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여름 111호 - 평화로운 밥상을 위하여 급식항쟁
평화로운 밥상을 위하여
급식항쟁
김유미 | 야학에서 하루 두 끼 밥을 먹는다. 급식에 고기반찬이 나오면 난감해한다. 뭘 먹고 뭘 안 먹든, 먹는 일은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호프 준비팀장을 맡아서 많이 헤맸다.
노들엔 휠체어와 활동보조인이 없이 일상에서 일상적인 일들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혼자서 밥을 먹지 못하는 이들에게 밥이란 ‘그림의 떡’이었고, 가난한 이들에게 한 끼 밥이란 돈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밥이란 ‘혼자만 잘 먹으면 무슨 재민겨’ 죄책감이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서로’뿐인 우리는 이 상황을 함께 변화시켜보기로 했습니다. 2014년 4월 7일 학생과 교사가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교실 한 편에 큰 냉장고를 들이고, 싱크대와 조리 기구를 설치했습니다. 식판을 사고, 숟가락을 사고, 그렇게 주방을 갖추는 데만도 이미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갔습니다. 안정적으로 밥 해주실 분도 필요하고, 매일 먹을 식재료도 필요합니다. 아직 부족한 게 많고 언제까지 가능할까 불안한 밥상이지만 일단 함께 먹을 수 있는 밥상 구조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조금 좋습니다.
지원금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급식이라 일단 밥값은 한 끼 3,000원입니다. 노들도 ‘친환경 무상급식’하면 좋겠는데, 그런 날이 올까요? 벌써부터 밥값이 부담스러워 식당 근처를 배회하는 사람이 눈에 보입니다. 마음 편히 함께 밥 먹고 너도나도 행복해지는 그런 날이 올까요? 우리의 밥상을 함께 지켜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건 2014년 노들의 이야기다. 그때도 급식비를 구해보려고 이런 글을 썼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건 밥값. 2017년 급식 4년차인 지금 노들의 밥값은 사정에 따라 다르게 매겨진다. 한동안 급식 교실 앞에서 어슬렁거리던 학생들이 눈에 밟혀 학생 밥값은 3000원에서 1000원이 되었다가 작년부터 0원이다. 몇 년 만에 장족의 발전을 한 기분이다.
현실은 기분과 달랐다. 야학 통장은 자꾸만 빵꾸가 났다. 곳간은 돌아보면 비어 있다. 급식을 시작한 뒤로, 야학은 매년 ‘급식비 마련’ 후원주점을 연다. 우리 급식의 의미를 알리고, 계속 돈을 벌어 내고, 밥상을 유지시키는 것이 야학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하루에 백 명 가까이가 밥을 먹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마어마한 일이다. 요즘 야학 상근자들은 집회 마치고 허겁지겁 돌아와 배식을 하고, 수업 시작하기 전에 부리나케 식판을 닦는다.
노들은 올해도 급식비 마련을 위한 후원주점을 열었다. 촛불 대선을 고려해 급식 날짜를 조금 미뤄, 6월 10일로 잡았다. 올해는 610 민주항쟁 30년이 되는 해. 라임을 맞춰 우리 호프 이름은 급식항쟁이 되었다. 노들야학의 중증장애인 학생들이 굶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게 만드는 이 노력이 민주주의의 과정이자 과제라고 생각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밥이 민주주의다” 했다. 민주주의 투쟁.
6월 10일 급식 한마당은 성황을 이뤘다. 이번에 돈 못 벌면 학생들 밥 굶는다는 단순명료한 생각으로 후원티켓을 돌렸다. 야학뿐만 아니라 전체 노들 단위가 움직여 조직적으로! 표를 팔았다. 야학 1층 주차장에서 몇 년째 호프를 열다보니, 일도 알아서 척척 굴러가는 느낌적 느낌…이 있다. 준비팀장이 어리바리하니, 일꾼들이 알아서 척척…
호프가 열리는 야학 1층은 평소엔 주차장이다. 천장이 좀 낮고 조명이 밝지 않은 편이다. 낮과 밤의 풍경은 차이가 큰데, 밤엔 좀 음침한 느낌도 있다. 예전에 야학 주차장에서 스릴러 영화를 찍기도 했다. … 아… 낮은 한가하고 괜찮음… 아무튼 이런 공간에서 호프를 연다는 것이 웃길 때가 있다. 주차장이라니. 좀 기괴한 주인장이 연 페스티벌 같은 느낌이 있다.
큰 사고 없이 잘 놀다 가 주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당일에 오지 못했어도, 응원해 주시고, 마음 보태주신 분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한다. 덕분에 노들은 올해도 걱정 조금 덜고 밥상 앞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모두 밥 잘 챙겨먹고 힘내서 투쟁합시다!
<재밌는 일 몇 가지>
*주차장이 비좁아 테이블 놓을 곳이 필요했던 우리는, 야학 바로 앞 차도를 ‘차 없는 거리’로 우리 맘대로 선포하고 테이블을 깔았다. 누가 뭐라 하면 어떻게 하지 걱정을 했으나, 아무도 불만 없네.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공연을 한 평화의나무합창단이 새하얀 티셔츠 그대로 급식항쟁 호프에 왔다. 우리의 주차장에서 선물처럼, 노래도 불러주셨다. 이들 외에도 민주항쟁 행사에 갔다가 급식항쟁 호프에 와서 뒤풀이하는 분들이 종종 있었다.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호프 분위기에 맞춰 ‘학문의 포차’를 열었다. 맨날 책 보고, 글 쓰고, 번역하는 이들이 살신성인 느낌으로 책을 팔았다. 자신이 쓴 책을 ‘무려 시가’에 내놓고, 민아영 선생의 비(마이너스)급 디자인 실력에 자신들 얼굴을 내맡기는 대범함을 선보였다. 요상한 웹홍보물은 궁리소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야학 건물 3층이 회의실 대여 업체이고, 5층이 고시텔이라 엠프를 빵빵하게 틀 수 없었다. 공연 행사를 1시간만 딱 하기로 약속하고, 엠프도 쓰지 않기로 했다. 엠프 안 쓰는 대신 하자작업장학교 바투가타 팀이 와서 수루두를 심장 울리게 둥둥 울려주고, 쿨레칸은 젬베로 사람들을 봉인 해제시켰다. 다들 어찌나 춤을 춰대는지…
*안주가 바닥을 향해 가던 시간. 지나가던 동네 사람이라고 밝힌 분이 여기가 뭔가 싶어서 들어와 봤다며 혼술을 하다 가셨다. 종로구 대표 축제가 되는 건 이제 정말 시간 문제인가? …
*호프 준비 회의를 하는데, 센터판 권 모 사무국장이 노들 멤버쉽 티가 갖고 싶다고 했다. 행사 이름 같은 거 쓰지 말고, 노들 활동가들이 입을 티를 맞추면 좋겠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노란들판에 디자인을 요청하고, 티셔츠를 맞췄다. 가슴팍에 이렇게 썼다. ‘노란들판의 농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