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봄 107호 - 장애인독립진료소 이야기
장애인독립진료소 이야기
박누리 | (사)노들 소속으로 노들야학 교사를 하고 있는 누리입니다. (건조하게)
노들의 장애인독립진료소는 (사)노들, 참의료실현을위한청년한의사회,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고, 경희대 한의학과 동아리 길벗에서도 진료 활동을 도와주고 있다. 올해로 6년째를 맞는 독립진료소는 격주로 진행되며,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실을 진료실로 사용하여 의료기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방 진료를 제공한다.
2015년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사)노들에서 장애인주치의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덕분에 독립진료소에 오시는 장애인 환자분들에게 건강에 대한 강의도 하고, 환자분들의 모임을 만들어 스스로 자신의 건강권 향상을 위한 활동도 하고,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방문 진료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방문 진료는 신청자를 대상으로 한다. 처음에는 많은 홍보에도 불구하고 신청자가 거의 없어 전화기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홍보 문자를 보고 한 명의 신청자가 들어왔다. 이 신청자는 대학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고 의료진과도 스케줄이 잘 맞아 방문 진료를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방문 진료를 가게 된 장애인 A씨는 거의 누워서 지내는 거 같았고, 의사소통은 발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A씨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이 맞으면 발이나 발가락을 움직이고, 그렇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이런 A씨는 살면서 침을 처음 맞아본다고 했다. 그래서 침 시술을 할 때 몸이 많이 경직되고 가끔 경련도 일어나긴 했지만, 진료 받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셔서 어렵지 않게 진료를 할 수 있었다.
첫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휠체어가 몸에 잘 맞지 않아 밖으로의 외출이 힘들다고 했다. 예전에는 가끔 휠체어를 타고 나갔지만 어느 날 휠체어에서 내리던 중 바닥에 떨어져 허리를 다치게 되었고, 그 뒤로는 휠체어에 앉는 것 자체가 많이 힘들어진 듯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A씨가 만약에 병원에 자주 갈 수 있고 계속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괜찮지 않았을까, 또 A씨가 이동할 때 적절한 보조 기구가 있었다면 아예 떨어지지도 않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서 지금은 보조공학 기구를 봐주시는 선생님과 휠체어에 관해 얘기를 하기로 하고 연락을 주고받는 중이다.
두 번째 방문 진료 신청자인 B씨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어 호흡기를 연결하고 목에 튜브를 삽입한 상태였다. B씨는 눈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맞으면 눈을 깜빡거리고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있었다. B씨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사실 B씨가 사는 집 아래층에는 한의원이 있다. 바로 아래층에서 올라와 한방 진료를 진행할 수 있는 구조이지만 B씨는 진료를 받을 수 없었다. B씨의 배우자가 한의원에 진료를 요청했으나 한의사는 진료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처음 마주하는 케이스의 환자여서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이렇게 장애인들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병원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고, 병원에 물리적으로 접근은 가능하지만 장애인의 특수성을 고려한 의료 장비가 없는 곳도 많으며, 더 근본적으로 의료진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곳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사실 장애인들은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비장애인보다 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은 정말 열악한 실정이다. 앞으로 남은 방문 진료를 다 수행했을 때쯤이 되면, 전국은 고사하고 일단 서울에서만이라도 장애인들의 건강권 향상을 위한 정책이 시행되고 장애인들이 의료서비스를 좀 더 쉽게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많이 만들어져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러한 정책과 환경이 점차 전국으로 확대되어,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누리며 건강하게 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