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겨울 103호-내가 만난 진심들
내가 만난 진심들
장애인인권교육 강사 제은화
장애인 활동보조 일을 하면서 노들을 알게 됐고,1년쯤 되었을 무렵 우연히 ‘인권강의’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내가 강의를 나갈 생각보다는 인권이 뭔지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연극치료 공부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인권에 대한 관심이 항상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인권강의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익숙한 나에게도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단 두 시간 안에 학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야 하는 일이 어찌 쉽게 느껴질 수 있겠는가.
운 좋게 강의 경험이 있는 언니와 짝꿍이 되어 강의 준비를 하게 되었다. 가장 처음 한 건 ‘서로에 대해 알기’. 나는 어떤 일을 하든 함께하는 사람과의 궁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서로 친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 처음 만난 짝꿍 언니에 대해 아는 게 없었고, 서로 기본적인 성향을 알고 맞춰가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몇 가지 질문을 작성한 뒤 짝꿍 언니의 집을 방문해서 얘기를 나눴고, 밖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서로 궁금한 것을 묻기도 하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행히 우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통하는 것이 더 많았고, 어렵지 않게 의견을 조율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강의안을 공동으로 완성했고 첫 강의를 나가는 날이 다가왔다. 나는 겉으로 보기와는 다르게 좀 예민해서 공연이 있는 날에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니나 다를까, 첫 강의날도 왜 그렇게 긴장이 되던지 결국 밥을 먹지 못했다. 대신 강의가 끝나면 먹으려고 김밥 한 줄을 사서 아침 일찍 학교에 도착해 사람들을 기다렸다. 강의할 때 할 말들을 계속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그런데 대박! 장애인콜택시가 계속 연결되지 않아 짝꿍 언니가 학교에 못 올 것 같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장애인콜택시 문제는 정말 심각한 것 같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럼 나 혼자서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짧은 시간동안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결국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이 들어 (예민이고 나발이고) 김밥을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눈물 젖은 빵에 버금가는 이판사판 김밥이랄까.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장애인 콜택시가 극적으로 연결됐다는 연락이 왔고, 언니와 함께 무사히 첫 강의를 마칠 수 있었다.
첫 강의가 끝나고 우리끼리 피드백을 나누던 중 짝꿍 언니는 “은화 씨, 왜 그렇게 질문을 많이 해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조금 과도하게 하나하나 질문을 던졌다는 것을 자각했다. 연극치료를 할 때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려고 질문을 하던 버릇이 그대로 나왔던 것이었다. 그렇게 첫 강의를 발판 삼아 우리의 강의안은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쳤고, 이제는 제법 호흡이 잘 맞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가 된 것 같다. 사실 요즘은 강의가 많지 않은데도 짝꿍 언니에게서 가끔 연락이 온다. 참고가 될 만한 자료를 찾아서 보냈으니 읽어본 후 의견을 달라고 말이다. 짝꿍언니가 이렇게 열심이니 나도 자극을 받게 된다. 평소 관심이 있던 여성인권에 관한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눈다. ‘이렇게 같이 발전해가는 거겠지’란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힘을 내어 여러 의견들을 공유하는데 나는 그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
나는 인권강의에 대해 기본적으로 소박한 생각을 갖고 있다. 우리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어떠한 큰 감동이나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단지 우리의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세상에 계단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혹은 ‘차별받는 사람들이 내 생각보다 많구나’와 같은 생각만 해주어도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권강의를 하면서 이러한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진심들을 만나게 됐다.
어느 날은 강의 내내 열심히 경청을 하고 대답도 잘하던 학생이 마지막에 가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강의는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교실을 나서려는 순간 그 학생이 다가와서 무언가를 내밀었다. 우리(나, 짝꿍 언니, 활보선생님)를 그린 그림과 ‘꾸며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존재가 아름다워요’라는 문구―마치 시와 같은!―가 적힌 종이 한 장이었다. 우리가 교실을 나서기 전에 전해주려 부랴부랴 공책을 자르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던 모양이다. 아름다운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이 보이는 법일 테지. 짝꿍 언니와 나는 그날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이러한 진심어린 감동을 받아본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은 한 학생이 질문 시간에 갑자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집에서 막내인데, 언니와 오빠를 포함한 가족들이 자신의 말에는 제대로 대답도 해주지 않고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집에서 제가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는 일단 가족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대답해주었다. 그날 강의가 끝나고 짝꿍 언니와 그 학생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짝꿍 언니도 자기의 고민을 직접 얘기하는 학생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또 어느 날은 6학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왜소한 체구의 한 학생이 쉬는 시간에 불쑥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도 장애는 아니지만, 병이 있어요.” 대뜸 그렇게 말한 탓에, 나는 “아, 그렇구나.”라고만 일단 대답을 했다. 쉬는 시간이라교실이 다소 산만하기도 했고, 그 학생이 어느 정도까지 말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 눈치를 조금 살피더니 이내 말을 이어갔다. “뼈가 약해서 잘 자라지 않는 병이에요. 병원에도 다녔어요.” 그래서 요즘에도 병원에 다니는지 물으니 “병원에 입원했다가 2주 전에 다시 학교에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사실 강의 중간 쉬는 시간에 이렇게 나에게 다가와 이야기를 건네는 학생들이 꽤 있었다. “OO이는 약간 지적장애가 있어요. 그런데 학기 초반에 너무 우울해해서, 제가 부회장을 해보라고 추천을 해줬고 지금은 부회장을 하고 있어요. 우리 반 친구들이 열심히 하라고 뽑아줬어요. 그래서 자신감도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지금 저렇게 선생님들 옆에 왔다가 그냥 가는 건, 선생님들이 좋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몰라서 저러는 거예요.”라고 따뜻한 말투로 반 친구에 대해 설명을 해준 학생도 있었고, “저희 아버지도 장애인이에요. 일하다가 다리를 다치셨어요.”라고 말한 학생, 강의 내내 장난스러운 말투로 웃음을 주었다가 갑자기 “저희 둘째 누나도 장애인이에요.”라는 말만 던지고 가버린 학생까지.
나는 이러한 모든 반응들을 ‘내가 만난 진심들’ 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연극치료로도 상대방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신뢰감을 형성하는 과정에 공을 들이고 또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내가 만난 진심들’은 진솔한 자신들의 이야기였고, 수업시간에는 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이야기였다. 그러한 이야기들을 처음 만난 우리에게 해주었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우리의 진심도 그들에게 전해진 것이 아닐까 싶고, 그만큼 또 어깨도 무거워진다. 강의를 나가는 날이면 ‘네까짓 게 뭐라고 인권에 대해서 아는 척 강의를 하나’라는 걱정이 밀려오기도 한다.
앞으로 이렇게 자신감이 바닥을 칠 때면 ‘내가 만난 진심들’을 떠올릴 것이다.
무거워진 어깨만큼 내가 껴안은 진심들도 많아질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