던 박종필 감독의 마지막 선택지는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세월호 가족들 옆이었습니다. 암 때문에 조금씩 말라가면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고, 암 진단을 받고 카메라를 내려놓은 후에는 암과 싸웠습니다. 투병 중이던 박종필 감독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박감독은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지 마라. 때가 되면 내가 말할 테니 너는 말하지 마라.”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은 말하지 말라는 것뿐이었는데 그 말을 평생 나를 이끈 선배의 유언으로 삼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제 지성아버님께 남긴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기력이 다한 몸으로 한 단어 한 단어를 힘겹게 뱉으며 박종필 감독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형, 우리는 뭐하는 사람이지? 우리는 감동을 주어야하는 사람이야”


종필 선배, 당신의 삶은 제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지성아버님께 남긴 말을 제게 주는 유언으로 삼겠습니다.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당신의 빈자리가 너무 크지만 당신이 남긴 말과 당신이 남긴 영화로 이 슬픔을 견뎌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생 많았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저희들이 못 다한 일을 이어갈 테니 편히 잠드세요.

박종필_류미례2.jpg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320 2017년 여름 111호 - [장판 핫이슈] 문재인정부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완전 폐지 ‘천명’하라!   [장판 핫이슈] 문재인정부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완전 폐지 ‘천명’하라!   조현수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달리기와 등산을 좋아하고 ... file
319 2017년 여름 111호 - 두들러(Doodler) 활동기 두들러(Doodler) 활동기 김필순 | 사용한 적 없는 새 낙서판. 이 판으로 낙서하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 박경석은 개가 아니라 인간이다” 한국판 ‘나... file
318 2017년 여름 111호 - 그 사람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사람 얼마나 외로웠을까 홍은전 | 노들장애인야학 전 상근활동가. 사회생활 대부분의 시기를 노들야학 교사로 살아서, 노들야학을 빼면 자기소개하기가 매우 ... file
317 2017년 여름 111호 - [노들아 안녕] 알록달록, 다시 만나는 노들 [노들아 안녕] 알록달록, 다시 만나는 노들 이현아    안녕하세요. 노들야학 교사로 자원하게 된 이현아입니다. 제가 정말 어려워하고 자신 없어 하는 많은 것 중... file
316 2017년 여름 111호 - [노들아 안녕] 나는 센터판 활동가입니다 [노들아 안녕] 나는 센터판 활동가입니다 이은애    안녕하세요~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판의 신입 활동가이자 노들의 신입활동가인 이은애입니다.^^ 저는 센터판에 ... file
315 2017년 여름 111호 - [노들아 안녕] 왁자지껄 데굴데굴 우장창창 노들 [노들아 안녕] 왁자지껄 데굴데굴 우장창창 노들 김지윤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다섯 학기 동안 노들야학 청솔1반 학생분들과 함께 공부하고, 놀고, 투쟁했던 ... file
314 2017년 여름 111호 - [노들아 안녕] 노란들판에 날리는 편지 [노들아 안녕] 노란들판에 날리는 편지 이승헌 | 오래오래 전 에바다 투쟁을 계기로 노들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사)노들의 사무국장으로 일하다, 최근 인강원... file
313 2017년 여름 111호 - 故박종필 감독을 추모하며  故박종필 감독을 추모하며   그의 카메라는 가볍게 스치는 영상이 아니라, 얼굴 여윈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되어주었습니다.     박 종 ... file
312 2017년 여름 111호 - 나의 금관예수 박종필 감독 故박 종 필 감 독 을 추 모 하 며 나의 금관예수 박종필 감독   박경석 추도사   박.종.필. 감독은 나에게 금관예수입니다. 나는 이 사회에서 거절당한 사람이었... file
» 2017년 여름 111호 - 당신의 삶은 제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故박 종 필 감 독 을 추 모 하 며 당신의 삶은  제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류미례 추도사   “박종필 감독은 장애인운동의 눈물과 한숨, 분노와 슬픔, 기쁨과 희... file
310 2017년 여름 111호 - [형님 한 말씀] 사랑하는 박종필 동생에게 [형님 한 말씀] 사랑하는 박종필 동생에게 김명학 | 노들야학에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종필동생 잘 지내고 있지? 동생이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서 ... file
309 2017년 여름 111호 - 와빠? 노들! 와빠? 노들! 7월의 노들 활동가 소통모임   서기현 | 어머니의 태몽에서 백사로 분해 치맛속(?)으로 들어가 태어나서 그런지 입만 살아있고 팔다리는 못 씀. 역시... file
308 2017년 여름 111호 - 평화로운 밥상을 위하여 급식항쟁 평화로운 밥상을 위하여 급식항쟁   김유미 | 야학에서 하루 두 끼 밥을 먹는다. 급식에 고기반찬이 나오면 난감해한다. 뭘 먹고 뭘 안 먹든, 먹는 일은 윤리적이... file
307 2017년 여름 111호 - 여랏차차! 노란들판 여직원 여기여기 모여라!   여랏차차! 노란들판 여직원 여기여기 모여라! 여직원모임 ‘여기모여(女氣모여)’   고수진 | 생각이 큰 디자인을 꿈꾸며 오늘도 작은 손을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file
306 2017년 여름 111호 - '공생공장'을 말해줘~   ‘공생공장’을 말해줘~ 해니 | 노란들판 안에서의 닉네임은 ‘햇’입니다. 트위터의 자기소개 문구가 ‘움직이고 싶은, 고운 삽질하고 싶은 사람’인데, 느리지만 계... file
305 2017년 여름 111호 - [교단일기] 교사, 학생이 함께 배우는 과학수업   [교단일기] 교사, 학생이 함께 배우는 과학수업 허신행 | 노들야학에서 불수레, 한소리반 학생들과 함께 과학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 관련 출판사... file
304 2017년 여름 111호 - [나는 활동보조인입니다] 우연히 찾아온 인연 [나는 활동보조인입니다] 우연히 찾아온 인연- 윤지민 |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판에서 ‘근로지원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윤지민입니다. 좋아하는 것은 낮잠 자기와 ... file
303 2017년 여름 111호 - 김포에도 장애인야학이 생겼습니다!   김포에도 장애인야학이 생겼습니다!   조은별 |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 라고 생각하는 도전 의식이 많습니다. 내가 머무는 곳에서 활동하고 싶어 노들장애인... file
302 2017년 여름 111호 - 낭독 모임 '술독'   낭독 모임 '술독' 최한별 | 노들야학 음악반 교사이자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늘 서두르기만 해서 요즘엔 좀 느긋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한별 쌤, 같...
301 2017년 여름 111호 - 노들장애학궁리소, 너는 내 운명 노들장애학궁리소, 너는 내 운명 '푸코와 장애, 그리고 통치', '장애학의 오늘을 말하다' 세미나 참여 소회 한낱 |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동료들의 은혜... fil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 54 Next
/ 54
© k2s0o1d5e0s8i1g5n. ALL RIGHTS RESERVED.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