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여름 101호 - [나는 활동보조인 입니다] 이경민 님
안녕하세요.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서기현 소장님의 활동보조를 맡고 있는 이경민입니다. 소장님 곁에서 지내온 지 벌써 3개월이 지났습니다. 어리숙한 손길로 소장님께서 참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 잦은실수에도 뭐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다며, 처음치곤 괜찮다며 오히려 격려를 해주셨을 때마다 정말감사하는 마음으로 임했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가끔 실수를 합니다만 그럴 때면 소장님께서 매번 “활보가 디스야!” 하며 웃어주셨지
요. 네. 그렇게 은혜를 원수로 갚는 소장님께 특별한 활보로 나아가야겠습니다.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같은 기분입니다.ㅎㅎ 그래도 감사드리는 마음 항상 변치 않고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먹고 살아야하니 말입니다. 소장님 제 마음 아시죠?ㅎㅎㅎ
그러고 보니 제겐 나름 뜻 깊은 활동보조 지원동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자주 통기타 하나 들고 로망 찾아, 사람 찾아 떠돌곤 하였는데요. 한참 힘든 시절 집에만 있는 것이 정신만이 피폐해져 도저히 못 있겠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봉사 다닐 곳을 수소문하여 혼자 봉사공연을 다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몇몇 곳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깊은 산 속에 있었던 지적장애 아이들이 머물고 있던 시설이었습니다. 정말 깊은 오지에 있던 것 자체가 그냥 마음이 아팠는데 그 당시 여러 가지로도 놀람의 연속과 특별한 경험을 한 것이 기억에 많이 남아있는데요. 워낙 밖에서 장애인을 만날 기회가 없었고, 특히 지방에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환경의 열악함은 아무래도 서울보다 더 좋지 않음을 이제는 더 잘 알 수 있네요. 그렇게 생소하게만 보이는 모습들에 애써 웃으며 반가움의 표시였는지, 처음 본 사람의 방문이 썩 달갑지 않았는지 유난히도 원장님께서도 아이들의 난리법석을 다독이는 모습에 난감해 했던 제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네요
그런데도 제가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 그렇게도 정신이 없던 분위기가 노래의 시작 사인을 보낸 것도 아닌데, 마치 전부 기다렸다는 듯 어느새 삼삼오오 둘러 앉아 저를 바라보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정말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짙게 남아있습니다.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노래를 부르던 이내에 그런 생각이 들더랍니다. 이토록 누군가와 소통을 나누면서 눈치를 볼 것 없이, 순수히 나는 노래를 부르고 내 앞의 사람들은 노래를 들어주며 마음을 나눌 수 있던 자리가 얼마나 있었냐는 생각을 말입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의미는 장애인, 비장애인을 떠나 그만큼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찾아가 사람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와 뜻을 소통을 나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간도 꽤나 지나왔고, 사실 그때 이후로 또 같은 계기를 찾을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활동보조인이라는 일은 그때 그 기억을 되새기는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기회를 또 얻을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말이지요.
물론, 지금도 항상 제가 해야 할 몫의 일은 지키면서 계기를 찾아야한다는 점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현재 소장님 곁을 지키면서 보고 느끼는 일들은 그 만큼 혹 그 이상으로 보람을 얻고 배움을 갖고 있다는 생각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소장님을 만난 것이니 제게 정말 큰 운이 닿게 되었다고 보고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센터판, 문예판에서 소장님 활보를 맡은 순간들부터 많은 관심에, 또 얼마나 많이 챙겨들 주셨는지 하나하나 기억하며 감사히 지내고 있습니다.그럼 글 이만 마무리 짓도록 하며 한마디만 더 쓰고 물러가겠습니다.
장애인등급제
부양의무제
얼른 이 땅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힘내시고 건투를 빌겠습니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