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 108호 - [오 그대는 아름다운 후원인] 탈시설 장애인의 벗, 이종각 선생님을 추억하며
[오 그대는 아름다운 후원인]
탈시설 장애인의 벗, 이종각 선생님을 추억하며
조사랑 | 노들야학 휴직교사이자 전 상근활동가. 2009년부터 평원재 담당자로 평원재에서 먹고 자고 기거했고, 탈시설하는 사람의 편에서 싸우는 든든한 벗이 되고 싶은 사람.
평원재의 ‘재’는 집이라는 뜻으로, 사회복지법인 평원재단에서 지은 건물이다. 평원재단 이사장이신 이종각 선생님은 탈시설을 원하는 중증장애인들이 자립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2009년에 이 집을 짓고, 자립정착금과 매달 생활금을 지원했다. 평원재에 살았거나 임시 거주했던 사람은 지금까지 27명이다. 그 중 대부분이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처음 자립하여 세상 밖으로 나왔던 용기 있는 자립생활 투사들이었고,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시설로 되돌아가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은 소망을 이루며 살고 있다.
이사장님과 노들야학의 인연은 2001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고, 노들야학의 교사와 학생들도 그 중심에서 활동을 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도 TV에서 소식을 접하고 기억할 정도로 뉴스에도 많이 나왔었다. 그때 중생원(현 평원재단)이라는 사회복지재단을 운영하던 이사장님이 노들야학에 먼저 연락을 했다고 한다. 당시 30명 정도 되는 야학 학생들 전부에게 각각 매달 10만원씩 장학금을 주고 싶다고. 데모를 많이 한다는 것이 마이너스였던 것은 맞지만, 또 그 지점 때문에 야학을 믿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 별난 후원자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것도 매달 엄청난 금액을.
야학 학생들에게 제공된 장학금은 그들의 생활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청솔반 학생 이모 씨는 그 돈을 모아 평소에 갖고 싶었던 텔레비전도 사고 영화도 볼 수 있었다. 대게 이렇게 많은 금액을 후원하는 후원자라면 사진이라도 한 장 찍거나 자신의 좋은 뜻을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사장님은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한겨레』신문과 같은 언론이나 노들야학의 홈페이지를 몰래(?) 살펴보며 우리의 활동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했다. 그리고 노들야학이 정립회관을 나와 마로니에공원 뒤편에 자리를 잡게 되자, 평원재단은 야학 가까운 명륜동 근처에 건물을 지었다. 장애인들이 살면서 불편함을 겪지 않을 만큼의 훌륭한 편의시설이 설치된 건물을 말이다. 평원재 건물에는 이사장님의 사무실과 사택이 함께 있다 보니 한 건물 안에서 서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즐거웠던 일, 힘들었던 일도.
평원재에 사는 사람들은 이사장님에 대한 많은 추억을 쌓아갔다. 이사장님은 우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원래는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성격이지시만, 한 건물 안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이웃사촌이 되어주셨다. 그 수많은 일들은 다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그 추억들 안에서 이사장님은 우리에게 든든한 후원인 이상의 가족처럼 소중한 존재였고, 이사장님에게도 우리는 골칫덩어리(?)였던 적도 있지만 이사장님을 행복하게 해드렸으리라 믿는다. 아래는 이종각 이사장님의 추모식 때 나와서 이야기했던 내용들이다. 우리의 소소하고도 소중한 추억들이다.
“이사장님은 정말 좋은 분이었어요. 1층에 살았던 남옥 언니는 시설을 나와서도 자신을 괴롭혔던 시설장이 나오는 악몽을 꾸었어요. 남옥 언니는 이사장님을 보며 치유되는 것 같았어요. 매일 만날 때마다 짓궂은 장난을 해도 받아주시고 재밌게 해주셨어요.” (남옥 언니는 이사장님 장례식장에서 정말 너무 많이 슬퍼했다.)
“명절마다 항상 과일을 선물로 주셨는데, 한 번은 비싼 한우 세트를 선물해주셔서 옥상에서 고기파티를 했어요. 같이 먹자고 이사장님을 불렀는데, 이사장님이 쑥스러우신지 거절을 하셨어요. 휠체어를 타고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옥상까지 다닐 수 있게 만든 이유가 이런 거였다고 기뻐하셨어요.”
“눈이 오면 전동휠체어가 미끄러질까봐 새벽부터 눈을 치우셨어요. 한번은 도와드리려고 일찍 나갔는데 벌써 다 치우셨더라고요.”
“2층 동림이 형이 눈 수술할 때 서울대병원에 문병을 오셨어요. 사람들이 아프면 어디든 문병을 자주 오시곤 했어요.”
“매년 백두산 사진이 멋지게 찍힌 달력을 선물해주셨는데 별거 아닌 거 같아도 그 달력을 안 주시면 서운했어요. 뭔가 연중행사 같은 느낌이었어요.”
“1층 작은 정원의 감나무에 감이 열리거나 매실이 열리면 따서 주셨어요. 술 담가 먹으라고도 하시고.”
“휠체어가 계단 쪽으로 넘어지지 말라고 계단 중간에 기둥을 세워주셨어요.”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간섭은 일체 없으셨고, 그 대신 사람들의 일상과 자립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고 늘 지원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이사 가는 날 조용히 음료수를 대접하고는 나가서 잘 살라고 이별했지요. 진심으로 사람들의 행복을 빌어주셨어요. 원래는 선물을 잘 받지 않으시는데, 기옥 언니가 나가면서 이사장님 양말을 선물했고 너무 기뻐하며 받으셨어요.”
어찌 보면 시설에서 나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막막하고 두려움이 앞섰던 사람들에게 세상 밖은 살 만한 곳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람. 이사장님은 우리에게 그런 존재였다. 정말 너무 고마웠다.
너무나 고마운 분, 우리의 이웃 이종각 이사장님은 불행히도 2015년에 폐암 선고를 받았다. 이사장님은 암은 아주 초기이고 수술만하면 나을 거라고 우리 모두를 안심을 시켰다. 우리는 이사장님의 병실에서도 싱글벙글 웃으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요새 눈도 안 좋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좋아하는 책도 잘 못 보겠어. 얼마 전에 김근태 평전을 보는데 첫 장을 넘기는데 눈물이 나기 시작하더니 멈추지를 않는 거야.” 한동안 이사장님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순간 이사장님도 힘드시고 무서우셨겠지, 우리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은 없을까 속상했지만, 이사장님의 말을 믿고 기다렸다.
기대와는 다르게 수술 이후 힘든 항암치료가 시작되었고, 이사장님은 한동안 아예 책을 못 보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 시절엔 이사장님과의 왕래가 거의 단절되었다. 이사장님은 많이 야위셨고, 우리에게 힘든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셨다. 이사장님은 점차 회복하시는 것 같았다. 항암치료도 끝나고 다시 자란 머리와 예전과 같은 체력을 회복하신 걸로 보였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어느 정도 안심할 즈음 불행은 벼락같이 닥쳤다. 얼마 전까지 웃으면서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이사장님의 폐암이 재발했고 이미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셨다. 갑자기 쓰러지신 후 병원에서 이사장님을 뵈었을 때는 기억조차도 희미하셨다. 주변 사람들은 이사장님 문병을 가겠다고 많이 연락이 왔지만, 이사장님의 상태가 너무 불안정했고 안정이 되면 만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우리에게 작별할 시간은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하신지 채 한 달도 되지 못한 2016년 4월 7일, 함께 동고동락하신 한 이사님 곁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유언과 이후 장례 절차는 한 이사님께 위임을 하셨다.
이사장님을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다. 이사장님은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하셨고 장례식도 싫다 하셨다지만 이사장님을 잘 보내드리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사장님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노들야학 학생들은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이사장님의 얼굴을 영정으로 처음 만났다. 노들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탈시설 장애인의 벗이었던 이사장님을 그렇게 보내드리게 되었다. 이사장님은 내가 살면서 만났던 사람 중에 참 맘이 고운 사람이었다. 본인을 괴팍하다고 이야기하셨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 이사장님은 참 고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사장님이 이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신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이사장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가셨을까, 짐작만 할뿐이었다.
힘든 상념이 계속되다가, 그냥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던 고운 이사장님의 모습을 간직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모습 그대로 추억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니 이사장님을 보내드리는 것이 한결 수월했다. 평원재에서 맨 처음 만났던 그 모습, 평원재를 짓고 우리들에게 보여주면서 들떠보였던, 맑은 청년의 눈빛에 미소가 빛났던 그 모습. 누군가에겐 엘리베이터를 잡아주던 모습, 누군가에게는 전구를 갈아주는 모습, 우리가 행복했던 그 순간의 모습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이사장님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요. 그리고 보고 싶어요. 우리를 지켜봐주세요. 우리 모두 행복하게 지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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