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봄 110호 - 별이 된 현이에게...
별이 된
현이에게...
2016년 12월 22일 우리 곁을 떠난
탈시설자립생활운동가 박현을 추모하며
미소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은 사람 그 자체만으로 존엄하다는 가치를 실천하고자 합니다. 특히 시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고자 활동합니다. 이 공간에서 9년째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이야.
작년 추운 겨울에 당신과 우리는 이별을 했는데 어느새 거리에 벚꽃이 피었다.
당신이 떠난 지 4개월이 되어 간다. 근데 현이야. 아직도 실감이 안 나.
『노들바람』에 너의 추모글을 부탁받았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기억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추모 글을 쓰겠다고 했는데 그 이후로 많은 시간들을 한 자도 적지 못한 채 잠이 든 시간이 더 많았어. 아직도 믿겨지지 않나봐. 당신이 이곳에 함께 있지 않는다는 것이.. 자꾸 눈물이 나서 한 자도 적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어. 당신을 처음 만난 그날부터, 마지막 만났던 탈시설권리선언대회까지 함께했던 순간들이 생각났어. 권리선언대회 준비로 바쁘다고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고 생각하니 아직도 가슴 한 켠이 먹먹해. 그때도 너는 감기로 목소리조차 잘 나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아픈 너에게 괜찮냐고.. 병원에는 갔냐고, 약은 먹었냐고 물어보질 못했어. 마지막일 거라 전혀 생각지도 못했거든, 너무 미안해.
2009년 당신을 처음 만났고, 당신을 만나러 가는 꽃동네에서 최종훈 동지도, 송국현 동지도 만났는데, 지금은 모두 별이 되어 당신과 같이 있구나. 다 잘 있지?
시설에서 20년여 동안 살다가 나와 자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하늘로 떠난 이들이 생각이 났어. 국현형, 종훈형이 생각나면서 너무 마음이 힘들더라고.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고 왜 이렇게 빨리 떠났는지, 너무나 짧은 삶을 살다 떠난 이들이 생각나면서 원통하기도 하고 하나님이 있다면 따지고 싶기도 하고,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은데, 봄에 벚꽃 구경도 가고, 친구들과 놀러도 가고, 아직 시설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멘토역할도 하고, 그이들의 자립생활을 지원할 든든한 멘토로 먼저 탈시설한 선배로 역할을 찾아가던 당신이 삶이 생각나면서 여전히 마음이 아프고 어디에선가 당신이 나타날 것만 같아. 얼마 전 집회에서 당신과 닮은 사람을 보고 순간 당신이 아닌가 내 눈을 의심하며 그이를 한참 쳐다봤던 기억도 난다. 어디선가 ‘누나’하고 말을 걸어올 거 같은데... 만약 당신이 지금 이곳에 있다면 우리는 더 많은 활동을 이야기 하며 탈시설한 동지들과 재밌는 이야기를 나눌 텐데...
어제 저녁 핸드폰 카톡방에 메시지 하나가 남겨졌어. “박현님이 나가셨습니다” 이 문구를 한참을 바라보다가 또 울고 말았어. 당신이 떠나기 전 열심히 활동했던 탈시설 당사자 모임 벗바리 카톡방이었는데, 이음센터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탈시설한 동지들에게 모임을 알리고 당신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공간이었는데 이곳엔 이제 당신이 없어. 내 핸드폰엔 지우지도 못하고 이제 걸 수도 없는 전화번호가 하나 더 생겼어. 국현형처럼, 종훈형처럼...
현이야! 너는 어때? 남겨진 사람들은 당신을 생각하며 때때로 울기도 하고 당신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며 지내고 있어. 그곳은 어떠니? 우리 지켜보고 있어? 지영언니, 국현형, 종훈형, 준혁이, 지우, 지훈이 다 만났어? 다 잘 있지? 그곳에선 아프지 않고 자유롭게 있는 거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되어 우리 보고 있는 거지?
현이야!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기억하니? 아마 2009년 여름, 이음여행에서 처음 만난 거 같아. 시설에서 나오고 싶다고 했었어. 그때 발바닥은 법상에는 있지만 전혀 작동되고 있지 않은 사회복지서비스 변경 신청권 소송을 준비하고 있었어. 시설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되는 반면 시설에서 나오려고 할 땐 아무런 제도도, 정책도 없는 상황에서 시설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서비스를 변경해달라고, 너무나 당연한 권리를 보장하라고 음성군을 상대로 소송까지 하는 깡다구 있는 당신이었지. 아마 그만큼 당신에게 탈시설은 절실했었으니까. 소송 이후 시설에서 온갖 회유와 협박을 버티며 3년을 더 시설에서 있었어만 했어. 너무나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음을 알지만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 당장 나와 살 집도, 생계비 보장도 확실하지 않아서, 선뜻 너에게 나오자고 말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3년을 버티고 마침 음성군도, 정부도 아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진행한 사업을 통해 서울로 2012년 1월 6일, 16년의 시설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나오던 날이 기억난다. 16년 동안 살았던 시설에서의 너의 짐은 고작 몇 개의 박스가 다였고, 옷가지 몇 개뿐인 짐을 보고 있으니 참, 슬프더라. 한 대의 리프트차에 당신과 국진형이 타고 짐을 싣고 눈 쌓인 꽃동네를 나오던 그날 기억이 생생해. 그때 정말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어.
하지만 시설에서 나온 후에 삶이 녹녹하지만은 못했어. 자립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란 기대와 다르게 턱없이 부족한 활동보조 시간 때문에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었고, 활동보조인이 갑자기 집을 나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던 날도 있었고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며 보낸 시간들. 그때도 당신은 시설에서 나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이제 곧 나아지겠지, 내가 더 열심히 투쟁해야겠다며 더 투쟁의 거리로 나왔던 당신의 모습이 생각나. 가족에게 부담되기 싫다고, 자립해서 잘 사는 모습 부모님에게 형제들에게 보여줄 거라고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갈 거라고 이야기했던 말들. 하지만 부양의무제 때문에 다시 한 번 기초생활수급권자에서 탈락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었어. 국가로부터 1년 치 통화기록과 6개월간의 통장 거래 내역 제출을 요구 받으며 가족과의 단절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들. 당신은 국가가 국경 없는 이산가족을 만들어 내는 거라고 이야기하며 부양의무제의 문제를 더 알려내기 위한 투쟁의 거리에 서있었지.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열정적인 현아, 정말 열심히 살았다.
장애가 있다고 가난하다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시설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 사회에 그게 아니라고,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탈시설 권리가 있음을 온몸으로 알려냈던 현아! 탈시설 이후 장애인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투쟁의 자리에는 항상 당신이 있었는데 너무나 짧은 생을 살다 떠난 당신이 너무 그립다.
이제 사진으로밖에 너를 볼 수 없구나.
시설에서 나와 6년 동안 치열하게 투쟁하며 싸웠던 삶! 일상에서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서,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활동했던 탈시설 자립생활 활동가 박현의 삶! 잊지 않을게.
“사회구성원은 탈시설에 연대하라”라고 외쳤던 당신의 삶을 잊지 않을게.
탈시설 자립생활 활동가 현아! 너무 고생했고 당신과 함께한 시간 행복했어. 매순간 치열하게 살았던 현아! 이제 편히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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