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 108호 - [나는 활동보조인입니다] 익숙해지는 시간
[나는 활동보조인입니다]
익숙해지는 시간
남다영 | 노들야학에 다니고 있는 최영은 언니와 일주일에 3일을 함께 지내고 있다. 어린 활동보조인을 찾은 영은 언니 덕분에 요리 초짜에 집안일도 꽝이지만 덜컥 활동보조인이 되어 서로에게 길들여져(?) 가는 중이다.^^
처음에 활동보조를 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일을 할 수 있고,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급여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여 활동보조 일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너무 가볍고 쉽게 생각했던 것일까? 일을 시작하면서 바로 고민이 생겼다. 바로 요리! 그전에는 요리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데다가 학교에 다닐 때는 기숙사에서 매 끼니를 사먹어 요리를 접할 일이 없었다. 그런 내가 활동보조를 하면서 요리를 하게 되니 요리라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재료의 맛만 느껴졌고, 심지어 커피도 제대로 탈 줄 몰라 우유를 왕창 부었다가 그대로 버린 적도 있었다.
그래서 초기에 영은 언니는 종종 나에게 “넌 주방이랑은 거리가 먼 것 같아”, “넌 요리만 빼고 다 잘하는 것 같아”라고 한마디씩 날려줬다. (언니는 주로 메모장으로 나에게 이야기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머쓱해져서 “언니! 100일만 기다려봐, 괜찮아질 거야~”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활동보조를 시작한지 100일이 훌쩍 지나 벌써 5개월이 다 되어간다. 안타깝게도 나의 요리 실력은 5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작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내가 요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요리책을 찾아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어떻게 만들었는지, 양념은 뭘 넣었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제는 아주 가끔(!) 칭찬받기도 하고 한 끼 정도는 눈치껏 여유롭게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영은 언니와 나의 관계도 내가 요리에 익숙해지는 과정과 비슷한 것 같다. 처음에 활동보조교육을 받을 때는 이용자의 안전이 나에 의해 좌우되는 것 같아 막중한 책임감이 들었고 부담스럽기도 했다. 거기다 ‘1:1로 계속 붙어있는데 둘이서 친해지기는커녕 어색해하면 어쩌지?’라는 걱정부터 시작해서 ‘나 때문에 다치면 어쩌지?’ 등등 별의별 걱정이 다 들었다. 하지만 그 걱정들은 차츰 사라졌다. 해보지 않은 일이라 서툴렀을 뿐이지,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졌다.
그리고 언니도 그저 나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처럼 그냥 늦잠을 자기도 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하고, 가고 싶은 곳은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고, 사소한 것에도 웃음을 잘 터트리는 그런 사람.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하는 건 맞지만, 장애인의 삶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무겁지 않았고 위험천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이 언니에게도 언니의 일상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언니에게 디딤돌이 되어 언니가 더 자유로워 질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고 보면 세상을 향해 조금 더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도록 디딤돌이 되어주는 게 활동보조인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