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여름 101호 - 지금 국현 씨를 생각하는 모든 분들께
지금 국현 씨를 생각하는 모든 분들께 노들야학 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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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 할 수 있을 것인가?
갑자기 검붉은 색깔의 어린 장미가 가까이서 눈에 띄는데?
아, 우리가 장미를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왔을 때, 장미는 거기에 피어 있었다.
장미가 그곳에 피어 있기 전에는, 아무도 장미를 기대하지 않았다.
장미가 그곳에 피어있을 때는, 아무도 장미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아, 출발도 한 적 없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했구나.
하지만 모든 일이 워낙 이렇지 않았던가?
- 베르톨트 브레히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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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리는) 앞으로 한없이 국현 씨를 그리워하겠지요.
그와 함께했던 짧은 순간들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고, 엿가락처럼 휘어져 맘 깊은 곳에서 튕기고 끈적하게 달라붙습니다.
수업을, 사람을 너무 좋아하면서도 교실의 닫힌 공간이 힘들어 안절부절 하다가 결국 밖으로 나가버렸던 첫 미술수업. 바로 다음 주에 만난 그는 교실안에서 환하게 웃으며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환하고 반짝거리는 얼굴로. 그 얼굴에서 보았습니다. 작은 스케치북에 한가득 그림으로 채울 날이 멀지 않았음을. 자기 이름만이 아닌, 다른 글을 읽고 쓸 날을. 어쩜 새로 사귀게 될 여자친구를 보았습니다. 그는 배우고 싶어 했고, 사랑하고 싶어 했습니다. 노들은 아주 긴 시간 동안 그 시간들을 함께할 거라 조용히 약속하고 있었습니다.
노들은 그런 곳이니까요. 그네들이 1, 2년 해보고 말일을 12년이 걸리더라도 변함없이 응원하고 함께하는 곳이 바로 노들이니까요.
국현 씨는 그리기를 좋아했을까요. 만들기를 좋아 했을까요. 빨간색을 좋아했을까요. 노란색을 좋아했 을까요. ‘송국현’이란 이름 세 글자 말고 어떤 글씨를 써보고 싶었을까요. 혹시 짧은 스포츠머리 말고 다른 머리를 해보고 싶지 않았을까요. 함께했을 그 시간들이 너무 그립습니다.
우린 모두 각자 그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어떤 학생은 매일 그의 사진 앞을 지킵니다. 어떤 선생님은 매일 거리로 나가 그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러댑니다. 어떤 학생은, 어떤 선생은 매일 그가 가고 싶어 하던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배움의 길을 교실과 거리에서 이어가고 있습니다.
장례식 날. 시설에서 나올 때부터 국현 씨와 함께 하셨던 활동가 선생님이 목 놓아 울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사비로라도 활동보조를 더 고용했었더라면, 아님 활동가의 집에서 자게 했더라면… 그날 그런 일이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 한없이 곱씹으며 너무나 미안하다는 그 분의 말씀이 커다란 돌덩이가 되어 마음을 짓누릅니다. 어째서 그 분이 미안해 해야 하나요.
국현 씨에게 3급 딱지를 주곤, 매정하게 귀 막고 눈 막은 복지부 장관에게, 사과하라며 몇 날 며칠을 울부짖던 선생님이 아직도 사과조차 않는 복지부 장관을 보며 깊고 깊은 밤 국현 씨에게 미안하다 말하던… 그 속내를 무슨 수로 달랠 수 있을까요. 정작 국현 씨를 사지로 내몬 국가는 사과조차 않고, 그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만 미안하다 미안하다 할까요. 설혹 국현 씨가 그곳에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미안해하고 있을까봐 걱정이 됩니다.
10살짜리 꼬마도 활동보조서비스에 대해 설명을 듣고, 국현 씨에게 활동보조가 필요한지 안 필요한지를 물으면 당연하단 표정으로 “필요해요!” 대답합니다. 10살짜리 꼬마도 ‘인권’이 인간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가지는, 인간답게 살 권리라는 것을 압니다. 인권의 주체인 한 나라의 국민이 인권의 사각지대로 몰려나 보호 받지도 못한 채 외롭게 싸우다 죽었는데 어째서 국가는 고개 숙여 사과조차 하지 않습니까.
활동보조 시간이 부족해 혼자 자다가 몇 번이고 죽을 뻔 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하는 장애인 친구의 말을 들을 때마다 뒷골이 바짝바짝 시립니다. 그가 혼자 자는 날이면 친구들은 돌아가며 새벽에 전화를 겁니다. 혹시 죽어가고 있는 상황일 수 있으니까요. 오늘 이렇게 낄낄거리던 친구가 내일이 되면 없어져 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 그네들은 알고 있을까요.
국현 씨의 죽음에 우리는 함께 죽었습니다. 당장 나의 죽음도, 내 친구의 죽음도, 내 가족의 죽음도 그와 다르지 않을 테니 그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과 같았습니다. 얼마나 더 뜨거운 죽음이 있어야만 그네들의 차가운 머리가 반성할 수 있을까요. 얼토당토 않는 기준으로 인간에게 급수를 매기고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복지서비스를 차등을 두고 나눠 갖게 하는 장애등급제. 가족에게 장애의 책임을 물어 교묘히 국가의 의무를 가족에게로 떠넘기는 부양의무제. 치솟는 불길처럼 꺼질 줄 모르는 두 개의 화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벌건 눈을 부라리며 또 누군가의 목숨을 가져가기 위해 침을 질질 흘리고 있습니다.
살아남아주세요. 이 땅의 모든 국현 씨. 제발 죽지 말고 우리 곁에 계셔주세요. 먼 곳에 계신 국현 씨가 다시는 본인과 같은 동지를 만나지 않도록. 언젠가 다시 만날 때 이곳엔 드디어 그 드세던 불길이 사라졌고, 장애해방의 날이 왔다고, 바로 내가 쟁취했다고 이야기해 주세요. 그래서 사람답게 살다왔다고, 사람답게 먹고, 사람답게 자고, 사람답게 실컷 사랑 하다가 왔다고 이야기해 주세요.
우리는 앞으로 한없이 국현 씨를 그리워하겠지요.
우리 송국현을 잊지 말아요. 절대.
국현 씨에게 - 미술반 정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