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 122호 - [노들은 사랑을 싣고] 노들에 온 지 20년, 강현정의 지난 이야기들
[노들은 사랑을 싣고]
노들에 온 지 20년, 강현정의 지난 이야기들
김명학 | 노들과 함께 하는 사람
저는 노들야학의 김명학입니다. 이 코너는 [노들은 사랑을 싣고]라는 코너입니다. 현정 님 같은 노들의 동문을 만나서 안부를 묻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제가 궁금한 질문들을 하고 답을 듣는 그런 시간입니다.
그럼 인터뷰 시작 할까요?
명학 : 노들야학 동문 강현정 님. 안녕하세요. 우선 현정 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현정 : 전 노들야학에 온 지, 20년이 됐어요. 강현정이라고 합니다. 저는 지금 노들센터에서 권익옹호 일자리를 하고 있어요.
명학 : 자. 첫 번째 질문인데요. 노들야학은 언제 어떻게 들어오셨는지요?
현정 : 노들엔 애린이와 같이 왔어요. 안건형 씨가 야학 생활을 하셨는데 그분을 알게 돼서 야학에 오게 됐습니다. 그 때 제가 20대 초반이었을 때예요.
명학 : 그렇군요. 두 번째 질문입니다. 야학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수업, 투쟁, 그 외 야학에 다니면서 있었던 일 등등..)
현정 : 기억나는 것은... 다 기억이 많이 남지요. 투쟁도 많이 했었고 행사도 많이 했고.
명학 : <버스를 타자> 영상에 현정 님이 많이 나와요. 울고 있는 모습이 인상에 남아요.
현정 : 열불이 나서 울었어요. 옛날 활동을 떠올려 보면 옛날엔 이랬었지 하는 생각이 들고 야학 수업도 많이 생각나고, 제가 총무도 해봤고 학생회장도 해봤어요. 그때 제가 진행했던 것들이 생각나요. 잘했던 것, 못했던 것들. 또 교사들과 수업하면서 재밌게 지냈던 것도 좋았고, 교사중에 혜선 샘과 은전이 있었고, 승화 샘하고 남자 샘이 누가 있었지. 아, 여송 샘. 그리고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아, 동엽이형도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야학에 다니면서 일을 시작했어요. 사무국에서 수익사업을 했는데 그때 그 일을 했어요. 행사 때 제가 만들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서 판매도 했었어요.
명학 : 현정 님이 손재주가 좋았어요.
현정 : 그랬네요.^^
명학 : 자 다음 질문입니다. 노들야학을 다니면서 제일 기뻤던 일, 슬펐던 일은 무엇이 있었나요?
현정 : 기뻤던 일은 투쟁을 하면서 우리가 요구한 것에 대해 결과가 나왔을 때, 우리가 요구를 하면서 싸웠는데, 됐을 때. 우리가 버스타기 한 것도 됐었잖아요.
명학 : 가장 슬펐던 일은 무엇이었어요?
현정 : 야학 학생이었던 영주가 그때 제가 야학에 다닐 때는 아니었고 일을 하고 있었는데, 영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마음이 많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가족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화가 또 나고...
명학 : 뭐 때문에 화가 났어요?
현정 : 영주가 살아있을 때 영주랑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그때 이야기들이 많이 생각나네요. 부모님들이 영주를 남같이 대했던 게, 신경을 쓰지 않은 게. 영주가 많이 아파했는데 그럴 때마다 부모님들이 신경을 안 쓰고 그러다가 그렇게 된 거니까...
명학 : 네 번째 질문입니다. 내가 투쟁하는 이유, 노들야학이 투쟁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시는지?
현정 : 내가 투쟁하는 이유는 내가 나도 이렇게 해야, 뭐든 같이 싸워야, 같은 장애인끼리 싸워야 하고. 뭐라고 해야 될까요? 이런 말을 제가 잘 못해서. 싸워야 우리의 소리를 듣고 단 한 번에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우리가 지치지 않고 계속 싸워야 그 사람들도 들을 거 아니에요. 그래야 좀 달라지고 우리도 잘 살 수 있으니까. 아직까지 못한 것들이 있긴 하지만요.
명학 : 첫 번째 버스타기를 한 곳이 어디인지 아세요?
현정 : 저기요. (손가락으로 혜화 로터리 쪽을 가리키며)
명학 : 맞아요. 혜화로터리예요. 저상버스를 볼 때나, 전철을 탈 때 엘리베이터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현정 : 우리가 싸워서 만든 거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전철 탈 때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가끔 사람들이랑 부닥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그런 생각이 더 들어요.
명학 : 저도 그래요. 노들야학이 투쟁하는 이유는 뭘까요?
현정 : 일단 내가 처음에 이야기했던 거랑 같은 것 같아요. 노들야학이 투쟁하는 것이 여러 느낌들과 감정이 드는데 말로 설명하기 힘드네요. 그냥 제가 투쟁하는 이유와 같은 것 같아요.
명학 : 노들야학은 언제, 어떻게 그만두게 되었는지?
현정 : 2009년도인가, 2008년도인가. 그때 그만두게 됐는데, 장애여성공감에 있는 쿠키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1년을 거기서 했어요. 그러다 신랑을 만나서 신랑 따라 부산으로 가서 그만 뒀어요. 부산에 야학동문인 이흥호 님이 있었는데, 그 분을 알게 됐고 부산에 있는 자립생활센터에 놀러도 가고 하면서 부산에서 2년을 살다 다시 서울로 올라왔어요.
명학 : 마지막 질문입니다. 노들야학에 하고 싶은 말 있으시면 한 말씀 해주시겠어요?
현정 : 야학에 하고 싶은 말은, 야학이니까 수업이잖아요. 수업 말고도 특활수업 마냥 컴퓨터 교실이든 뭐든 뭐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노들엔 많으니까, 다른 장애인분들이 더 많이 와서 그런 공간에서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강현정 동문을 만났습니다. 현정 님과의 만남은 제가 잊고 있던 것들, 몰랐던 것들에 대해 다시금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옛날의 현정 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투쟁을 할 때마다 언제나 앞장섰던 꿈 많던 20대 초반의 현정 님이 생각이 납니다. 그러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앞으로도 현정 님 함께 싸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그런 세상에서 옛날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