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봄 107호 - 기쁘다 탈시설 오셨네~ 메리 탈시설!
기쁘다 탈시설 오셨네~ 메리 탈시설!
서울시 자립생활주택 확대를 위한 마로니에공원 연말 천막농성을 마치고
김재환 |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전(前)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진정한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발바닥행동이라는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고 있음.
지난 2015년 12월 22일 아침,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 병원을 찾았다.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서였다. 국가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어서 이것도 제때 안 받으면 벌금을 내야한다. 썩 내키진 않았지만 내 몸과 피와 내부 장기들이 아직 쓸 만한지 의학적 판단을 받기 위한 몇 가지 검사를 진행했다. 손가락 굵기의 전깃줄 같은 선이 내 입으로 들어가 내장을 돌아다니고 있었을 그 시간,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야외무대에는 두 채의 천막이 6년 만에 다시 세워졌다.
2009년, 국가에서 해야 하는 것이 고작 사람들을 시설에 가두는 것이 아님을 알리고,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지역사회에서의 평범한 삶을 살고자 8명의 장애인 당사자분들이 시설을 박차고 나왔다. 그렇게 그들이 마로니에 공원에 천막을 치고 서울시를 상대로 자립생활 대책 마련을 요구했던 게 벌써 6년 전 일이었다. 그때의 요구로 서울시에서는 자립생활 체험홈(현재의 자립생활주택 (가)형)과 자립생활가정(현재의 자립생활주택 (나)형)이 생기고 자립정착금이 생겨서 거주시설에서 지역사회로의 전환, 이른바 ‘탈시설’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안전과 보호라는 명분하에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시만 보더라도, 관할 44개의 시설에 약 3천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삶이 그러하다. 2013년도에 서울시는 ‘탈시설 5개년 계획’을 발표하여 2017년도 까지 총 600명을 ‘탈시설’시키겠다고 계획한 바 있다. 2017년이 머지않은 현재 상황을 살펴보면 100명도 채 안 되는 사람들만이 시설 밖으로 나왔고, 위의 계획에는 시설에서 운영하고 있는 체험홈이나 자립생활가정도 ‘탈시설’ 인원에 속해 있는 실정이다. 도대체 서울시가 ‘탈시설’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는 것인지,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에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은 서울시가 책임감을 가지고 새롭게 탈시설 계획을 세우고 진행해 나갈 것을 요구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천막을 치게 된 것이다. 우리의 요구는 명확했다. 앞서 서울시에서 발표한 ‘탈시설 5개년 계획’을 전면 수정하여 서울시 관할 시설에 있는 약 3,000명의 모든 장애인에 대한 탈시설 계획을 수립할 것, 이에 따른 자립생활주택 1,000개의 확보와 자립생활주택 운영 예산을 현실화 할 것, ‘탈시설’의 개념과 기준을 명확히 할 것,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실현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 것을 요구하며 시장 면담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이어서 그랬을까, 공권력의 별다른 폭력이나 제지 없이 훈훈하고 아늑한 천막이 세워졌고,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행사들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갔다. 낮에는 기자회견과 간담회 등을, 저녁에는 문화제 등을 진행하며,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투쟁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번 천막 농성의 백미는 누가 뭐라 해도 12월 24일 밤 예배 형식으로 진행 된 ‘예수 탄생 축하 투쟁결의대회: 기쁘다 탈시설 오셨네!’였다고 생각한다. 한때 열심히 교회에 다녔던 나로서는 그 어떤 크리스마스보다 따뜻했고, 그 어떤 예배보다 가슴 뛰었으며, 그 어떤 캐럴송보다 즐거웠다. 그곳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있었고,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 할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약 2,000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가 현재에 있었다면 그 누구도 누구를 속박하거나, 수단으로 삼거나, 차별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와 함께 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12월 25일,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우리는 서울시장과의 면담이 잡혔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고, 앞으로의 운동 방향을 함께 고민하며 짧고 굵었던 천막 농성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렇게 천막 농성이 있은 지 약 한 달 후인 2016년 1월 28일,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요구안을 가지고 서울시장 면담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천막을 쳤던 시간에 비하면 너무도 짧은 약 20분의 시간 동안 진행된 면담에서,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가기 위한 TF팀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시장으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첫 TF팀 회의가 2016년 2월 3일에 진행되었다.
그런데 서울시가 발표한 TF팀의 구성원 명단을 살펴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거주시설의 원장을 비롯하여 그동안 시설 측을 옹호하는 입장을 보여 왔던 대학교수 등, 많은 구성원들이 탈시설을 논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인사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첫 회의 자리에서 논의한 내용도 탈시설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논점을 흐리고 지지부진한 논쟁거리만 남기는 것들이었다. 이에 우리는 서울시에 TF팀의 구성원을 교체할 것, TF팀의 위상․목적․과제를 분명히 할 것 등을 요구하였다.
시설 측에서는 체험홈이나 그룹홈과 같은 시설의 소규모화 정책을 ‘탈시설화’라고 명명하며 사람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삼는 명맥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이와 같이 탈시설의 방향이 어디로 어떻게 갈지 중차대한 시점에서, 지금도 시설에 격리되어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올바르게 되돌려져야 할 이 시점에서, 서울시는 더 이상 무책임한 행태를 그만두고 제대로 된 의지와 방향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지난 2015년 11월 23일에는 서울시청에서 탈시설을 한 당사자들이 모여 ‘탈시설 권리 선언문’을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다. 전문을 비롯하여 총 15개의 조항으로 만들어진 이 선언문은 탈시설 당사자들이 하나하나의 조항을 직접 고민하고 작성하여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선언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배제하고 격리하는 모든 차별에 반대하며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을 다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진행된 천막 농성의 성과로 우리는 짧게나마 서울시장을 만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다른 선물과 함께 ‘탈시설 권리 선언문’을 액자에 담아 전달하였다. 그것은 단순한 선물은 아니었다. 탈시설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서울시가 다시 한 번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올바른 판단을 하라는 촉구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시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는 지금, 서울시는 그에 대한 응답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라지만, 이후의 TF팀 논의 결과에 따라 우리가 다시 한 번 힘을 모아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걸려있기에, 끝까지 포기하거나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에게는, 함께 할 동지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