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가을․겨울 109호 - 모꼬지의 변
모꼬지의 변
조은별 | 술을 매우 좋아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노들은 점점 술을 마시지 않는 추세. 모꼬지 때 내 마음만큼 술을 궤짝으로 샀다가, 엄청 남았다. 노들의 많은 사람들이 술을 즐기고 자주 마시는 문화가 생기기를 바라며, 또 다음 술 마시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술이 필요할 때, 다들 만납시다.
7월의 한여름 밤, 여느 해와 다름없이 모꼬지를 떠난 것이 이렇게 불길한 일의 시초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7월 15일부터 17일까지의 2박 3일 모꼬지 일정, 2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바다가는 해. 밥을 좋아해 밥팀을 맡아 몇 달간 재밌게 모꼬지 준비를 했다. 룰루룰루~ 지난번 바다 모꼬지 평가를 떠올리며, 더 맛있는 밥과, 더 즐거운 놀이와, 더 편안한 숙소를 위한 물품들을 사면서, 바다가 얼마나 재밌을까 마음속으로 마구 상상했다.
함께 떠나는 80여명의 친구들도 그런 마음이었겠지. 보고 싶은 친구들과 곧 만날 약속을 하며 나는 선발대로 떠났다. 먼저 해수욕장 앞 방갈로에 자리를 잡고 모래 범벅이 된 방바닥을 수도 없이 닦으며 친구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밤에 술이라도 한 잔 하려면 히야시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얼음도 아이스박스에 넣어 두었다. 옥수수 한 포대와 감자 한 박스를 사서 쪄먹을 시간만 기다렸다.
대학로에서 본진의 출발 시간은 오후 6시. 10시쯤 도착하겠지 싶어 어슬렁거리며 마중을 나가는데, 빗방울이 후두두둑 떨어졌다. 아니, 후두두둑이 아니라, 와르르르라고 해야하나. ‘오 마이 갓!’ 아까 낮에 선발대에서 우스갯소리로 ‘비오면 본진은 출발하지 않고 우리만 여기서 2박 3일을 보내면 된다’고 했는데, 비는 본진이 도착하자마자 쏟아져 내렸다. 리프트도 내리고 짐도 내리고 비를 피하며 모두 혼비백산이 되었다.
해수욕장 측에서 제공한 이불은 100개. 그러니까 이불로 요까지 겸해 1인당 1개로 다 해결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사실 잠자리에 눕기 전까지는 별다른 생각을 못했는데, 아뿔싸, 비가 오는 바람에 넘나 추워진 것. 이불 하나로는 얼어 죽겠다고 해서 어떤 사람에게는 2장씩 나눠주고 나니, 몇몇 교사에게는 돌아갈 물량조차 없었다. 명희랑 나는 간신히 어디서 이불 하나를 구해서 둘이 배만 덮고 있었는데, 춥기도 하고 빗물로 지붕이 무너질까봐 걱정이 되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가방에서 있는 옷 없는 옷 다 꺼내 세 겹 네 겹으로 입었지만 한겨울 농성보다도 더 추운 상황이었다. 게다라 여름 바캉스라고 다들 반팔과 반바지만 준비해 와서, 아무리 껴입어도 팔다리에서 닭살이 돋아나 닭이 되어버릴 지경이었다.
내일 아침에 다시 버스를 불러 돌아가야 하나, 지붕이 무너지면 어떻게 대피하나 생각하다보니 새벽이 밝았다. 사실 안 밝았다. 비가 너무 와서 해도 뜨지 않았다. 그때 태풍이 왔었나? 아침에 확인해보니 파도가 너무 높아 해변은 아예 접근 금지였다. 바다를 보러 2년 만에 왔는데,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것은 고사하고 해변에서 파도조차 바라볼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간신히 근처 식당에 주문해둔 밥을 찾아서 아침을 먹고 난 후 방갈로 안에서 건강권 강의를 들었다. 이 강의도 햇빛 좋을 때 모래사장에 둘러앉아 들었으면 정말 좋았으련만, 비는 천막을 뚫고 들어올 듯 무자비하게 내렸고 우리는 다들 많이 슬펐다. 바다에도 못 들어가고, 사방이 오지인 이곳에서 갈 곳이란 없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방갈로. 아무도 휠체어에 타지 않았다. 아침 먹고 강의 듣고 나니 할 일이 없어서 곧바로 점심 준비에 돌입했다. 닭 50마리로 100명이 먹을 닭백숙을 한꺼번에 만드느라 스무 명의 사람들이 닭의 엉덩이를 손질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도 어찌 어찌 물놀이를 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고, 뜨끈한 닭백숙 국물이 우리의 몸을 덥혀줬다.
나는 이즈음 정말로 슬퍼서 방갈로에 누워서 눈물이나 흘리고 싶었다. 명희는 너무 추워서 껴입은 우비를 절대 벗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청테이프로 우비 이음새를 꼼꼼히 붙였다. 잘 때도 그대로 입고 자겠다고 했다. 소민과 함께 온 찬미 언니는 80년대에 KBS 앞에서 이산가족 찾기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쭈욱 이어져있는 방갈로 천막, 유성매직으로 종이에 쓴 일정표(일정이 다 사라지긴 했지만), 끝도 없이 쏟아지는 비, 낙심한 사람들의 표정은 약간 수용소 같은 느낌마저 풍기는 게 사실이었다.
수용소면 어쩌겠는가. 점심을 먹었으니 이제 할 일은,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감자와 옥수수를 쪄먹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배가 부르다고 아우성이었지만, 미안하긴 한데, 간식 시간 다음엔 간단한 놀이(원래는 모래사장에서 하려고 했던 바다 프로그램이었지만)를 하고 바로 또 저녁을 먹었다. 삼겹살구이와 모듬회. 8명씩 하나의 불판에 둘러 앉아 고기며, 버섯, 부추 등을 구워먹고, 동해 바다의 싱싱한 회도 먹었다. 맛은 진짜 좋았다. 하지만 하루 종일 한 일라고는 먹고 또 먹고, 먹은 것 밖에 없었다. 어디 놀러 갈 곳도 없고, 할 것도 없는 이 시골 해변 앞에서, 우리는 끝없이 먹기만 했다. 해 떨어지기 전에 밥을 먹으니 초저녁부터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었고, 한편에서는 새벽 4시까지 술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불 60벌을 추가로 더 요청해 받았지만, 이 강추위에 1,000벌은 있어야 모두가 넉넉하게 덮을 것만 같았다. 이불은 발이 달려 사라졌고, 선착순처럼 먼저 누워야만 이불을 더 받을 수 있었다. 잠자리가 불편해 오기 싫다는 학생들도 많아서 에어매트도 사고 여러 가지 방편을 열심히 고민했는데, 결국 가장 필요했던 건 상상도 못한 ‘이불’이었다. 학생들이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되는 마음을 부여잡고, 그래도 마지막 날에는 해수욕장 관리팀 측에 간곡히 부탁을 해서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었다. 총학생회장 애경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바다 못 들어갔으니, 내년에 또 옵시다~!!”
우리는 내년에 또 올 수 있을까? 바다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여하튼 엄청난 모꼬지였다. 부디 내년에는 어디로 가든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