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가을 105호 - [장판 핫이슈1] 현금지급제와 개인예산제, 아이고 의미 없다
[장판 핫이슈1]
현금지급제와 개인예산제, 아이고 의미 없다
김 도 현 | 노들장애인야학 교사이자 인터넷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발행인. 틈틈이 장애학(Disability Studies)에 관심을 두고 공부를 하고 있다. 특별난 고민은 없지만, 요즘은 현장 대중운동과 담론 운동의 병행 (불)가능성을 고민하며 산다.
사진 : 김도현 님의 토론 모습.
직접지불제도 도입 이전의
영국 돌봄서비스의 상황
‘다이렉트 페이먼트(direct payments)’, 한국말로 번역하여 ‘직접지불제도’.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자립생활운동 진영에서 자주 회자되고 있는 용어인데요, 직접지불제도는 ‘(돌봄)서비스 현금지급제도(cash for care)’에 대한 영국식 명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후의 글에서는 그냥 ‘직접지불제도=현금지급제도’로 생각하셔도 무방하겠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모든 장애인이 직접지불제도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은 아니며, 그러한 현금지급 방식을 원하는 장애인의 경우에 한해 적용되는 하나의 선택지입니다.
직접지불제도 도입 이전에 영국의 돌봄서비스는 ‘장애인의 선택권이 거의 보장되지 않는’ 형태의 현물서비스였습니다.1)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입해서 쉽게 서술해보면, 주민센터나 국민연금공단 지사에 가서 장애인이 서비스를 신청한 후 적격성 여부를 판단해서 승인이 되었을 경우, (서비스 제공 시간이 얼마인지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을 활동보조인으로 보낼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보낼지 등을 담당 사회복지공무원이 모두 알아서 결정해 파견하는 형태였던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영국의 현금지급제도와 개인예산제도(personal budgets)를 가장 종합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텍스트인 『장애인 중심 사회서비스 정책과 실천: 서비스 현금지급과 개인예산』을 보면, 현물서비스 이용자들과 장애인권옹호자들은 “캐서린을 담당하고 있는 사회서비스국은 직원이 갈 수 있는 시간이 5시에서 7시 사이이기 때문에 이때 직원을 보내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캐서린은 그 시간에는 지원이 필요 없다.”, “열흘 동안 돌보미가 5명이나 다녀갔습니다. 매번 자세히 설명해주어야 합니다.”2) 등의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현물서비스가 제공되다가 자립생활기금(Independent Living Fund, ILF)의 활용을 경유하여 1996년 「지역사회돌봄(직접지불제도)법(Community Care(Direct Payments) Act」에 의해 1997년부터 직접지불제도가 시행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들은 이전의 현물서비스와는 확연히 다른 선택권과 통제권이 생긴다는 느낌을 지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줄 보조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다른 보조인이 오지 않고, 같은 보조인이 계속 나를 도울 수 있습니다.”3)와 같은 긍정적 평가와 반응을 내놓게 됩니다.
한국은 이미 ‘준(準)현금지급제도+유사시장 시스템’
- 선택권 증진과 예산 절감이라는 이득이 새롭게 발생하는가?
영국의 직접지불제도가 적극적으로 논의될 수 있었던 이유, 혹은 이를 이끌어낸 추동력은 장애인 쪽에서는 선택권의 증진이었고, 정부 쪽에서는 신자유주의적 복지 개편에 따른 예산의 절감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활동지원서비스 전자바우처 시스템은 일정한 급여액이 결정되면, 그 급여액을 특정 단말기에서만 정산되는 체크카드를 통해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즉 한국의 활동지원서비스는 현물서비스라기보다는 준현금지급제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4) 또한 현재의 활동지원서비스 제공 시스템에는 시장기제(market mechanism)가 상당부분 도입되어 있습니다. 즉 장애인은 (다행히도 아직 영리기관은 진입할 수 없지만) 경쟁 관계에 있는 다수의 서비스 중계기관들 중 자신이 접근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며, 자부담 또한 지불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은 이미 ‘준현금지급제도+유사시장시스템’의 상황에 있기 때문에, 현금은 아니지만 “현금과 비슷한 선택권을 행사”5)하고 있습니다. 앞서 현물서비스를 이용하던 영국의 장애인들처럼 자신이 필요 없는 시간에 돌보미가 오는데도, 열흘 동안 돌보미가 다섯 번이나 바뀌거나 날마다 다른 보조인이 오는데도 그냥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아닙니다. 즉, 활동보조인이 하루 중 언제 와서 언제까지 일을 하도록 할지 결정할 수 있고, 현재의 활동보조인과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교체를 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장애인의 입장에서 직접지불제도와 같은 현금지급제도를 도입했을 때 어떤 특별한 유익함이 ‘추가적으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쉽게 비유적으로 설명을 해볼까요? 책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공무원들이 그냥 알아서 책을 배급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는 필요도 없고, 흥미도 없고, 수준에도 맞지 않는 책을 그냥 받아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열불 터집니다.(현물서비스 시스템) 그러다가 이 책에 대한 비용을 현금으로 지급합니다. 단 그 돈은 책을 사는 데 써야 합니다.(cash for books, 즉 현금지급 시스템) 당연히 후자가 훨씬 좋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도서상품권으로 지급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어차피 돈을 책(돌봄서비스)을 사는 데에 쓰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현금과 도서상품권(바우처)은 선택권이라는 측면에서 별다른 차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른 한편 정부 쪽에서 직접지불제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요인은 비용절감 효과입니다. 즉, 동일한 비용으로 더 많은 양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거나, 더 적은 비용으로 동일한 양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국의 장애학 저널 『장애와 사회(Disability & Society)』 홈페이지에 가서 ‘direct payments’로 검색을 하면, 이 제도가 도입되기 전후에 실린 관련 논문들의 다수가 그 비용효과성, 즉 비용절감 문제에 집중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영국에서 직접지불제도로 전환하면서 발생했던 비용 절감 중 대부분은 기존의 현물서비스 시스템에서 다소 비대한 형태로 존재했던 관리 인력(공무원)의 인건비와 행정 비용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준현금지급제도+유사시장시스템’하에서 그러한 관리 업무가 이미 비영리민간영역에 위탁되어 있기 때문에,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한국적 상황에서는 현금지급제도의 도입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선택권의 증진이라는 측면에서도, 비용의 절감(혹은 더 많은 양의 서비스 제공)이라는 측면에서도 어떤 이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따라서 완전한 경쟁적 시장시스템에 대한 맹목적인 선호가 아니라면, 현금지급제도를 시행해야 할 동기나 이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국에서도 직접지불제도의 선택률은
여전히 15% 수준
그렇다면 영국의 직접지불제도와 현재 한국의 시스템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장애인이 스스로 광고를 내서 활동보조인을 모집하고, 교육시키고, 보험에 가입시키고, 세금을 내는 등 고용주로서의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가 하지 않는가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활동보조인을 직접 모집하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 그리고 고용주로서 여러 가지 행정·회계 업무를 직접 처리하는데 있어서의 어려움 내지 번거로움은 생각보다 결코 작지 않은 것일 수 있습니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지요.
기존의 연구 결과를 보면 직접지불제도를 이용하는 장애인들 중 대략 34~43%가, 즉 3명 중 1명 이상이 활동보조인을 모집하는 것 자체에서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였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악몽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침이건 저녁이건 시간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일은 직원[활동보조인]을 모집하는 일입니다. 어딘가에 전화해서 적절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습니다.”6)와 같은 진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어려움들 때문에 잉글랜드에서 직접지불제도의 선택률은 사실 별로 높지 않습니다. 이 제도가 시행된 지 17년째에 접어든 2013-14년7)에 지역사회기반 서비스(community-based service)를 받은 18세 이상 성인 105만 2천 명 중 14.7%에 해당하는 15만 5천 명만이 직접지불제도를 이용하였습니다.8) 그러니까 대략 7명 중 6명은 직접지불제도를 선택하지 않은 것입니다. 각 지방정부의 재량에 맡겨져 있던 직접지불제도를 의무적으로 시행토록 2001년에 규정을 개정했고,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훨씬 넘게 지났는데도 그러했습니다. 그나마 직접지불제도의 이용 비율 증가 중 상당 부분은 지역사회기반 서비스를 이용하는 인구 자체의 감소에 기인한 것입니다.9) 결국 영국에서도 직접지불제도는 결코 다수의 장애인들이 선호하고 선택하는 제도라 할 수 없는 것이지요.
현금지급제도와 개인예산제도는
별개의 문제
영국의 경우 현금지급제도에 뒤이어 개인예산제도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흔히 이 두 제도는 필수불가결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인식이 되곤 합니다. 그러나 “개인예산제도는 기술적인 면에서 현금지급제도와 완전히 별개”10)의 문제이며, “서비스현금지급제는 개인예산을 받는 하나의 방법”11)에 불과합니다. 즉, ‘개별적 유연화(personalisation)’―한국에서 흔히 쓰이는 말로 ‘개인별 맞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라는 지향을 담는 틀로서의 ‘자기주도 지원(self-directed support)’, 그리고 이러한 자기주도 지원과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이를 구체화한 제도를 지칭하기도 하는 ‘개인예산제도’는 현금지급제도와 개념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구별되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입니다.
일단 개인예산제도는 돌봄서비스를 넘어선 사회서비스 전 영역(+@)을 그 대상으로 합니다. 그리고 어떤 장애인 K가 일정한 사정 절차를 걸쳐 여러 사회서비스에 대한 총량이 금액으로 환산되어 산출되면(즉 어떤 개인에 대해 예산액이 할당되면), 이러한 예산의 용도를 개인이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인예산제도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서비스 개시 이전에 자신에게 할당된 예산에 대해 ‘자기주도 조정’을 하는 것은 현금이나 바우처는 물론이고, 현물인 경우에도 시스템만 갖춰지면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것이지요.
잉글랜드의 경우에도 2013-14년에 자기주도 지원(개인예산제도)을 이용한 인구는 64만 7천 명인데12), 직접지불제도를 이용한 인구는 15만 5천 명이었습니다. 즉 24% 정도만이 직접지불제도를 통해 개인예산제도를 이용하였으며, 나머지 대다수는 개인에게 할당된 예산을 지방정부나 서비스 제공기관 등의 제3자가 관리하는 관리예산제(managed personal budgets)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직접지불제도가 (성인) 신체장애인 운동 쪽에서 추동력이 나온 반면, 2003년부터 시작된 개인예산제도는 직접지불제도를 거의 이용하지 않는 발달장애인 운동 진영에서 추동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이 두 제도가 본질적으로 상이한 차원의 문제였음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사진 : 장애인복지서비스, 현금지급방식 도입 가능한가? 토론회 모습.
핵심은
‘서비스 간 자기주도 조정’ 보다는
‘서비스별 자기주도 사정’에 있다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발달장애인법) 등에서 공식화된 용어를 따르자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주로 ‘개인별 지원’이라는 용어로 ‘개별적 유연화-자기주도 지원-개인예산제도’의 문제의식을 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개인예산제도는 검토해볼만한 여지가 충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저는 장애등급제 폐지라는 한국적 맥락에서 이야기되었던 개인별 지원에는 개별적 유연화와는 조금 다른 문제의식과 강조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자기주도 지원이라는 맥락에서 사용되는 개념을 차용해 이야기하자면 바로 ‘자기주도 사정(self-assessment)’[+동료 사정(peer assessment)]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의료적 기준에 의한 장애등급이나 여전히 재활적 기준에 얽매여 있는 일상생활활동/도구적 일상생활활동(ADL/IADL) 등을 바탕으로 한 전문가의 획일적 사정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필요와 욕구와 환경을 반영하여 이루어지는 사정이 핵심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야만 故 송국현 씨와 같은 장애인이 실제로는 활동보조인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데도, 장애등급 3급이라는 이유로, 또 인정점수가 낮게 나온다는 이유로 활동지원서비스에서 배제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故 오지석 씨와 같이 실제로는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한데 도 홀어머니와 함께 거주한다는(즉 독거가 아니라는) 이유로 충분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생겨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발달장애인법은 이미 개인예산제도의 부분적 적용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즉 현금 형태로 쉽게 환산이 가능한 바우처 방식의 서비스에 대해서는 이용자가 서비스 간 조정 권한을 지닐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방식의 서비스 조정이 장애인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닐지에 대해, 적어도 한국적 상황에서 저는 다소 회의적입니다. 만 18세 이상의 장애인이 일상적으로 받는 사회서비스는 사실상 활동지원서비스 하나이며, 만 18세 이하의 아동일 경우에도 활동지원서비스(와 장애아가족양육지원서비스 중 택1)와 발달재활서비스 2가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설령 서비스가 좀 더 여러 가지라고 하더라도 강조점은 각각의 서비스를 자기주도적 사정을 통해 적절하고 충분하게 이용하는 데 주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후적 조정이 크고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어떤 서비스의 사정 과정에서 자기주도적 사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함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우리에게 요구 되는 것 :
필요한 서비스의 구축과 예산의 확대
현금지급제도 및 개인예산제도와 관련하여 장애인대중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퍼져 있는 오해 중 하나는, 이 제도가 도입되면 주어진 돈을 마치 자신의 생활비나 용돈처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오해입니다. 영국은 물론이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식으로 현금지급제도와 개인예산제도가 운영되는 곳은 없습니다. 현금지급제도는 애초 돌봄서비스 분야를 대상으로 도입된 것이었고, 개인예산제도의 경우 당연히 훨씬 폭넓은 조정이 가능하고 또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적용 범위는 사회서비스 분야입니다.
그리고 설령 사회서비스 분야의 개인예산을 그 범위를 넘어선 영역에까지 사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를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것이 결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 자립을 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세 가지는 소득보장, 사회서비스, 주거입니다. 그런데 소득이 부족하여 부족한 사회서비스 비용을 빼서 소득보장의 영역에 보태는 식의 임기응변적 사용이 이루어지는 것은, 유연성의 확대일지는 몰라도 진정한 의미의 선택권 보장은 아닙니다. 악순환이고 궁핍화일 뿐이지요.
사회서비스 영역의 경우, 이를 식단으로 비유하자면 현재 장애인의 밥상에는 밥과 김치 정도만, 그것도 매우 부족한 양만이 놓여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한국적 상황에서는 무얼 선택하고 조정하고 할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일단 밥과 김치와 국에 대한 비용이라도 넉넉하게 있어야, 계란프라이를 하나 더 얹을지, 아니면 참치 캔을 하나 더 얹을지 선택과 조정이 가능한 것이지요.
굳이 ‘국’을 하나의 어떤 사회서비스에 대응시켜보자면, 저는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는 ‘자기결정지원인(self-determination supporter)’제도 같은 것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장애계가 함께 노력하고 있는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주로 신체적 장애인의 필요에 맞추어져 있는) 활동지원제도와 같은 사회서비스만으로는 불충분한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자기결정지원인은 성년후견제도와 같은 ‘의사결정 대리(substituted decision-making)’에서 ‘의사결정 조력(supported decision-making)’으로의 변화에 부응하는 대인서비스라고 할 수 있으며13), 당연히 지금의 활동보조인과는 완전히 다른 별도의 양성체계를 통해 충분한 전문성과 감수성을 지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서비스의 성격상 소위 ‘단가’가 활동지원제도보다 훨씬 더 높게 책정이 되어야 할 될 것입니다. 당연히 상당한 금액의 예산이 새롭게 투입되어야 합니다.
즉, 제가 생각하는 개인별 지원(서비스별 자기주도 사정)을 중심에 놓든 개인예산제도(서비스 간 자기주도 조정)를 중심에 놓든, 장애계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면서 소득보장 및 사회서비스 예산을 장애인의 필요에 부응할 수 있을 만큼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를 반드시 함께 고민해고 싸워나가야 합니다. 그러한 예산의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국적 현실에서 현금지급제도는 물론이고 개인예산제도를 둘러싼 토론과 논쟁조차도 장애인 당사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탁상공론에 불과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각주 1) 현물서비스라고 해서 이용자의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이 불가능한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한국적 상황에서, 그리고 이 글에서 주요 관심사는 아니기에 추가적인 논의는 하지 않기로 한다.
각주 2) 존 글래스비·로즈마리 리틀차일드, 『장애인 중심 사회서비스 정책과 실천: 서비스 현금지급과 개인예산』, 김용득·이동석 옮김, 올벼, 2013, 32쪽, 44쪽.
각주 3) 같은 책, 194쪽
각주 4) 바우처에 대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는 “정부가 특정 수혜자에게 교육, 주택, 의료 따위의 복지 서비스 구매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비용을 보조해 주기 위하여 지불을 보증하여 내놓은 전표”(강조는 인용자)이다.
각주 5) 이동석·김용득, “영국 서비스 현금지급과 개인예산제도의 쟁점 및 한국의 도입 가능성”, 『한국장애인복지학』 22호, 2013, 60쪽.
각주 6) 존 글래스비·로즈마리 리틀차일드, 『장애인 중심 사회서비스 정책과 실천』, 279~280쪽.
각주 7) 영국은 회계연도가 4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이다. 즉 2013-14년이란 2013년 4월부터 2014년 3월까지를 말한다.
각주 8) Health and Social Care Information Centre, Community Care Statistics: Social Services Activity, England(2013-14, Final release), HSCIS, 2014, pp. 44~46.
각주 9) 잉글랜드의 지역사회기반 서비스 이용 인구는 2008-09년에 153만 7천명이었다가 2013-14년에는 105만 2천명으로 5년 사이에 1/3가량이나 감소했다.
각주 10) 존 글래스비·로즈마리 리틀차일드, 『장애인 중심 사회서비스 정책과 실천』, 15쪽.
각주 11) 이동석·김용득, “영국 서비스 현금지급과 개인예산제도의 쟁점 및 한국의 도입 가능성”, 52쪽.
각주 12) Health and Social Care Information Centre, Community Care Statistics: Social Services Activity, England(2013-14, Final release), p. 55.
각주 13)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Committee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는 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RPD)의 이행 상황에 대한 한국의 1차 국가보고서를 심의한 후 2014년 10월에 제시한 최종 견해(Concluding observations)에서 “2013년 7월에 시행된 새로운 성년후견제가 ‘질병, 장애 또는 고령에 의한 정신적 제한으로 인해 일을 처리하는데 영구적으로 무능한 상태라고 간주된 사람’의 재산과 개인적 사안에 관계된 결정을 후견인이 내릴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는 것을 우려한다.”면서 “‘의사결정 대리’에서 당사자의 자율성과 의지, 그리고 선호를 존중하는 ‘의사결정 조력’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