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가을․겨울 109호 - 휠훨 날아라, 꽃님 기금!
휠훨 날아라, 꽃님 기금!
김정하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어느 날부터 탈시설 운동에 꽂혀서 15년 넘게 주구장창 탈시설만 이야기하며 다니고 있다. 발바닥행동 다음으로 노들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다.
2016년 8월 18일, 노들장애인야학 학생 김선심 언니의 탈시설 10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언니가 10년 동안 모은 2천만 원을 노들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에 ‘꽃님 기금’이란 이름으로 기부하는 행사였다. 언니는 노들에서 ‘꽃님’이라는 별칭을 사용했었고, 우리는 그 별칭을 따서 꽃님 기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주변에서 언니를 자린고비라고 불렀던 이들도, 집회 좀 나오라고 타박했던 이들도, 10년이나 준비한 언니의 깜짝 이벤트에 놀라고 부끄럽고 미안하고 또 감동했다. 언니는 2천만 원을 모으기 위해 10년 동안을 “먹을 거 안 먹고, 입을 거 안 입고 준비했다”고 했다. 다른 동료들이 거리와 현장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외칠 때 자신은 그만큼 참여하지 못하니, 돈이라도 모아서 기부하겠다고 생각했단다. “내가 시설에서 나온 것이 헛된 것이 아니다. 나 같은 장애인도 쓸모 있는 인간이다. 나는 내 방식으로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는 언니의 담담한 고백이 우리를 더욱 미안하고 부끄럽게 했다.
대통령이란 사람은 유체이탈 화법으로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고, 집권 여당의 수많은 정치인들도 남 탓하며 자기 살 길 찾기에 골몰하는 세상에서, 언니 같은 이들의 자존심과 책임감은 더욱더 빛나 보인다. 언니는 자존감이 정말 센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감히 쓸모없다 말하지 못하도록 하는 힘이 있었다. 사실 발바닥의 어느 누구도 언니에게 ‘탈시설 1호’라는 책임감을 부여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언니는 스스로 발바닥의 탈시설 1호라며 자신이 잘 살아야 누구라도 탈시설을 지지하지 않겠냐고 말했고, 그렇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단도리했다. “니들이 서울에서 전남의 시설까지 나를 찾아와 준 것처럼, 이 돈 갖고 전국의 시설 가는데 차비라도 써. 가서 한명이라도 더 데리고 나와.” 언니의 명령이었다.
[언니는 시설에서 나와야겠다고 결심이 서자 발바닥에 몰래 연락할 핸드폰이 필요했다. 그때 조카에게 연락해서 20만원을 보내 달라고 했고, 조카는 그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보내줬다. 그 조카가 멀리 광주에서 올라와 고모의 기부식을 축하해 주고 있다.]
[ 꽃님기금 기부식 중 토크 콘서트. 언니의 자립생활과 기부 과정까지의 에피소드가 쏟아져 나왔다. 왼쪽부터 정욜, 유해정, 임소연, 김선심, 홍은전, 임영희. 처음 시설에서 만나 인터뷰할 때만 해도 시설이 좋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임소연, 노들과 발바닥에 서운했던 모든 뒷담화를 들었다는 유해정, 노들 생활의 에피소드와 꽃님기금의 의미까지 조목조목 짚는 시간이었다.]
언니가 자립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사실 시설에 있는 누군가가 자립하기에는 녹록치 않은 세상이다. 활동보조서비스가 제도화 되었고 체험홈이나 자립주택이라는 이름의 주거 공간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지만,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시설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이 선뜻 바깥으로 손을 내밀기도 어렵고, 그 손을 잡아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해 주는 기관도 많지 않다. 법과 정책과 예산은 허접하기 짝이 없다. 1,200명의 홈리스와 장애인이 거주했던 대구 희망원이 인권 유린과 비리로 문제가 되자, 이를 운영해 왔던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에서는 온갖 권모술수로 버티기를 해 오다가 결국 운영권을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를 관리․감독했어야 했던, 사실상 이 사태의 공범인 대구시는 다른 운영자를 선정하겠다고 보도자료를 뿌렸다. 지난 2년 6개월 동안 129명이 사망한 이곳에서, 다른 운영자가 나타나 이들의 시설 생활이 유지되는 것이 희망원 사태의 해결이라고 생각하는 대구시. 또다시 1,200명의 꽃님이들을 시설에 가두어 두려는 대구시의 발상에 분통이 난다. 그런데 이런 발상은 시설 문제가 발생한 전북에서도, 경기에서도, 인천에서도, 서울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다. 행정가들과 정치인들은 애당초 꽃님이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면서도 복지와 인권을 말하는 이들에게, 진정 인간의 존엄을 되묻고 싶다.
어쨌든 세상은 그러할 지라도 언니의 뜻과 의지로 ‘꽃님 기금’은 탄생했다. 이것을 마중물 삼아 ‘탈시설-자립생활 기금’을 제대로 한번 키워보자고 노들과 발바닥은 결의했다. 선심 언니가 만들어낸 이 ‘아름다운 역전’은 여전히 시설에 살고 있는 다른 꽃님이들의 자유로운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역전에 동참하실 분은 언제라도 연락주시라. 전국의 수용시설을 훨훨 날아다닐 꽃님 기금을 함께 키우자!
[ 우리는 기부식을 ‘아름다운 역전’이라고 이름 붙였다. 언니의 삶 자체가 아름다운 역전이었다.]
[꽃님기금 기부식을 마치고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언니는 지난 10년 동안 자신의 자립을 지원했던 이들을 일일이 초대했다.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속에 담고 있었나보다.]
‘꽃님 기금’ 공식 후원 계좌: 국민 488401-01-249324[박경석(꽃님기금)] ※ 정기적으로 기금을 보태실 분들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의 회원으로 가입한 후, 꽃님기금으로 지정 기부하시면 됩니다. (문의 : 02-794-03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