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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jpg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진정으로 긴요하고 시급한 것은 무엇인가




   한 포털 검색창에 ‘긴급’이라고 치면 긴급이 들어간 몇 개의 단어가 나열된다. 긴급지원, 긴급출동, 긴급피난, 긴급복지지원제도 등등… 매우 중요하며 시각을 다툴 만큼 몹시 절박하고 급하다는 뜻의 ‘긴급’이 들어가있는 이러한 말들이 지금의 사회에서 얼마나 둔감하게 적용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8년 동안 장애인생활시설에서 획일적이고 무료한 생활을 하다가 자신만의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한 명의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왔다. 정확히 말하면 지역사회로의 완전한 복귀를 위해 연습과정(?)을 거칠 수 있는 장애인 자립생활 체험홈이라는 곳으로 나왔다.(노들센터는 이러한 체험홈을 2곳 운영하고 있다.)


   중증장애인에게 있어서 자립생활에 필요한 요소 중 가장 절실한 것은 자신의 손과 발이 되어 줄 활동보조인이다. 손과 발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그로서는 당연히 활동보조인이 필요하였고, 동사무소에 ‘긴급활동지원’을 신청하였다. 그런데 그가 들은 이야기는 ‘긴급활동지원’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바로 제도의 지침에 명시되어 있는 문구 때문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긴급지원 신청 사유

       수급자가 아닌 만 6세 이상 만 65세 미만의 1급 또는 2급 장애인으로서 다음과 같은긴급한 사 유가 발생한 경우 


       • 가족의 사망, 가출, 행방불명, 구금시설, 요양시설 입소 등의 사유로 신청인을 돌볼 가족이 없는 경우     

       • 천재지변, 화재 또는 이에 준하는 사유로 긴급하게 돌봄이 필요한 경우

       •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32조에 따른 보장시설에서 갑작스런 퇴소 또는 이에 준하는사유(보장시설 휴·폐업 등)     

         로 사전에 활동지원급여를 신청할 수 없어 긴급하게 돌봄이 필요한 경우





       

긴급 2.png

 위의내용 중 마지막 문장에 함정(?)이 있었다. 그는 분명히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32조에 따  른 ‘보장시설’에    서 퇴소하였으나, [갑작스런 퇴소 또는 이에 준하는 사유]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시설에서 나오기    전에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있었으니 갑작스러운 퇴소가 아니라 긴급한 지원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활동보조인이 아니면 외출하는 것도, 음식을 하는 것도,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 것도 할 수없는데도 말이다.   


   동사무소, 구청, 시청, 복지부, 국민연금공단의 모든 관계자와 통화를 하였으나 모두 한결같이 자신들은 권한이 없고 단지 지침에 따르는 것이라고 이야기 할 뿐이었다. 사람보다 지침상의 문구가 더 중요한 것인가. 긴급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계속 반복된 전화통화에 지쳤는지 국민연금공단의 담당자가 그를 만나보기로 하였고 그로부터 며칠 후 결국 그는 ‘긴급활동지원’ 대상자가 되었다. 그나마 의식 있는 담당자를만나서 다행히도(?)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정부에서 가난한 예술인을 돕는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예술인 긴급복지지원사업’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예술인에게 매달 100만원의 긴급복지지원금을 3 ~ 8개월간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2011년 지병과 생활고 끝에 생을 마감한 한 작가의 죽음이 배경이 된 것으로,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이 지원을 받기 위해 신청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신청을 받고 3달이 지나서야 1차 발표가 나는가 하면 대상자 선정 기준이 갑작스럽게 변경되는 등 긴급하게 지원이 필요했던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심지어 대상에서 탈락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한다. 제대로 기준조차 못잡고 있는 정부의 생색내기 지원 사업에 사람들은 쓴 한숨을 내뱉어야 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긴급해야 할 것들에 하나도 긴급해 보이지 않는다. 정말 무서운 이야기지만,설령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다 해도 말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배가 뒤집어졌다. 누군가의 실수였든, 이익을 챙기기 위한 불순한 의도였든, 무언가를 숨기기 위한 음모였든 그것은 차후의 문제이다. 일단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서 점점 바다가 삼키고 있는 배 안에서 사람들을 구조해야 했다. 지휘체계의 누군가가 진정으로 ‘긴급’한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수많은 목숨이 가라앉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 그대로 촌각을 다투는 절박한 상황에 승객들이 믿고 있었을 선장과 승무원들은 무엇을 한 것인가. 해양경찰은 왜 승객을 뒤로한 채 승무원 구조에 몰두했으며, 민간업체는 어떤 욕심을 가지고 그 자리를 지킨 것인가. 언론사는 왜 통제와 조작에 앞장섰고, 대한민국 정부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심지어 유가족의 이야기조차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인가. 무엇이 목숨보다 중요하고 무엇이 진실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보다 우선인가.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의 어떤 이들은 급할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전 국민이 충격에 빠졌던 세월호 참사 다음날인 4월 17일 목요일. 우리는 또 한명의 생명을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다. 송 - 국 - 현. 3급 중증장애를 가지고 장애인생활시설에서 20년간 살다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성동구에 위치한 장애인자립생활 체험홈(장애인이 생활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정착하기 위한 준비과정의공간으로 생활시설과 다르게 1 ~ 3명이 각자의 방을 쓰면서 생활한다)으로 나와 자립을 준비하다가 원인 모를 화재로 인해 온몸에 화상을 입고 중환자실에 실려간 지 나흘 만에 운명. 장애등급 1-2급만 받을 수 있는 활동지원제도 때문에 장애 3급이었던 그는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던 그는 화재가 나기 사흘 전 장애등급심사센터에서 ‘활동보조 긴급지원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기자회견 후 면담 신청 과정에서 장애등급심사센터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면담을 거부했고, 그대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 결국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중증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서 혼자 살게 된 것이 ‘긴급’한 상황이라고 정말 활동보조인이 필요하다고 만나서 얘기하고 대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하는데, 그걸 뿌리친 장애등급심사센터는 ‘긴급’한 상황에 있는 한 사람을 방치해 버린 것이다. 화마가 온 집안을 뒤덮는데도 자신의 힘으로 침대조차 벗어날 수 없던 그를. 누군가 불길이 치솟는 집의 문을 열어 누구 있느냐고 소리쳐도 “나 여기 있어요!” 라고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던그를. 이에 보건복지부 장관은 ‘유감’이라는 말로 자신과 그 수족들의 직무유기를 덮으려 했다.


   물론 모든 이들이 ‘긴급’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며, ‘긴급’하다 하더라도 개개인이 처한 상황과 정도는 분명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을 담보로 이를 실험하는 것 같은 일은 더 이상 벌어져서는 안 될것이다.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생명보다 우선인 것은 없으므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유로운 삶을 찾아 지역사회로 나오길 희망할 것이며, 어떤 누군가는 긴급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정부에서 마련한 긴급지원이 간절할 수도 있으며, 어떤 누군가는 생명을 구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이들에게 이 사회가 진정 긴요하고 시급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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