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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글뽀글 활보상담소]

하루 5000원의 삶, 당신은 행복한가요?

 

 

서기현 |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소장.

어머니의 태몽에서 백사로 변해 치맛속(?)으로 들어가 태어나서 그런지 입만 살아있고 팔다리는 못씀.

역시나 뱀처럼 음흉하고 똑똑하여 이간질을 잘 함. 그래서 쏠로 ㅠㅠ

천운으로 센터판 소장으로 들어와 아직까지는 버티고는 있지만 글쎄

 

 

활동지원 서비스를 공식적으로 받고 산 지 15년째이다. 내 나이가 올해 46살이니 31살까지 난 가족에게 또는 주변 지인들에게 짐이었다. 도움을 받는 게 당연했고, 끝없이 미안해 했고, 고마워해야 했다. 항상 가족의 희생에 기생해야 했고 지인들의 호의에 감지덕지해야 했다. 그들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쳤고 그럴수록 나는, 나 자신은 먼지처럼 흩어질 뿐이었다. 온전한 나는 보이질 않았다.

 

그런 혼란스럽고 불쌍한 삶을 살다가 이 판(?)에 기어코 들어오게 된다.

 

2002,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나름의 직장생활(이라 쓰고 회사 노숙이라 읽는다)을 열심히 하다가 회사 내의 내 컴퓨터를 담보 삼아 회사에서 빌린 돈(그냥 가불)으로 전동휠체어라는 신세계를 접한 후, 아예 나는 그곳을 떠나버리게 된다. 여러가지의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없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난 내가 천재인줄 알았고, 그 천재성으로 그 수많은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역시나 천재도 아니었고, 그럴수록 몸으로 때워야 - 철야,철야,외근,외근,수많은 클레임.... - 했었고 정신적 스트레스에 몸에도 이상이 생겨 회사에 손실을 입히고, 매출은 떨어지고...) 도움도 안 되는 한낱 장애인을 왜 도와줘가며 붙들고 있느냐는 볼멘소리가 들릴 때 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왔다. 대출의 담보(?)였던 내 컴퓨터를 퇴직금 삼아.

 

처음에는 홀가분했고 내 다시는 컴퓨터로 밥 벌어먹나 봐라(?) 하면서 까지 통쾌했지만 몇 달 되지 않아 곧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재가(중증) 장애인, 꿈도 희망도 돈도 친구도 뭣도 없는. 그런 장애인. (싸이가 떠오르는 건 기분 탓)

 

몇 달간은 적당하게 무시무시한 눈치를 뭉개며 백수 생활을 즐겼다. 하지만 IMF때 다 파산하고 그 망한 집안을 세우려고 어머니는 청소용역을 뛰시고 아버지는 택시운전 하시고, 동생들은 학자금 대출로 겨우 대학을 졸업하고 온라인 쇼핑몰(그때 막 g*켓이 태동하던 시기)을 운영하며 하루 몇 백개의 상품을 포장하던 그 집안 분위기에서 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회사 다닐 때부터 그나마 알던 몇몇 특수학교 친구들과 연락을 하고 있던 차에 어떤 장애인 단체의 주말 모임에 어렵사리 참여하게 된다. 당시에는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가뭄에 콩 나듯 띄엄띄엄 있어서 전동휠체어가 아닌 수동휠체어를 타야했고 혼자 움직일 수 없었던 나는 그 단체에서 연결해준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물론 연결보다는 펑크가 많았다. 그럴 때 많이 아쉬워(?)는 했어도 욕은 할 수 없었다. 그저 와 주면 고마워해야 했다.

 

그렇게 그 단체에서 활동의 폭을 넓혔고 사실 한 줌도 안 되는 컴 능력을 슬쩍슬쩍 흘리(?)니 비상근 간사를 시작으로 상근 간사(무려 정책팀. 활동 1주만에 기사 하나 던져주고 성명서 쓰라던 당시 팀장노.. 아니 님. 요즘 잘 나갑디다? ㅂㄷㅂㄷ)를 거쳐 커다란 역할다운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활동지원사업 코디네이터였다. 그게 2004.

 

사실 나 같은 장애인이 맡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 몇 안 되는 단체 내의 사회복지사가 했었지만 더 많은 월급을 찾아(...) 이직을 했고 그나마 조금 엑셀을 다룰 줄 알았던 내가 맡게 된 것이었다. 심지어 같은 단체 활동가에게는 활동지원서비스(당시에는 바우처가 이니라 단체에 몇 천만원의 예산을 내려주면 단체에서 알아서 이용자를 선정하고 서비스 양도 마음대로 정해서 서비스하던 시절이다. 참 편했던 복지부.)를 줄 수 없다는 지침 때문에 나는 서비스를 받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몇 달 뒤 서울시 차원의 활동지원 시범 사업으로 겨우 월 60시간 지원 받게 된다. 그게 2005.

 

그렇게 2010년까지 난 활동지원사업 코디이자 이용자로 살았다. 그리고 또 지금까지 자립생활센터 활동가이자 활동지원서비스 이용자로서 살아오고 있다.

 

사실 여기까지는 나의 역사였고 활동지원 서비스의 요구는 2000년대 초부터 있었다. 7~8년간의 줄기찬 요구로 얻어내긴 했지만 노무현 정부의 막바지, 생산성 있는 복지를 내세우면서 지금 이 글의 주제이기도한 바우처 본인부담금을 도입한다.

 

 

활동지원 바우처 본인부담금

 

언뜻 그 당시 정부의 논리는 그럴 듯해 보인다. 본인부담금을 내면 서비스 받음에 책임성이 높아지고(?) 다른 유사 서비스와의 형평성을 고려하였다.....?

 

그러니까 장애인이 돈을 내고 활동지원 서비스를 쓰면 어떤 책임성이 생긴다는 걸까? 내 돈이 들어가니 아껴서 쓴다? 조심히 쓴다? 아끼거나 조심한다는 것은 활동지원사에게 함부로 안 하게 될 것이라는 건데... 그것이 왜 본인부담금과 연결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돈을 내면 어째서 활동지원사에게 함부로 안 하고 시간을 아껴쓰게 된다라는 것인지? 그냥 내 돈이 활동지원사 급여에 들어가든 말든 상호간에 조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람간의 도리 아닌가? 그 도리가 내 돈이 들어간다고 해서 더 높아진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역으로 '당신은 내 돈을 급여의 일부로 받아가니 내가 고용한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내 말에 복종하시오'라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실제 이런 사례 다수 경험;;;;) , 내 돈이 들어가니 시간을 아껴쓰게 될 것이라는 추측은 말 그대로 추측일 뿐 그 어떤 근거도 없다. 내 돈이 얼마나 들어가든 내 인정시간이 실제 필요시간보다 적으면 어떻게든 아껴쓸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여유롭게 쓸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다른 유사서비스와의 형평성 때문에 본인부담금을 없앨 수 없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활동지원서비스 취지 근본을 뒤흔드는 발상이다. 활동지원서비스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보조한다는 것이다. 또 다르게 해석하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일한 삶(일상생활)을 살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물론 활동지원서비스만 가지고 그런 것이 실현될 수는 없다. 편의시설, 이동수단, 정보접근 등 많은 요소가 어우러져야 장애인의 삶이 비장애인들과 동등해질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활동지원서비스가 그 바탕이 되어야 나머지가 따라올 수 있다는 것이다.

 

권리로서의 활동지원서비스, 우리는 2000년대 초부터 주구장창 정부에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까지도 그것을 철저하게 무시해왔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정부의 속내는 '우리 돈 없으니 니들이 내' 이다. 정부는 스스로도 명분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일부 전문가나 교수의 입을 빌어 생산적 복지, 책임성 등을 운운하며 핑계를 대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적지 않은 (수급자가 아닌) 장애인들은 그 본인부담금 때문에 서비스 신청을 아예 엄두도 못 내거나 신청을 해서 시간을 받아도 서비스를 포기하게 이른다. 최대 한 달 164,900. 그 어떤 직업이나 돈벌이가 없고 가족과 함께 사는 장애인들은 돈을 바라는 것마저 눈치인 것이고 짐인 것이다.

 

필자도 월급을 받고 건강보험료를 많이(?) 낸다고 하여 월 최대액 164,900원을 달마다 꼬박꼬박 내고 있다. 아마도 안 낼 수는 없다. 안 내면 바우처가 생성이 안 될 테고, 내 생활은 이루 말할 것도 없이 망가질 테고, 혼자 사는 지금으로서는 죽을 수도 있을 테니.

 

하루에 약 5000, 적은 돈인가요?

 

그저 ''기 위한 돈.

가만히 있어도 ''기 위해 내야하는 돈.

안 내면 ''을 수도 있는 돈.

 

그래, 그래서, ......행복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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