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여름 111호 - 노들장애학궁리소, 너는 내 운명
노들장애학궁리소,
너는 내 운명
'푸코와 장애, 그리고 통치', '장애학의 오늘을 말하다' 세미나 참여 소회
한낱 |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동료들의 은혜로 안식년 중이다. 인권교육운동에 청춘을 바쳤고, 청소년 인권과 페미니즘의 만남에 관심이 많다. 겁 많고, 걱정 잘한다. 겉보기와 다르다. ‘장판’을 떠올리면, 나를 웃음 짓게 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 근황을 물어올 때, 빼놓지 않고 전하는 소식이 있다. 바로 안식년을 보내고 있다는 것. 안식주도, 안식월도 아닌, 안식년! 이 단어 하나를 뱉을 때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되곤 한다. 마음 가는 대로 올곧이 쓸 수 있는 1년의 시간. 여느 인권단체들처럼 내가 일하는 인권교육센터 ‘들’ 역시 늘 재정난에 허덕인다. 그러나 사람을 남기는 운동을 하고 싶다는 의지, 쉼(멈춤)없이는 활동(움직임)도 없다는 깨달음을 그러모아 안식년 제도를 일단, 도입했다. 한 명의 온전한 쉼을 보장하고자 남아있는 활동가들이 노동/품을 조금씩 늘린다. 이 아름답고도 슬픈 제도를 지탱하기 위한 서로의 노고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제대로’ 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알람은 끄고 생활의 속도 늦추기,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던 것들 즉각 실행하기, 스쳐 지나갔던 것들 찬찬히-깊이 들여다보기. 그러던 와중에 마치 ‘운명’처럼 궁리소를 만났다.
수많은 마주침이 켜켜이 쌓이다보면 때때로 운명 같은 순간이 선물처럼 찾아온다. 김도현 연구활동가로부터 궁리소 창립 소식을 들었을 때, 딱 그런 느낌이었다. 어떻게 딱 내가 쉬는 타이밍에 궁리소가 생길 수 있나! 나와 장애학의 첫 번째 마주침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권운동을 시작하며 장애해방학교를 수료했는데, 때마침(!) 『장애학 함께 읽기』가 출간돼 여러 활동가들과 함께 이 책을 공부했다. 장애학의 첫인상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장애학의 탄생과 전개는 여성학(페미니즘)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했다. 세상과 불화하는 존재가 더 이상 나를 문제 삼지 않고, 세상을 문제 삼기 시작할 때 강력한 힘을 가진 학문이 탄생한다. 페미니즘은 내가 나의 삶-고통-모순을 들여다보고, 나를 배반하지 않는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하는 인식의 창이자 언어다. 장애학 역시 시설에 유폐된 채 ‘널브러진 몸’이길 강요받는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든든하며, 예리한 사유의 도구가 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첫 만남 이후 인권운동을 이어가며 장애학과 장애운동이 분리되지 않는 순간들을 수없이 마주쳤다. 살기 위해 투쟁하는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장애학 공부였다. 그이들이 힘겹게 토해낸 이야기들을 뭉뚱그려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촘촘한 언어의 그물망을 짜는 느낌으로 이따금 출간되는 장애학 책들을 읽었다. 장애학에 물들어갈수록 페미니즘이 ‘여성’들만을 위한 학문이 아니듯, 장애학 역시 정상성의 세계로부터 밀려난 수많은 존재들을 연결시키는 공부임을 알아갔다. 안식년 동안 좀 더 마음을 기울여 공부하고 싶은 주제로 페미니즘과 장애학을 꼽은 이유다. 가장 바깥으로 밀고 나가는 사유의 힘. 이러한 공부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잔혹성을 직시하고, 잔혹성을 지탱시키는 주체로서의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이기 때문에 심적인 진통이 뒤따른다. 진통 자체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같이 진통을 느끼고 증상을 이야기할 동료들이 있다면 통증을 견뎌볼 힘이 난다. 믿을 만한 동료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궁리소를 떠올렸고, 올 봄에 시작한 두 개의 세미나에 합류했다.
두 주 먼저 시작했던 푸코 세미나의 기억부터 떠올려본다. 거의 3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참여 신청을 했다. (전원 참여가 성사된 적은 한 번도 없다ㅋ) 다양한 위치에서 장애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 모인 덕분에 텍스트 안팎을 넘나드는 토론이 가능했다. 박정수 연구활동가가 번역 출간을 준비 중인 책 『푸코와 장애, 그리고 통치』(Foucault and the Government of Disability)를 매개 삼아 푸코 철학과 개념을 통해 장애 이슈를 살피는 작업을 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긋는 지적/권력적 실천, ‘비정상’의 위치를 할당받는 장애인의 삶, 신자유주의 통치성과 장애의 재배치 등등 몇 글자로 요약하면 한없이 어려워
보이는 이야기들을 장장 10주간 나눴다.
10주의 시간을 거치며 넌지시 알고 있던 개념에 대한 이해가 더 촘촘해진 것 같다. 이를 테면, 그동안 내가 푸코의 개념을 ‘써먹는’ 경우는 주로 근대식 학교교육을 비판할 때였다. 학교 규율권력의 작동 방식은 무엇이며, 이를 통해 어떠한 (정상화된) 신체가 만들어지는가. 학교 사회를 유지시키는 권력관계의 양상(교사-학생 권력 분석)은 어떠한가.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며 학생인권의 근거와 언어를 보충했다. 꾸역꾸역 학교 안에 밀어 넣어진 존재들, 소위 ‘정상’ 대중에 대한 통치 테크놀로지 분석에 집중해왔다. 익숙한 분석에 장애의 축을 덧대자 또 다른 풍경에 조명을 비출 수 있었다. 비정상으로 걸러진 몸들은 교육이 아닌 ‘치료’로 분리/고립되었다. 그보다 낫다고 얘기되는 정상화-통합 담론은 교육(학교) ‘안’으로 장애인을 포함시켰지만, 기준 자체를 폐기하진 않음으로써 교묘한 배제를 만들어내고 있을 뿐이다. 권력-신체-정상성의 개념을 교육/학교가 아닌 의
료/병원으로 이동해 적용해 볼 수도 있다. 참여자 중 한 분의 발제가 유독 기억에 남는데, 그 분은 자신의 어렸을 적 재활병원 경험(의사들에게 전시되는 몸)을 바탕으로 의료 권력이 어떻게 훈육 테크닉을 통해 ‘유순한 신체’를 만들어 가는지 말씀해주셨다.
3번에 걸쳐 짧고 굵게 진행한 『장애학의 오늘을 말하다』 세미나 또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오랜만에 고도로 집중해서 생각하고,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곱씹고, 다시 질문을 벼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장애담론이 걸어온 길을 역사적/쟁점적으로 서술한 논문들을 지금-여기의 맥락에서 다시 읽어보는 시간이었다. 초창기 장애학에서 가장 중요한 인식론적 틀이었던 사회적 모델, 손상과 장애의 이분화된 구분 등이 지금은 비판적으로 재검토되고 있다. 재검토의 맥락은 모두 장애인의 삶으로부터 비롯한다. 특정한 담론으로는 더이상 설명할 수 없고, 포착할 수 없는 장애인의 삶이 있을 때 장애 담론은 요동치며 변화한다. 장애학의 존재 이유 자체에 운동성이 있고, 그런 점에서 장애학의 변천사는 운동의 역사를 동시에 담고 있었다.
‘한 쪽 편만 든다’고, ‘편향적’이라고, ‘반쪽의 이야기만 담고 있다’고 페미니즘이나 장애학을 학문으로 정의하는데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권교육을 할 때도 늘 ‘모든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야지 한쪽 입장만 이야기 하느냐’는 상투적 반론을 만난다. 마지막 3회차 세미나 때 고병권 연구 활동가의 질문으로 시작해 ‘마이너리티 연구와 당파성’에 대해 나눈 대화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누구나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하지만, 만약 그 법 자체가 폭력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잣대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 잣대를 사용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이 무의미해지는 영역이 있다. 힘과 힘이 맞서는 영역, 흔히 우리가 ‘투쟁’이라고 말하는 영역일 것이다. 당파성은 내 입장만 맞는다고 억지를 부리는 상황이 아니다. 존재를 건 싸움에는 ‘합의’가 있을 수 없다(우리가 장애등급제 ‘개선’이 아니라 ‘폐지’를 외치는 이유). 학문과 삶이 분리/괴리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학문이 누구에게 유리한가?’, ‘누구의 입장에 설 것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할 수밖에 없다.
고병권 연구활동가는 위의 논의 속에서 ‘시좌’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시좌란 보는 위치를 뜻한다. 피해와 고통의 지점에서 바라보는 것. ‘누가 제일 고통스럽고, 누가 제일 피해자인가’를 가름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고통을 셈하는 것(이해관계)이 아니라, 고통의 자리에서 인식과 사유를 시작하는 것. 아직은 어렴풋이 느낌만 오지만, 이 어렴풋함이 내가 장애학 공부를 지속하는 힘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싶다.
궁리소 홈페이지에 있는 소개 글 중 나는 이 문장을 가장 좋아한다. “노들장애학궁리소는 우리 사회의 장애인들이 던진 무수한 말들, 때로는 고함으로 때로는 신음으로 때로는 몸짓으로 던졌던 그 말들, 대부분 사회화되지 못한 채 바깥에서만 맴돌
다 사라져버린 그 말들 위에 세워졌습니다.” 서러움과 비장함이 서려 있는 동시에 묵직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인권이 말하는 책임(responsibility)이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함’이다. 이 책임을 함께 나누는 길에서 이따금 궁리소와 운명처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