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봄 107호 - [노들아 안녕] 노들에 새로 입성한 독수리 오형제
[노들아 안녕]
노들에 새로 입성한 독수리 오형제
오진희 | 고등학생들 문예 입시지도 하면서 연극도 하면서 공부도 하지만, 뭐 하나 제대로 못하는, 열 재주 가진 신입교사.
나는 나와 화해할 수 있을까? 작년 우연한 기회에, 동네 어귀에 자리한 동작구장애인단체협의회(아래 협의회)에 가서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양성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강사로 일하기 위해 사무처장과 함께 구청에 인사를 다녔다. 나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보기에 따라선 경증이어서 생활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게다가 과외로 수입을 꽤 벌어들이고 있어서, 인식개선 강사는 경제적 문제와 무관하게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에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구청 사회복지과 직원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불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처음부터 나의 언어장애를 꼬투리 잡았고, 장애인은 마치 구걸하러 오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머리에 콕 박혀있는 듯했다. 그런 구청 직원에게 나는 명함을 내밀며 ‘무슨 소리냐, 애들도 가르치는데 이깟 거 못 할 거 같냐’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난 화가 나면 목소리가 커진다.) 그런데 구청 직원 이전에 사무처장조차 내가 강사 일을 할 수 있을지를 의심했다고 하니 더 어이가 없었다. 그런 곳에서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이 과연 가능할까 싶었다. 나름 강한 멘탈의 소유자라고 자부해 왔는데, 내가 장애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무시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내 인생 절반이 날아간 기분이었다.
사실 삼육재활원을 졸업한 이후로 비장애인들 속에서 경쟁하며 그들과 별 차이를 못 느끼고 살아왔던 시간들이 훨씬 많았던 나로서는 새로운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어디 가서든 우수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겪는 배타적 경계는 당해봤어도, 무시라니, 기가 막혔다. 물론 나의 장애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 누구도 내가 극단 생활을 한다거나 공연을 할 거란 생각은 못 했으니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 돈도 벌어야 했고 공부도 해야 했다. 모두가 벅찼지만 그만큼 즐겁기도 했다. 나는 글을 쓰고 연극을 하는 것만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새로운 지식을 섭렵하는 일을 즐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현재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고 잡학다식한지도 모르겠다. 한 선배는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가장 좋은 거라고도 했지만(물론 어쭙잖게 무언가 된 상태를 부정한 것이리라), 난 내가 성장해나가길 바란다. 그런 까닭으로 작년 여름 노들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한번 호되게 데인 상태에서 마침 친구 재범이가 노들에서 일을 한다기에, 정말 나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보고 싶어 찾게 되었다. 그런 노들은 내 마음 속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사실 노들을 알게 된 것은 2008년 대학로에 위치한 (노들 바로 다음 골목) 중앙대 연극과 대학원을 다니면서였다. 물론 박경석 교장선생님의 모습은 그 전에도 뉴스를 통해 접한 적이 있었다. 지하철 선로에 몸을 묶고 투쟁하는 모습,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소리치던 모습 등. 저렇게 처절하면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이제는 정치적 행동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노들의 운동성은 매우 건강한 것이어서 언젠가는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학교 공부를 하고 연극을 보고 극단 생활을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매우 바쁘게 살았지만, 2007년 겨울에 마로니에 공원에 터를 잡고 있던 노들의 천막 교실이 항상 신경 쓰였다.
그러다 천막이 사라지고 학교 가는 길 유리빌딩 건물에 노들야학이 생겼다. 아침에 콜을 타고 학교를 가다보면 꼭 ‘노들야학 가세요?’라고 물어보곤 했다. 그것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지 싶어 사실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야 현재 다니고 있는 경희대학교를 가도 ‘경희의료원 가세요?’라고 물으니까 꼭 대학로의 문제만은 아니겠지. 나는 중대 수업 첫 시간에 내가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배종옥 교수님이 나를 마치 연예인 보러 온 사람 취급하며 ‘넌 뭐지?’하는 눈빛으로 바라본 것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내 소개를 할 차례가 되었을 때 참지 못하고 ‘약간 편견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그러려니 할 수도 있었는데, 나도 욱하는 성격이 항상 문제다. 그리고 나선 학점 안줄까봐 다른 사람보다 몇 배로 발표 준비를 했다. 다들 알겠지만 자신이 좋은 사람임을 포장하기 위해서라도 비장애인 사회에선 어떡하든 인간적 배려가 주어진다.
어찌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장애인 당사자나 장애인과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드러난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지도 모르고 찔러댄다. 노들에 와서도 한동안은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가끔 이건 뭐고 저건 뭐지 싶은 일들이 있었다. 글을 쓰는 작업은 자신을 계속 돌아보는 일이다보니, 나란 누구인가에 대해 객관화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어서 좀 더 예민한 탓이리라. 아직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지만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노들야학에 오게 되었다. 생소한 장애학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자양분이 되어 사람이나 사회 변화에 더 다가서는 내가 되는 것이 올해의 목표라면 목표일 것이다. 이제 나는 내 짝꿍 민구 선생님 말대로 노들을 나의 새로운 놀이터로 삼고 신나게 놀아 볼 생각이다.
나와 함께 신입 교사로 들어온 필순 샘. 처음에 적응 못하고 투쟁 현장에서 헤매고 있을 때 챙겨줘서 너무 고마운 사람이다. 노들센터로 직장 자체를 옮기신 후 일이 많아져서 그러신가, 자주 볼 수가 없네요.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일하면서도 노들에 오신 은경 샘. 복지관이 어떤 곳인지 얼마 전에 경험해 본 결과, 은경 선생님의 선택이 진정 장애인을 위한 일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말에 진정성을 느껴요. 그리고 언제나 활달한 여의 샘.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가나 선생님 수업 참관 때 처음 만났는데, 나한테 향수 뭐 쓰냐고 물어봤었죠? 생각해보니 겐조 플라워더라구요. 지하철 같이 타고 가면서 중대 대학원 다닌다고 해서 급친해졌죠. 역시나 엉뚱 발랄한 교장선생님의 영향으로 오게 되었다는 이유만큼이나 언제나 쾌활한 에너지가 넘쳐 보여서 좋아요. 가끔씩 (청솔2반 개그팀) 준수 형이나 애경 언니, 다른 학생들과 서슴없이 대화하는 모습 부러울 때가 있어요. 나에겐 아직 어려운 일이라서 말이죠. 저에게도 에너지 충전 좀 부탁해요. 그리고 우리 경훈. 나중에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 될 거야. 왜냐하면 나랑 같이 수업을 하니까.^^ 푸른어머니학교에서 어머님들 문예교육도 하고 운동 현장에도 가리지 않고 출몰하는 너의 모습에서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본다. 단 한 줄이라도 자기표현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사회와의 소통 내지는 시원한 쾌감이 무엇인지 학생 분들과 같이 느낄 수 있도록, 한 학기동안 열심히 해보자. 노들에 새로 입성한 독수리 오형제의 활약을 기대하시라.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