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에 빠졌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면 그 사람의 현재 상황이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아니 더 나아가 굉장히 곤란한 상황일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선택해도 원하는 결론과는 거리가 있지만 결론을 선택할 수는 없는 이런 상황에서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이 알려진 영화는 아닌데 디스커넥트(Disconnect)란 영화가 있다.제목에서 이미 주제와 소재가 드러나는 영화다. 인터넷,SNS 등 광대한 네트워크를 통해 촘촘하게 연결되어 가깝고도 먼사이가 되어 있는, 친밀해지기도 쉽지만 위험해지기도 쉬울 수 있는 현대인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이 연결망 속에서 한편으로 각각의 개인들이 얼마나진실과 허구의 경계선에서 서로를 주고받는지, 욕망과 책임 사이에서 얼마나 위태롭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네트워크는 우리의 관계망을 더 확장시켰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네트워크 안에 있는 우리는 더 고립된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이란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그 ‘관계’를 위하여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도구를 부여받은 현 시대의 사람들이 오히려 역사상 관계에서 가장 소외된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이 지금의 사회에 대한 감독의 시각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각 등장인물의 존재가 네트워크와 현실의 경계를 깨고 드러날수록 긴장감은 커지고 다양한 딜레마가 펼쳐지지만, 우리들은 결국 관계 속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활보상담소 이야기에 갑자기 왜 영화 이야기가 나오는지 의문을 가지실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감독의 주제의식, 또는 감독의 못 다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쓴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중심 내용과는 별개로 나에게 다른 측면에서 중요했던 부분은 각각의 등장인물이 처한 딜레마 상황이었다. 성공에 대한 욕망과 지켜주고 싶은 책임 사이에서의 갈등, 잘못에 대한 처벌을 받아야 할 대상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임에서 오는 갈등, 자신이 당한 피해에 대해(결과를 떠나) 처벌을 할 수도 용서를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의 갈등, 문제의 원인을 계속 밖에서 찾았으나 그 원인은 어쩌면 결국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때의 갈등 등 영화 속에서 다양한 딜레마에 빠져있는 등장인물들을 바라보며 그 갈등의 내용보다 갈등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감정적으로 동질감을 많이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현재의 내 모습에 오버랩이 되었던 것이겠지.
활동보조 코디네이터를 하며 겪게 되는 다양한 사건과 상황들이 항상 분명한정답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묻고 끊임없이 대답해야한다. 어제 내린 답이 맞았다고 오늘 또 정답을 내릴 것이라는 법은 없다. 도덕적인 차원에선 A가 답일 수 있겠으나 인간적인 차원에선 B가 답에 더 가까울 수도있다. 이용자의 입장을 더 중시해야 하는 것인지 활동보조인의 입장을 더 중시해야 하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은 항상 있는 일 중의 하나이다.(더 자세한이야기를 곁들이면 이해하기 좋겠지만 이는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니이해해 주시길) 우리가 생각하는 이용자의 권익과 이용자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권익이 다른 경우도 있다. 우리의 판단이 더 적절할 수 있겠으나 그렇더라도이용자 본인의 생각을 무시하면서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어쩌면 이는 너무도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인간의 삶에서 나타나는 모습들을 한 가지 차원으로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는 것 자체가 교만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현실에서 가장 곤란한 지점은 항상 선택이 이루어져야만 되는 상황 속에 처한다는 것이다. 선택의 자유는 있지만 결론을 만들 수는 없다. 이용자,(서비스) 제공자, 연결자라는 간단한 공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풀어낼 수 없는 상황들이 너무 많다. 더전문화되어야 하겠지만. 활동보조 코디네이터는 어쩔 수 없이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 정말 -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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