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겨울 129호 - [나는 근로지원인입니다] 그녀가 포기하지 않고 더 많을 걸 바랬으면 / 신유정
나는 근로지원인입니다
그녀가 포기하지 않고
더 많을 걸 바랬으면
신유정
활동명 보리. 아마도, 동물권 활동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혹은 죽임당한 인간동물들과 비인간동물들에게 연대하려고 합니다.
작년 여름쯤 노들과 dxe를 이어주셨던 은전님에게 일자리를 소개받았는데, 동물권 활동을 하면서 육식 식당에서 일하는 것에 신물이 나 있던 차에 하던 알바들을 그만두고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이하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라는 긴 이름을 지닌 일자리에서 근로지원 일을 시작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따르면 국가는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시민들에게 교육할 의무가 있는데,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장애인 당사자가 권익옹호활동과 문화예술활동을 통해 장애인의 존재와 권리를 알리는 일을 하고 공공기관에게 임금을 받는 일자리이다. 일자리에 참여하시는 발달장애인분들은 기자회견이나 집회에 참여하고, 저상버스 도입을 촉구하는 피켓팅을 하고, 음악대에서 노래를 연습해 공연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활동한 내용을 sns 통해 알렸다. 근로지원인인 나는 이용자님과 함께 현장에 가면서 이동지원을 해 드리거나, 활동을 보고하는 보고서를 같이 쓰거나, 그 밖에 때마다 필요한 것들을 옆에서 지원했다. 권리를 생산하고 예술을 통해 장애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공공일자리라니,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일을 만들어나가는 데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스럽다. 시민으로서 연대하거나 전문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는 예술활동을 하는 것은 나에겐 무척 중요한 일들이지만 스스로 노동이라고 칭하기에 부끄럽곤 했었기 때문에, ‘이것도 노동이다!’라고 외치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나를 무척 설레게 한다. 앞으로 사회가 이 일자리를 마주하면서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이용자님과 같이 일하면서 현장에서, 그리고 이용자님에게서 많이 배우고 있다. 이용자님과 같이 팔짱을 끼고 이곳 저곳 다니다가 예전에 투쟁하러 왔었다고 하거나, 여기 엘리베이터가 없는데 설치해야한다고 하거나, 어디어디에 가서 탈시설하라고 말해야 한다고 하는 이용자님을 보면서, 이용자님이 노들과 오랫동안 함께 해온 세월이 느껴졌었다. 그리고 이용자님과 대화하면서 지역(공간)이나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이 나의 방식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이용자님이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패턴인 것 같고 이용자님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다. 같이 일하는 다른 일자리분들과도 대화하면서,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한 분 한 분이 관심사도, 행동하는 방식도 다르고 그런 한 분 한 분이 궁금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즐겁다. 가끔 너무 많은 것들을 듣고 보아서 힘들기도 하지만. 나는 ㅈ님의 노래도 좋고 ㅂ님의 그림도 좋고 ㅇ님이 사진을 자랑하는 것도 좋고 ㅎ님이 손을 흔들면서 인사해주시는 것도 좋고 ㅈ님이 조용히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주시는 모습도 좋고 ㄱ님이 가끔 핵심을 찌르는 말들을 해주실 때도 좋다.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옆에 같이 있거나 일자리분들이 하는 얘기들을 듣는 거라 '내가 하는 것도 노동인가?' 라는 생각도 자주 들었었는데, 그럴 때마다 장애를 가진 몸과 아닌 몸을 규정짓고 서로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사회를 거스르는 일이니 단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노동이라고 부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올해 악화된 코로나 상황 때문에 이용자님과 함께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고, 이용자님의 생활 환경과 하루 일과를 더 잘 알게 되면서 활동보조 24시간과 장애인평생교육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걸 더 느낄 수 있었다. 이용자님은 겉으로 보기에 대화도 잘 하시고 아는 길은 잘 다니시기 때문에 혼자 생활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어보이지만 평소 생활 반경에서 벗어난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혼자서 하는 건 어려워하신다. 하지만 이용자님의 활동보조 시간은 최소한이어서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되거나 필요한 물건을 사는 등 생활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일들에 활보 시간을 몰아서 쓰고 나면 더 무언가 하기엔 시간이 모자라다. 예를 들면 먹고 싶은 음식을 식당에 가서 먹거나 사고 싶은 물건을 기억해두고 사기까지, 글자를 모르고 익숙하지 않은 일을 어려워하는 이용자님한테는 거쳐야하는 사회적이거나 심리적인 장벽들이 있다. 하고 싶은 게 있을 땐 활동보조인이 오는 시간으로 미뤄두곤 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 조그만 물건들과 취향들이 모여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활보 시간이 더 많다면, 혹은 지금은 혼자서 할 수 없는 것들이 익숙해질 때까지 천천히 배워나갈 수 있다면 생활이 더 윤택할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근로지원인인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을 때 이용자님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녀가 포기하지 않고 더 많은 걸 바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