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봄 107호 - 고군분투 33살 화이팅
고군분투 33살 화이팅
박준호 | 전(前) 노들야학 상근자
지난해 노들야학 상근 활동을 정리하며 다른 상근 활동가들께 많이 미안했습니다. 남은 자리는 더욱 훌륭한 활동가들이 채우게 되겠지만, 떠나는 이유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저는 분명 어떤 상처를 남기고 갔습니다.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 노들야학의 인사말에 아로새겨져 있는 저 말을 실천하지 못하고 두 가지 모두 떠나보내는 것 같아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야학 상근을 정리하고 나와서 1년. 그사이 저는 학원을 다니며 어떤 기술들을 배웠고, 웹개발이라는 아직은 몸에 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어렵게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꽤나 늦게 새로운 일을 시작한 저 같은 사람에게 관대하지 않았습니다. ‘33’이라고 쓰고 보니 꽤 좋은 숫자인 거 같은데, 이게 어딘가의 회사에서는 팀장이 되어야 할 나이이고, 그 분야의 전문가여야 했고, 좋은 차를 타고 주말이면 가족과 야외로 나가면서 주식과 부동산을 하는 나이어야 했나봅니다.
7년 동안 나름 열심히 노들야학에서 학생들의 삶을 함께 고민하고 투쟁했던 시간과 그 가치에 자부심을 좀 가질 법도 한데, 저는 이렇게 남들 시선을 신경 쓰면서(안 쓰이지가 않았습니다) 살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 가벼운 거였나. 아니, 그건 내가 지켜야 하는 거지… 내껀데… 누구도 가볍게 보지 않고 부정하지 못하게 내가 만들어야지. 나한테 아직 남아있다 남아있다… 주문도 외우고, 나약한 고민들을 머리에 넣고 빙빙 돌리다가 어느새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는 회사를 나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와서는 다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다보면 인정받고 일도 잘하게 되어서 사회의 정상성에 편입되길 원하는 것인가. 정상적인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나는 야학을 나오고 새로운 일을 배우고 하게 된 것일까. 아니길.
어쨌든 시간은 가고 두 번의 개학식이 있었고 모꼬지가 있었고 노란들판의 꿈이 있었고 야학에는 많은 교사와 상근자들이 들어왔습니다. 퇴근을 하면 야학에 너무 오고 싶어서 야학 교사로 복직을 했고 야학에서 하는 행사에도 참석합니다. 꽤 열심히. 다행인건 아직 나한테는 남은 시간도 좀 있는 것 같고, 응원하는 야학 사람들도 있고, 전형적인 삶을 거부하는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지혜나 용기를 주는 책도 조금 알고 있습니다. 어느 자리에 있든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지키고 노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오늘 끝난 짧은 여행지에서 작은 돌 하나 올리고 제 삶이 평안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제가 노들이랑 함께하는 이 여행도 오래오래 건강하고 평안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