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겨울 129호 - [고병권의 비마이너] 죽은 사람의 죽지 않은 말 / 고병권
고병권의 비마이너
죽은 사람의 죽지 않은 말
고병권
맑스, 니체, 스피노자 등의 철학,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책을 써왔다.
인간학을 둘러싼 전투의 최전선인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자리를 잡고 공부하고 있으며, 읽기의집 집사이기도 하다.
앞으로 국가의 한계, 자본의 한계,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공부를 오랫동안 할 생각이다.
말한 사람이 떠난 세상에 남아 이 사람 저 사람을 붙드는 저 말의 정체는 무엇인가. 새로 나온 책들을 일별하다가 어느 책의 표지에 박힌 말을 보고는 아는 사람을 확인하듯 눈이 커졌다. “나의 주위에 계신은 동료 여러분에게 부탁이 있읍니다. 네 이루어지지 안는 것들을 꼭 이어주십시요. 나의 시신은 화장해서 두망강에 뿌려주세요. 준호야 사랑한다. 꼭 너하고 사려고 해는데, 준호야 준호야 네가 보고 싶군나.” 익숙한 글씨, 맞춤법을 어긴 채 포복하듯 비뚤배뚤 나아가는 글자들. 어떻게 당신을 몰라볼 수 있겠는가.
『유언을 만난 세계』(오월의봄). 이 책에는 말하는 사람이 때로는 노트에, 때로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내맡긴 말들이 담겨 있다. 세상을 떠난 사람이 떠날 수 없는 원통함에 남겨두었거나, 보낸 사람이 보낼 수 없는 원통함에 붙잡아둔 말들이다. 책의 부제가 ‘장애해방 열사, 죽어서도 여기 머무는 자’이다.
‘열사’라고 했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은 기념관과 기념일을 가진 영웅들이 아니다. 이들은 현인도, 성자도, 위인도 아니다. 책 표지의 말을 유서로 남긴 최옥란을 비롯해서, 김순석, 최정환, 이덕인, 박흥수, 정태수, 박기연, 우동민. 그 이름을 불러준다고 해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익명인 존재들이다. 생을 마감하며 남긴 말들도 그렇다. 이들은 소크라테스처럼 “너희 자신을 돌보라”는 식의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이들이 마지막 숨을 아껴 내뱉은 말은 “복수해달라”(최정환)였다.
이들이 벌인 투쟁들도 그렇다. 똑같이 법을 어기고 목숨도 걸었지만, 이들은 진실한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국가의 명령을 어긴 소크라테스와 다르고, 민족해방과 노동해방을 부르짖으며 감옥에 끌려간 80년대의 민주투사들과도 다르다. 이들이 파출소에 끌려간 것은 법적으로 금지된 곳에서 길을 건넜거나 노점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어긴 법은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도로교통법이었고, 이들을 단속한 이들은 공안검사가 아니라 구청 공무원이었다.
이들의 요구 또한 영웅적인 것이 아니었다. ‘도로의 턱을 없애 달라’거나, ‘기초생활수급비를 현실화해 달라’거나, ‘장애인의 노동권을 인정해 달라’거나, 하다못해 ‘노점을 할 수 있게 허락해 달라’거나, 그도 아니면 제발 ‘빼앗아간 스피커와 배터리라도 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몇날 며칠을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싸웠다. 이들은 이 싸움에 목숨을 걸었다.
도로의 턱 때문에 건널 수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았다고 파출소에 끌려갔다 돌아온 김순석은 서울시장에게 ‘거리의 턱을 없애달라’는 편지를 쓴 후 음독자살했고, 최정환은 노점 물건을 찾으러간 구청에서 ‘병신 새끼’라는 말을 듣고는 몸에 불을 붙였으며, 이덕인은 노점을 지키기 위한 망루 투쟁 중에 “두 손목이 밧줄에 묶인 채” 인천 앞바다에 떠올랐고, 최옥란은 한 달치 기초생활수급비를 들고 복지부장관 집을 찾아가 “28만원으로 살아보라”는 쪽지를 남기고는 며칠 후 음독자살했다. 밑바닥 장애인들을 어떻게든 조직하려고 했던 박흥수와 정태수, 우동민의 심장은 어느 날 갑자기 멈추었고, 박기연은 자신의 휠체어를 달려오는 지하철에 밀어 넣었다.
현인도, 성자도, 위인도 아닌 사람들, 심지어 대학생, 노동자도 되지 못한 사람들. 그래도 이들은 노래했다고 한다. 이덕인은 「늙은 군인의 노래」를 개사한 곡을 불렀다. “나 태어나 이 강산에 무엇이 됐냐. 처자식 먹여 살리려 노점상이 되었단다.” 술에 취한 정태수는 「의연한 산하」를 흥얼거리곤 했다. “가슴이 빠개지도록 사무치는 이 강산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거부한다던, 복종을 달게 받지 않겠다던…”
한국 장애운동사에서는 이들 ‘안티히어로’들이 ‘열사’이다. 이들의 이름만큼이나 생소한 장한협, 장청, 전장협, 장자추 등의 조직들이 모두 이들로부터 태어났다. “이루어지지 안는 것들을 꼭 이어주십시오.”, “복수해달라.” 맞춤법도 틀렸고 품위도 없는 유언들, 때로 찌들고 피로 물든 이 얼룩들이 지금 한국 장애운동의 바탕 무늬이다. 죽은 자들이 남긴 죽지 않은 말들이 이 사람 저 사람을 붙들고 운동을 이만큼이나 키워온 것이다. 이 말들에 귀를 기울이고 이 말들을 모두 담아 펴낸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