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 108호 - 센터판의 독립과 이사, 그 새로운 출발점에서
센터판의 독립과 이사, 그 새로운 출발점에서
서기현 | IT업계의 비장애인들 틈바구니에서 개고생하다 장판에 들어와 굴러먹은 지 어언 15여 년. 현재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판에서 소장으로 일하며, 오로지 주둥아리 하나로 버티는 중.
띠로띠로리~ 띠로띠로리~ “아, 예… 좋은 물건이 있다고요? 어딘데요? 아… 종암경찰서 맞은편이요? 예예, 거기 어딘지 알아요. 예, 그럼 거기에서 오후에 뵙겠습니다.” 새 사무실을 얻으려고 두 달째 성북구 일대를 샅샅이 뒤지던 어느 날, 일주일 전에 방문했던 부동산에서 반가운 연락이 왔다. 좋은 사무실이 나왔다는 소식이었다.
작년에 하월곡동에서 동소문동으로 임시로 이사를 했던 우리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작년 9월에 사단법인 노들과 함께 이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발되고 사무실을 함께 쓰던 사단법인 노들의 활동보조인 교육기관은 동숭동 유리빌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도 성북구에 따로 사무실을 얻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가 얻으려는 사무실은 일단 활동가 9명(활동보조인 3명 포함)이 일할 수 있는 면적에 보증금 및 임대료가 저렴하고, 1층이거나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게 큰 승강기가 있어야 하고,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어야 하는 그런 소박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우리는 성북구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어서 활동가 몇 명이 구역을 나누어 올해 1월부터 두 달 넘게 꾸준히 부동산을 방문해 사무실을 알아봤다. 그렇지만 우리가 원하는 조건의 사무실은 구하기가 어려웠다. 부동산의 첫 마디는 ‘그런 조건의 사무실은 성북구에 없다’였다. 몇몇 부동산에서는 장애인단체라고 하면 대놓고 사무실을 얻기 힘들 거라고 하는 곳도 있었고, 심지어는 전동휠체어를 보고 아예 문을 안 열어 주는 곳도 있었다. 하여튼 대부분의 부동산에서 소개해 준 사무실은 승강기가 있으면 화장실이 좁고, 화장실이 넓으면 임대료가 비싸고, 임대료가 싸면 사무실 크기가 작고, 사무실 크기가 적당하면 승강기가 없고, 뭐 매번 그런 식이었다. 결론적으로 보증금과 임대료를 넉넉하게 낼 수 있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우리도 사단법인 노들도 돈이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한정된 돈을 가지고 원하는 조건을 찾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항상 나중을 기약하며 연락을 기다렸다. 그렇게 기존 사무실의 계약 만료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던 어느 날 부동산에서 좋은 매물이 있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이번에는 제발 좋은 사무실이기를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소개해 준 곳은 기존 사무실이 위치한 한성대입구역에서 두 정거장 더 올라간 길음역 근처였다. 역에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고 했다. 부동산 사장님의 설명대로 가는 길은 꽤 험난했다. 길음역 환승 주차장 근처의 승강기로 나와서 미아리 집장촌을 지나 내부순환로 아래의 인도를 따라가는데, 그 오른쪽에는 삭막하게도 방음벽이 높고 길게 세워져 있었다. 고가도로와 방음벽 사이에서 꽤 적막함을 느꼈다. 그렇게 10분정도 더 갔을까, 아파트 방음벽이 끝나고 상가가 나오고 골목이 나오고 조금 지나서 고물상도 보였다. 그런데 그곳을 지나면서 순간적으로 스산한(?) 기운이 느껴져 어느 빈 건물을 보게 되었고, 마침 유리문 앞에 붙어 있는 ‘임대’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사장님 여기도 임대 하나요? 1층이라서 좋을 것 같은데, 턱도 없고….”
“여기도 가능하긴 한데, 제가 이야기 했던 곳 먼저 가 보고 들리죠. 지금 가실 곳이 더 좋아요.ㅋ”
결국 먼저 소개시켜준 사무실로 향하는데 못내 아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소개받은 사무실은 좋긴 하였으나 임대료가 너무 비쌌고, 사무실 주인은 장애인단체가 들어올 거라고 하자 태도가 돌변했다. 그래서 ‘여기도 아니구나ㅜㅜ’라는 생각을 하면서 뒤돌아서는 순간, 아까 보았던 그 허름한 1층 공간이 생각났다.
“아까 그곳도 임대 가능하다고 했죠? 지금 가보는 것도 가능한가요?”
“아, 거기는 1년 6개월 정도 비어 있던 곳인데…. 한번 가보죠, 뭐.”
썩 내켜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고물상 옆 사무실을 그 사장님 안내에 따라 볼 수 있었다. 늦게나마 둘러보면서 무엇보다 맘에 들었던 것은 1층에 턱이 없다는 것과 임대료가 싸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지하철역과 조금 멀다는 것, 그리고 새롭게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했다. 하지만 이정도 가격에 이만한 접근성, 이만한 크기의 사무실을 앞으로는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기존 사무실의 계약 만료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어서 빨리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한 장애인 활동가는 전철역이 너무 멀어 걸어 다니기가 힘들 것 같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사무실 구하는 것을 미룰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고, 그 1층 사무실로의 이사를 센터 활동가들과 함께 결정했다.
이사가 결정되고 나서 집 주인과 만나 계약을 하고, 편의시설과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간판 달고 하는 과정을 겪으며 힘들기도 하고 자질구레한 다툼도 있었다. 또한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어서 걱정을 하고 있고 그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다 떠나서, 드디어 자립생활센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는 생각에 설레는 것이 사실이다.
전에는 없었던 우리만의 프로그램실과 상담실이 생겼고, 창고와 부엌도 생겼고, 넓은 화장실도 있다. 사무 공간 자체는 좀 협소한 감이 있지만 앞서 이야기한 장점이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이제 이사는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언제 정리가 끝나나’라는 자조 섞인 투덜거림도 많았지만, 천천히 꾸준히 정리하다 보니 어느 정도는 그 결과가 나타나는 것 같아 기쁘다.
이번 이사는 우리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의 완전한 독립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센터로서의 역할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의미가 동시에 존재한다. 5년이라는 짧은 역사 속에서 이번 이사가 어떤 도약의 계기가 될지 사뭇 기대가 된다. 우리는 이미 그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