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 108호 - [교단일기] 청솔 과학반이 일구는 노란들판
[교단일기]
청솔 과학반이 일구는 노란들판
최재민 | 탈시설 운동하는 사람이다. 시설에서 생활하다 자립해서 잘사는 경남 누나를 보고 시설 따위는 없애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끔 몸과 마음이 얼얼하지만, 더불어 사는 지금이 좋다.
‘잘생긴, 최재민, 선생님’, 오해마시라. 청솔반 과학 수업에서 키우는 양파 이름이니 말이다. 2016년 봄 학기를 개강하고 첫 수업 시간에 한 학기 동안 키울 양파를 물 컵에 앉혔다. 양파 이름은 순전히 나의 제안이었고, 정란, 명선 누나는 반대했으나 끝내 전원 만장일치로 양파 세 개 이름을 정했다고 기억하고 싶다.
올해로 나는 야학에 온지 4년차다. 처음 야학의 문턱을 넘은 건 준호 형이 교사대표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나는 형한테 봉사하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준호 형은 어리숙하면서도 분명한 말투로 “그게 아니다”라고 했다. “노들에서는 봉사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말이다. 당황했던 것 같은데, 그 말이 싫지가 않았다. 그렇게 야학을 시작했다.
야학이 좋았다. 야학이 풍기는 냄새. 땀과 흙, 휠체어와 각종 음식, 투쟁의 열기가 내는 꾸리꾸리한(?) 냄새가 편안했다. 지금은 많이 정돈되었지만 2013년에만 해도 교실 하나를 사무실로 쓰고 냄새도 많이 났다.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던 건 나에게도 이런 냄새가 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장애가 내는 냄새라고 말하면 너무 비약일까?
초창기에는 내가 야학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는 야학을 쉬기도 했다. 한 학기 수업 참관을 하고 정교사 인준을 하던 무렵인데, 학교에서 맡은 일이 너무 많은 상황이었다. 너무 바빠서 야학에 나오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청솔1반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명희 교사가 수업 한 번, 교사회의 격주 한 번만 나오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노들 안에 머물라’는 말이었는데, 그 때는 이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교사로 복귀하고 휴직했다가 다시 올해 복귀했다. 감사하게도 청솔반 과학을 맡았다. 수업은 마냥 좋다. 사실 나는 가끔 수업을 통해 위로받는다. 하루는 사는 게 힘들어 한 시간 겨우 수업 준비하고 야학으로 발을 끌며 온 적이 있었다. 출석을 다 부르고 형 누나랑 악수를 한 번씩 했는데도 마음이 영 불편했다. 그래서 자리에 앉아서 “형, 누나, 나 요즘 힘들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로 시작해서 한참을 넋두리를 펼쳤더랬다.
청솔반 누나와 형들은 멀뚱멀뚱, ‘이 놈이 오늘 왜 그러나’라는 표정을 짓고 당황 반 걱정 반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적반하장으로 “뭐라고 말 좀 해줘요, 형이랑 누나들은 산전수전 다 겪어서 알잖아요”라고 투정에 투정을 얹었다. 그래도 별 얘기가 없기에 나는 “에이~ 재미없다. 수업이나 해요”라며 마무리를 지으려는데, 그 순간 정란 누나가 “힘~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학기 초부터 키우기 시작한 양파 매운 맛이 정란 누나의 말에 담겨 내 눈에 뭔가 맺히게 했다.
이오덕 선생님은 본인의 일기에 “20리길 걸어 수업을 온 학생들에게 나는 오늘 무엇을 가르쳤나”라고 회고의 말을 적었다. 나는 이오덕 선생님의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그릇이 작은지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아직은 잘 모르겠다. 대신 나는 비오는 날 휠체어를 타고 온 학생들에게 “오늘 비오는 날이라 오는 길에 고생하셨어요? 그래도 내 얼굴 보니까 좋죠?”라고 너스레를 떨며 수업을 시작한다. 내 말은 이오덕 선생님의 말과는 다르다. 그런데 또 그게 그렇게 다른 건가, 어쩌면 통하는 게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학기 초에 기르기 시작한 양파들은 지금도 잘 자란다. ‘잘생긴’이라고 이름 붙인 양파만 빼고 말이다. 수업을 할 때마다 청솔1반 누나랑 형들에게 다른 양파보다도 ‘잘생긴’ 양파는 진짜 잘 키워야한다고 말하는데, 이 양파는 맨날 물도 뿌옇고 잎은 시들시들하다. 그렇지만 아무렴 어떠랴. 아무리 양파가 시들어도 나는 청솔1반 과학 교사고 나를 보고 웃어주는 학생 분들이 있는데 말이다. 양파 백 개가 시들어도 언제나 나를 좋아해주는 청솔1반 형, 누나들 곁에 머물며 살아가는 삶이라 감사하다. 바로 이곳이 우리들의 노란들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