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여름 111호 - 당신의 삶은 제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故박 종 필 감 독 을 추 모 하 며
당신의 삶은
제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류미례 추도사
“박종필 감독은 장애인운동의 눈물과 한숨, 분노와 슬픔, 기쁨과 희망을 아는 유일한 감독이다. 그는 영화를 만들며 성장해왔고 카메라는 그 성장의 과정을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사한다. 그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세계는 이 땅 장애인권운동의 역사, 바로 그것이다.”
2009년에 박종필 감독의 장애인권 3부작 DVD 자켓에 제가 썼던 글입니다. 소개글을 부탁했던 박종필 감독은 제가 쓴 글을 보더니 “내가 그런 사람이냐?”하며 씩 웃었습니다. 얼마 후 DVD가 출시됐는데 표지 인쇄가 잘못돼서 제 이름 한 줄만 빠져버렸습니다. 괜찮다고 했는데도 미안해하더니 박종필 감독은 결국 제 이름만 다시 인쇄를 해서 일일이 딱지를 붙여줬습니다.
박종필 감독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문장 하나라도 수고한 사람의 이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 선배라서 저는 박종필 감독이 부르면 어디라도 갔습니다. 박종필 감독을 따라 장애인미디어교육을 처음 시작했고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같이 만들었고 홈리스행동에서 미디어교육을 했습니다. 종필 선배가 부르는 곳에 가면 늘 제가 바치는 수고보다 제가 얻는 양분이 더 많았습니다. 박종필 감독은 평생 그렇게 저의 길잡이였습니다.
그러다가 2015년,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회원으로서 세월호 1주기 추모행사를 촬영하던 저는, 지나가던 박종필 감독을 발견하고 인터뷰를 해야 하니 잠깐만 촬영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늘 박종필 감독이 저를 이끌었는데 그 날 처음으로 제가 박종필 감독을 이끌었습니다. 그렇게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활동을 시작한 후 박종필 감독은 참 많은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김관홍 잠수사가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까지 함께 있었고 그래서 펑펑 울면서 추모영상을 만들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반복되는 깊은 슬픔이 박종필 감독을 아프게 했을 것입니다.
박종필 감독이 간암으로 투병중이라는 얘기를 듣고 저는 너무 미안했습니다. 2015년 4월에 우리가 우연히 만나지 않았다면 박종필 감독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슬픔과 후회와 미안함에 힘들어하다가 장례식장에서 송윤혁 감독의 말을 들었습니다. 박종필 감독의 다이어리에 이런 글이 씌어 있었다고 합니다.
“세월호를 만났다. 세월호는 나에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 곁에서 늘 카메라를 들고 있었던 박종필 감독의 마지막 선택지는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세월호 가족들 옆이었습니다. 암 때문에 조금씩 말라가면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고, 암 진단을 받고 카메라를 내려놓은 후에는 암과 싸웠습니다. 투병 중이던 박종필 감독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박감독은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지 마라. 때가 되면 내가 말할 테니 너는 말하지 마라.”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은 말하지 말라는 것뿐이었는데 그 말을 평생 나를 이끈 선배의 유언으로 삼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제 지성아버님께 남긴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기력이 다한 몸으로 한 단어 한 단어를 힘겹게 뱉으며 박종필 감독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형, 우리는 뭐하는 사람이지? 우리는 감동을 주어야하는 사람이야”
종필 선배, 당신의 삶은 제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지성아버님께 남긴 말을 제게 주는 유언으로 삼겠습니다.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당신의 빈자리가 너무 크지만 당신이 남긴 말과 당신이 남긴 영화로 이 슬픔을 견뎌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생 많았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저희들이 못 다한 일을 이어갈 테니 편히 잠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