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119호 - 장애인 활동보조 권리 찾기를 위한 점수와의 전쟁 / 조민제
장애인 활동보조 권리 찾기를 위한 점수와의 전쟁
조민제
스물 셋에 장애인지역공동체에서 활동을 시작한 후 서른여섯인 지금까지 장판(장애인운동판)에서 현존하는 사람.
다른 결이지만 박경석 교장 쌤의 일쉼동체론(일이 곧 쉼이다)을 본의 아니게 실현 중이다.
얼마 전 420투쟁으로 서울에 갔다가 허리가 나가서 슬퍼하고 있다.
나는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구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보냈고, 대학도 대구대학교를 다녔으며, 현재 활동도 대구 장애인지역공동체에서 하고 있다. 2009년 울산에서 장애인생존권쟁취를 위한 전국 집회 중 구속되 어 울산구치소에서 두 달 정도의 수감 생활을 한 것을 제외하면, 대구는 정말 말 그대로 내 삶의 터전인 곳이다.
그렇게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대구’를 수식하는 단어는 참으로 많다. 보수의 성지, 시뻘건 동네(원래는 시퍼랬는데 빨간색이 보수를 상징하는 컬러가 된 이후 ‘시뻘건’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대프리카, 청년 유출이 가장 많은 대도시, 고담 대구 등.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고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고, 여름에는 기록적인 더위를 선사하며, 각종 안전 관련 참사가 많았던 이곳에서 나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장애인운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운동을 결심한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선배들이 중증장애인이었고, 그들이 진보적 장애인운동을 하겠다며 2006년 대구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학생 때부터 엄청 멋지고 존경스럽던 양반들이 정작 지역에서 살아가는 삶은, 활동보조가 없어서 밥을 굶고 화장실을 못가고 냉장고의 음식은 썩고 있는 처참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게 너무 분하고 억울했다. 그래서 당시 장애인지역공동체의 당사자 활동가들과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는 선배들이 활동보조 제도화 투쟁을 하자고 할 때 그 제안을 덥석 받았고, 대구시청 앞에서 43일 동안 신나게 함께 살며 싸우다 보니 이게 너무너무 매력적인 일이었던지라 지금까지 이렇게 살고 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장애인활동보조 제도화’를 외치고 투쟁했던 2006년, 그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지금은 어느덧 2019년을 맞이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도 그놈의 ‘활동보조’를 끊임없이 정부와 지자체, 국민연금공단에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노들바람』 지면을 통해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 ‘활동보조’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국민연금공단과 벌인 점수와의 전쟁에 관한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잠시 2018년 가을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때 대구에서는 대구시장 후보자에게 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정책요구안을 제시하고 152일간 시청 앞 농성을 했다. 당시 대구시립희망원 탈시설 문제도 굉장히 주요한 의제였는데, 짧게 요약하여 말하면, 1,150명 이 집단으로 수용되어 살아가는 대구시립희망 원이라는 시설에 36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각종 인권유린과 비리가 난무했다. 정말 빡세게 싸워서 2018년 12월까지 희망원 내 장애인거주시설을 폐쇄하고 탈시설을 지원하기로 약속받았다. 그래서 2018년 초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탈시설 의향을 확인했는데, 절반 정도는 본인이 원하거나 가족의 의향에 의해 다른 시설로 이주 조치가 진행되었고, 나머지 절반은 지역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 중 조사 당시 의사소통이 어려워 명확한 답을 못했고 연고가 전혀 없는 최중증 발달장애인 9명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쟁점이 되었다. 대구시는 다른 시설로의 전원 조치를 계획했고, 우리는 UN장애인권리협약부터 시작하여 각종 근거를 제시하며 지역사회로 자립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 결과 대구시와 활동보조 월 200시간 추가 지원, 자립주택 제공, 낮 시간 주간센터 서비스 제공 등에 합의하고 일 년 동안 이분들이 정착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판단하자고 결정되었다. 이것이 2019년부터 진행된 ‘희망원 최중증 발달장애인 자립시범사업’이다.
그러나 시범사업을 앞두고 여러 가지를 검토하면서 활동가들의 눈앞은 캄캄해지기 시작 했다. 일단 이분들이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활동보조 24시간 지원체계가 필요한데, 현행의 활동보조 인정조사표는 발달장애인들에게는 도저히 점수가 잘 나올 수 없는 터무니없는 기준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발달장애인의 경우 활동보조등급 4등급 중 잘 받아야 2등급 정도가 나온다. 2등급을 받으면 하루에 3시간 정도의 활동보조 시간을 받을 수 있다. 2등급을 받았다 하더라도, 하루 3시간은 활동지원사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노동시간이 되지 않고,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가 있는 활동지원사를 구하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서비스 판정을 받고도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발달장애인에게 등급이 낮게 나오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신체장애인에 비해 움직임이 많으니까. 발달장애인의 경우 몸을 움직일 수 있더라도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건복지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자면,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는 신체적 움직임을 보이면 점수가 안 나온다.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도 말이다. 참으로 ‘지랄 맞은’ 점수체계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정말 많은 고민을 했 다. 기존의 절차대로 서비스를 신청해서 통상적인 조사를 거쳐 점수를 받으면, 활동보조 시간은 하루에 3~4시간 정도밖에 안될 듯했다. 시에서 제공하는 추가 시간을 합치더라도 하루에 10시간이 채 되지 않는 활동보조를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국민연금공단에 대대적인 압박을 진행하게 된다. 1차로는 국민연금공단 지역본부와 지사를 만나 면담을 진행하며, 희망원에서 일어났던 끔직한 인권 유린과 비리 사건을 브리핑했고, 이분들이 지역사회로 나와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어필했다. 그리고 대구시의 기준으로 장애인활동보조 24시간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인정점수가 425점을 무조건 넘어야한다고 어필했다. 그러나 국민연금공단은 우리의 이러한 절박함에 대해 ‘기준대로 할 수밖에 없다. 노력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했고,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기준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국민연금공단의 기준을 토대로 우리는 9명에 대한 의사소견서 및 진단서, 개별 면담 및 관찰기록을 종합하여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주간센터, 대구시립희망원이 공동으로 별도의 지원기관 의견서를 작성했다. 이들에게 활동 보조 24시간이 필요한 이유를 매우 상세히 기술하고, 인정조사표에 따라 문항 당 받아야하는 점수를 기재하고, 점수에 대한 근거를 제시 했다. 국민연금공단은 우리의 의견서에 상당한 부담을 가졌지만, 문항마다 이분들이 받아야 할 점수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일정한 당위성을 지닌 기준이 될 수 있었다.
더불어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금호 집행위원장이 매일 1~2회 이상 공단관계자에게 전화해서 어필했고, 면담 조사를 진행할 때 당사자들을 지원하는 관계자 5~6명이 동석하여 당사자의 장애 정도와 상황을 설명했다. 그 결과 440점 이상 6명, 435점 2명, 425점 1명 이라는, 발달장애를 주장애로 가진 이들에게는 나오기 정말 힘든 점수를 받아냈다. 대구시 기준에 따라 이분들은 활동보조 24시간 대상에 포함되었다. 희망원이라는 특수성과 사안의 심각성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결과이긴 하나, 이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활동보조 인정 점수 사례로서 매우 중요한 결과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그동안 활동보조 시간이 적어 씻지 못하고, 밥을 못 먹고, 외출이 어려웠던 장애인들을 만나 이에 대한 활동보조 등급변경 신청 절차를 밟고 있다. 관련 법상 이의신청 기간이 지난 활동보조 이용자는 등급변경 신청을 할 수 있는데, 법상으로 ‘의사소견서’ 를 제출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활동보조가 더 필요해 신청하는 등급변경에서 의사소견서만이 근거가 되는 것은 부당하고 불합리하다. 그래서 의사소견서가 없는 경우 ‘기관의견서’를 내는 것도 인정하라고 구청에 요구했고, 이 요구가 받아들여져 최근 14명에 대한 활동보조 재조사가 실시되었다. 재조사를 신청한 14명 중 13명은 탈시설 장애인이며, 8명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
대구 지역에서는 열심히 공단을 만나고, 연락을 하고, 조사를 지원하며 이렇게 점수와의 전쟁을 펼쳐가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점수에 따라 삶이 좌지우지 되는 현재의 구조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당사자의 의사가 반영된 서비스 판정이 이루어 지고, 이에 따라 서비스가 제공되어 기본적인 삶을 보장받는 체계를 만들어 내는 일. 이것이 현재 활동보조 관련 투쟁을 하는 우리가 풀어 가야 할 과제이고, 함께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해야하는 지점이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울부짖고 애원하고 매달리고 싸웠다. 이제 더 이상 점수 때문에 빌고, 울고, 싸우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조사원에게 장애의 중함을 증명해가며 구걸하듯 설득해야 하는가. 나에게 서비스가 이만큼 필요하다는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토대로 서비스가 제공되는 세상은 언제쯤 올까?
활동보조 재심사를 지원하며 영화 「설국열차」가 떠올랐다. 꼬리칸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존엄을 박탈당한 채 가까스로 연명하던 사람들이 그곳을 탈출해서 결국 열차라는 시스템을 파괴하는 이야기가 말이다. 이제 꼬 리칸을 탈출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활동보조 인정점수 체계라는 열차를 벗어나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