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봄 110호 - 지난 겨울 진짜 멋졌던 우리, 촛불들
지난 겨울 진짜 멋졌던 우리, 촛불들
비록 0좀이 생겼지만, ‘값진 승리’다
김필순 | 자꾸 쪼그라진다는 말을 듣지만 얼굴과 몸은 쪼그라져도 마음만은 쪼그라지지 말자!
오늘 아침에도 연고를 바르고 나왔습니다. 이놈의 O좀은 사라지는 듯하다 다시 나타납니다. 연고를 바를 때마다 ‘에잇-’ 하고
중얼거립니다. 내 생애 첫 O좀을 가져다준 박근혜에게 저는 아주 유감스럽습니다. ‘사람이 일이나 행동이 못마땅하고 섭섭한 느낌이 있다’라는 뜻이 ‘유감스럽다’라고 하니 그렇다면 저는 박근혜에게 유감스러운 게 아니라 짜증이 나는 것인가 봅니다. 어쩌면 영원히 저와 함께 살지 모르는 O좀을 볼 때마다 박근혜가 생각나겠지만 촛불승리한 우리, O좀을 볼 때마다 승리한 우리를 기억하는 것이 더 좋겠지요. ^^
오랫동안 나갔고 오랫동안 추웠던 작년 겨울을 광화문에서 견뎌내기 위해 두 겹씩 겹쳐 신은 양말이 무좀의 원인이었습니다. 얼마나 추웠는지 기억하시죠? 온몸에 핫팩을 붙이고 나갔던 날, 그래도 안 되겠다 싶어 가는 길에 내복을 사 입던 날, 펑펑 내리는 눈길에서 엉덩방아를 찧던 날... 수많은 날들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우리의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 거 같아 억울한 생각도 들지만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잊지 못할, 다음 생에서도 경험할 수 있을지 모를 값진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지금이 2017년 4월이니 작년 11월부터 시작된 광화문 국민촛불은 반년을 되돌려 생각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매주 비슷비슷한 날들이었지요. 이번 주는 나가야지? 이번 주는 쉬자? 아니야 오늘은 비가 와서 사람들이 적을 거야, 가야지? 아니야, 오늘은 눈이 와서 사람들이 적을 거야, 가야지? 아니야, 오늘은 너무너무 추워 사람들이 안 나올 거야, 가야지? 광화문에 나가도 못 나가도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반년이었습니다. 그런 반년을 보내고 탄핵인용이 발표된 날 수고했다, 고생했다 서로에게 말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 토요일 함께 보낸 동지들과 서로를 안아주며 톡톡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못내 아쉽지만 그럴 날이 또 있겠지요.
매주 국민촛불(국민이라는 한정된 뜻을 확장해 이후에는 범국민행동으로 이름 변경)이 열리는 광화문에 나갔지만 우리는 광장보다 해치마당과 농성장에 대부분 있었습니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선전전을 하고, 모금을 하고, ‘박근혜퇴진역’ 스티커를 시민들에게 나눠줬습니다. 해치마당에서 광장의 소리를 듣습니다. 김제동의 강연도 듣고, 김C의 노래도 듣고, 답답하면 광장에 올라가 광장을 한 바퀴 돌고 오기도 하고... 우리의 진지를 알리기 위한 활동들로 광장의 많은 일들을 보고 즐기지는 못해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문화제가 시작되는 저녁시간이 되면 이른 오후부터 시작한 선전전으로 지쳤고, 휠체어를 이용하는 동지들은 광장이 사람들로 옴짝달싹 못하기 전에 자리를 떠나야했습니다. 그래도 해치마당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박근혜퇴진역’ 스티커를 나눠줄 때 신이 났습니다. 촛불 광장으로 들어서는 길목, 광화문역은 이제 “박근혜 퇴진역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아! 우리 진짜 멋지다’ 생각했습니다. 인터넷 카페나 기사에 달리는 댓글을 잘 안보는 편인데 포털사이트 Daum(다음) 메인 화면에 한참 걸렸던 ‘박근혜퇴진역’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한참을 쳐다보았습니다. 정말 멋진 이름입니다, 박근혜 퇴진시키고 역사명을 박근혜퇴진역으로 바꿉시다, 기발한 이름입니다... 하나씩 읽어가면서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너무 좋아서 5호선 광화문역의 모든 출구에 퇴진역 스티커를 다닥다닥 붙이고, 출근길 지하철 역사에도 붙이고, 광화문에는 스티커 리뉴얼 작업도 했습니다. ^^
청와대로 향하는 효자동 행진코스를 길은커녕 발 디딜 틈도 없던 그 코스를 수십 대의 전동휠체어와 현수막, 피켓을 실은 대형마트 카트를 끌며 행진했던 날이 첫 100만 명이 모인 날이었지요?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촛불집회 랩하는 장애인 할아버지의 감동 자유발언’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를 뜨겁게 달군 교장쌤의 본무대 발언이 있었던 날은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세계장애인의 날 맞이 1박2일 농성투쟁으로 해치마당 경사로에 헌법 제11조 1항 <누구든지 ... 차별받지 아니한다>라는 대형현수막을 내건 날이기도 합니다. 그 컸던 현수막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이 헌법이 현실에서 지켜지기 위해 우리가 광화문역 지하차도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어제가 세월호 3주기 4월 16일이었습니다. 지나가는 차량번호가 0416이라 다시 한 번 쳐다보는 숫자가 되어버린 세월호의 진실을 위해서 우리, 광화문에 나갔습니다. 민중총궐기와 메이데이에도 우리, 광화문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우리, 광화문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을 5년째 하고 있습니다. 그제께(4월14일) 광화문사거리 고층빌딩 광고탑에 투쟁사업장 노동자 6명이 무기한 고공농성을 시작하였습니다. 광화문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기한농성을 시작한 2012년 8월 21일 광화문과 박근혜를 탄핵한 2017년 3월 10일 이후 광화문은 다릅니다. 정말 폐지할 수 있을까 막막하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대선후보들이 약속하였습니다. 우리의 끈질긴 투쟁과 우리가 광화문에서 켰던 촛불의 힘으로 만든 약속입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고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가 폐지되는 날 우리 광화문농성장을 정리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혁명의 3대 적폐인 수용시설 폐지와 탈시설-자립생활권리를 쟁취할 때까지 광화문농성장을 이어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오지 않겠습니까? 언젠가는 올 그날이 오면 박근혜 탄핵인용이 결정된 그 순간 하지 못한 서로를 세차게 끌어안고 우리에게 서로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 수고했어. 정말 고생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