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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율이의 조기교육 이야기

 

 

 

허신행 | 2010년 학교 졸업 후 상근자로서 줄곧 노들야학에 있다가 올해 2월 독립(?)을 하였다. 현재는 주식회사 생각의 마을에서 사회복지 관련 출판, 연구 컨설팅(개인 및 단체의 연구 작업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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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11, 2016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 다섯 살 난 아들 율이와 함께 시청 광장을 찾았다. 아이와 함께하는 퀴어축제는 이번이 두 번째다. 작년 퀴어축제에서 피켓을 들고 행진했던 것을 상당히 즐거워한 아이는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고(예전 사진을 보고 기억한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다), 이번에도 같이 가겠느냐는 나의 제안에 흔쾌히 찬성했다.


세발자전거에 짐까지 잔뜩 이고 간 그 날, 하필이면 소나기가 쏟아졌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아닌 타 단체 부스에 황급히 몸을 피하고 있다가, 비가 어느 정도 그치자 밖으로 나왔다. 아직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 K신문의 모 기자가 다가와 인터뷰를 청했다. 기자는 우리 둘의 사진도 찍고 축제에 참여한 이유 등에 대해서 간단하게 인터뷰도 진행했다. 그때만 해도 3분간 진행한 짧은 인터뷰가 몰고 올 파장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축제에 참여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부터 지인들에게 카톡이 왔다. 너와 네 아들이 기사에 나왔다고. 처음에는 신문 기사에 아들과 함께 실리게 된 것이 은근히 기쁘기도 했고, 추억거리로 나중에 아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댓글들이 달리면서 산뜻했던 기분은 이내 사라졌다. K신문 사이트에서는 댓글이 별로 없었는데, 네이버에는 120여 개, 다음에는 3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그리고 댓글은 대부분 악플이었다. “정신 나간 부모들이 애들을 망치고 있다”, “나중에 지 아들이 며느리로 머슴아 데리고 왔을 때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인가?”, “미친것들... 애 데리고 글케 갈 데가 없나?!”와 같이 부모인 나를 비롯한 축제 참여자들과 성소수자들을 비난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사실 이것보다 수위가 높은 것도 많았으나 지면에 옮기기엔 부적합한 것들이라 걸러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도 한 소리를 들었다. 인터뷰 내용 중에 아이의 조기 교육차원에서 함께 나왔다는 발언을 해서 혐오 세력에게 더 욱하는 마음을 들도록 한 것 같다, 아이와 내 사진이 노출되어서 나중에 해코지를 당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는 취지의 이야기였다.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가 되었지만 괜히 내 잘못인 것처럼 이야기해서 뭐라 대꾸를 해주고 싶었다. 물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들의 악플이 나에게 상처를 주지는 못했다. 오늘 일이 실수로 느껴지지 않았고 그들의 반응이 오히려 조금 재미있기도 했다. 뻔한 스토리와 무논리로 혐오의 감정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에 대응하는 것 자체도 무의미하거니와, 내가 듣고서 상처를 받을 만한 지점이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꿰뚫는 그런 글은 없었던 것이다. 아이가 악플의 대상이 된 점은 난감한 면이 없지 않으나 잘못한 바가 없으니 문제없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는 있으나, 마음 한 편에서는 수구 기독교 세력의 퀴어축제 반대집회에서 혐오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있던 아이들을 바라보던 나의 안타까운 시선을 우리 아들도 받았을 거라 생각하니 묘한 기분은 든다.


여러 사람의 우려와 안타까움에도 나의 조기 교육은 계속될 예정이다. 이는 아이가 어떻게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부모의 교육관과 연관이 깊다. 나는 아들이 모두가 함께 즐거운 세상에서 살아갔으면 좋겠고,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은 만남을 갖는 것 같다. 성소수자도 만나고, 장애인도 만나고, 투쟁하는 노동자도 만나는 것이다. 그들이 딴 세상에 사는 이방인이 아닌 내 친구가 되고 내 동료가 되면, 자연스레 그들과 연대하고 같이 잘 사는 방안을 궁리하기 마련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지금까지는 나름의 효과가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아이가 노들야학에 여러 차례 놀러 오고 학생이나 교사들과 만나다 보니, 장애를 특별함이나 거리감 없이 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끔은 자기도 휠체어를 타고 싶다는 말로 아빠의 말문을 막히게 하기는 하지만, 그 당황스러움은 곧 아이가 잘 크고 있다는 안도감으로 바뀐다.


2주 정도 jtbc뉴스를 보더니 박근혜 대통령 당장 나가라는 구호를 자기도 외치고 싶다는 이야기를 몇 차례 했다. 지난 1112일 총궐기에 데려간다고 약속했는데, 출발 직전부터 열이 38도 넘게 오르는 바람에 함께 가지 못했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단단히 채비하고 민주주의 조기 교육을 하러 현장 학습에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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