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자료실

조회 수 34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타인의 노들야학

2.jpg

정종헌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연대하고 투쟁하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내게 조금이라도 사회적인 의식의 씨앗이 있 다면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돈값으로 매겨지는 만족을 가르치려 들었던 친족이나 선생들이 반면교사로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학생이라면 다른 것을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해야 한다거나 나부터 출세해서 잘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다양하게 자신을 표현 하려는 사람을 순진하거나 어리석거나 사악한 선동가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들은 인생의 성공이나 실패의 책임 이 그 자신의 어깨 위에 고스란히 짊어지는 시대의 희생양이 아닐까. 슬프게도, 가난해지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고통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피해자를 윤리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주변을 보건대 차라리 피해자였던 사람은 자신의 굴욕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타인을 짓밟거나 우월감을 느끼려고 하거나 무관심하기가 자연스럽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가격표와 가치를 혼동하는 세상, 이미 서로의 독특함을 빼앗기고 타인을 존중하는 것을 잊어버린 세상은 나를 책으로 밀어냈다. 삶의 목적은 냉정한 사람들의 냉정한 게임 속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라며, 매물들의 집합으로 자신을 생각하는 보따리장수들의 공동체로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간과했던 것을 책은 가르쳐 주었다. 인간적인 삶, 그리고 이에 부응해 사는 삶이 가치가 있으며 자신을 온전히 걸어볼 만하다는 것을 말이다. 이에 관하여 적당한 표현을 찾는 도중 움베르토 에코의 문장이 생각나 옮겨본다.

 

  “우리를 정의하고 형성하는 것은 타인의 표정이다. 우리가 먹지 않거나 자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타인의 표정과 반응 없이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할 수 없다. ... 우리를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처럼 대하는 공동체에서 살아가면서 생긴 결과란 미치거나 죽는 것이다.”

 

  인간적인 삶이란 자신이 아닌 것을 통해 자신이 사는 것에 관한 것일 것이다. 즉 서로를 내어줌으로써 구성되고 확장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일 것이다. 너와 나가 다르다는 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하나뿐인 이 세계를 더 즐겁고 풍요로운 곳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을 아는 삶일 것이다. 그러나 책을 통해 발견한 세상의 의미와 가치는 내가 노들장애인야학이라는 곳을 무에서 솟아오르듯 만난 뒤 소급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처음 노들야학에 왔을 때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상근 활동을 시작한지 4개월이 되었는데 지금도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곳의 사람들로부터 감동적일만큼 귀한 배움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도, 누구든지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말하게 하고 경청하는 태도를 배웠다. 이곳의 사람들은 듣는 입을 가졌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이라는 장애인 운동의 슬로건처럼 노들야학의 사람들이 누구도 자격이 없다거나 적당하지 않다며 쉽게 귀를 닫거나 거부하지 않는 모습은 노들야학을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나 또한 동참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준다.

 

430, 이 글을 쓰는 오늘 일어났던 일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오늘 국회도서관에서 정부 관료, 교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이 참석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20주년 기념 기초생활보장제도 발전방안 심포지엄이 열렸다. 최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약속한 뒤 관료들의 견해를 알 수 있는 자리였는데, 심포지엄이 끝나고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형숙 소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이 자리가 기초생활보장제도 발전을 논하는 자리인지 제도 개편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막자고 논하는 자린지 모르겠습니다. 부정수급과 제도 개선은 별도로 논의되어야 합니다. 기초생활보 장제도의 목적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간다움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여기 참여하신 분들 중에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이용해보신 분이 있으 십니까? 예산을 핑계로 부정수급을 이야기하며 복지확대를 막지 마십시오. 최소한 OECD 평균예산 확보하고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하고 기초법 개정해야 합니다.”

 

  자기주장을 하고 자신이 선택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힘은 더 넓은 범위의 경제적 지원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한갓 몽상에 그칠 것이다. 따라서 의심하고 수치심을 안겨서 배제하고 분열시키는 제도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포함하고 연대하는 제도를 위해 우리가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가난한 우리들이 손을 잡고 투쟁해야 한다. 노들에서 나는 내가 시도되지 않는 것을 시도하기를, 위험을 무릅쓰고 저항의 책임을 떠안기를, 타인의 행복을 책임지기를, 즉 인간다움에 복무하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564 2019년 여름 119호 - 최루액과 보이스피싱 / 서기현 최루액과 보이스피싱   서기현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7년 동안 집안에서 거지꼴로 살다 IMF때 반강제 자립(자립생활 아님 ㅋ).  IT업계의 비장애인들 틈바구니... file
563 2019년 여름 119호 - 끝이 보이지 않는 차별의 수풀더미라도 포기하지 않고 누군가 먼저 헤쳐나간다면 얼마 있어 많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통하여 길이 생깁니다. / 이승헌 끝이 보이지 않는 차별의 수풀더미라도 포기하지 않고 누군가 먼저 헤쳐나간다면 얼마 있어 많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통하여 길이 생깁니다. 이승헌 장애인차별금...
562 2019년 여름 119호 -[ 욱하는 女자 ] 아직도 갈 길이 먼 장애인이동권 / 박세영 [ 욱하는 女자 ] 아직도 갈 길이 먼 장애인이동권   박세영 센터판 활동가 세O. 센터판에서 가끔(?) 욱하면서... 맘 내키는대로(?) 활동하고 다니는 나름 정신없...
561 2019년 여름 119호 - 장애인 활동보조 권리 찾기를 위한 점수와의 전쟁 / 조민제 장애인 활동보조 권리 찾기를 위한 점수와의 전쟁   조민제 스물 셋에 장애인지역공동체에서 활동을 시작한 후 서른여섯인 지금까지 장판(장애인운동판)에서 현존... file
560 2019년 여름 119호 - [장판 핫이슈] 달마는 동쪽으로, 전장연은 세종시로~~ / 수리야 [ 장판 핫이슈 ] 달마는 동쪽으로, 전장연은 세종시로~~   수리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차별에 침묵하는 자들의 카르텔을 깨고 싶어 쉼없이 꽹과리를 ... file
559 2019년 여름 119호 - 영화 <Still Life>(스틸라이프) 그리고 BeMinor(비마이너) / 장선정 영화 &lt;Still Life&gt;(스틸라이프) 그리고 BeMinor(비마이너)   장선정 사회적기업 노란들판         1.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무연고사에 대해 생각하고 ... file
558 2019년 여름 119호 - 황유미님 12주기를 함께하러 가는 길 / 한명희 황유미님 12주기를 함께하러 가는 길   한명희 노들야학 명희입니다.   삼성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1023일 농성장을 마쳤던 작년 여름과 그 농성장들을 밤을 기... file
557 2019년 여름 119호 - [형님 한 말씀] 이종각 이사장님께 드립니다 / 김명학         이종각 이사장님께 드립니다.  김명학 ; 노들야학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종각 이사장님 그동안 안녕하세요.   만물이 약동하는 봄입니다. 요즘... file
556 2019년 여름 119호 - 호식형과 함께 했던 노들야학 / 이진희 호식형과 함께 했던 노들야학   이진희 1998년부터 2002년 노들야학에서 활동했고,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어요.         매해 추모하는 자리를 정성... file
555 2019년 여름 119호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걸고 듣기를 포기하지 않기 / 김수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걸고 듣기를 포기하지 않기 자립 욕구 공유회 참관 후기   김수연 노들야학 신임교사 교육 중     지난 3월 6일(수)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
554 2019년 여름 119호 -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작지만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 이종운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작지만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이종운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개인 대의원.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코딩 덕후이며 지금은 통신회사에...
553 2019년 여름 119호 - 한글 대학 배우 공부 열심히 / 박성숙  한글 대학 배우 공부 열심히   박성숙 노들야학 학생입니다.   경동초등학교 6학년 때 수술을 받았어요. 의사 선생님께 고맙습니다. 성수 여중등학교에 다녔습니... file
» 2019년 여름 119호 - 타인의 노들야학 / 정종헌     타인의 노들야학 정종헌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연대하고 투쟁하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내게 조금이라도 사회적인 의식의 씨앗이 있 다면 그것은 어린 시절... file
551 2019년 여름 119호 - [노들아 안녕] 다시 시작하는 일 / 김은순   다시 시작하는 일   김은순 나는 8개월만에 엄마 뱃속에서 나와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 장애가 있어 밑에 남동생과 함께 초등학교를 다녔고, 중고... file
550 2019년 여름 119호 - [교단일기] 권익옹호반 소개합니다 / 김필순 [ 교단일기 ] 권익옹호반 소개합니다     김필순 투쟁을 권익옹호활동이라 부르는 활동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권익옹호반이라.. 노들야학에 투쟁반은 있... file
549 2019년 여름 119호 - 新서유기_노틀담복지관을 찾아서 / 정민구 新서유기 노틀담복지관을 찾아서   정민구 낮수업교사 밍구   ‘킁킁킁’ 어디서 뭐 타는 냄새 안나요?   이 냄새는 낮수업 교사 애간장 타는 냄새다. 발달장애인과... file
548 2019년 여름 119호 - 잃어버린 기억과 남은 기억 / 김진수 잃어버린 기억과 남은 기억 인강원 방문기   김진수 자기 소개는 후원주점 홍보로 대신합니다. 후원주점 담당을 하게 됐습니다. 6월 15일 노들야학 무상급식 기금... file
547 2019년 여름 119호 -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1] 활동지원의 가치는 이용자의 인권과 함께 성장하는 것 / 연용분 나 는 활 동 지 원 사 입 니 다 1     활동지원의 가치는 이용자의 인권과 함께 성장하는 것       연용분     시간이 흐르면서 제 딸이 대학생이 되고 마음의 여... file
546 2019년 여름 119호 -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2] 마음을 터놓고 소통을 먼저 해야 합니다 / 김태열 나 는 활 동 지 원 사 입 니 다 2    마음을 터놓고 소통을 먼저 해야 합니다     김태열       안녕하세요. 저는 2013년 7월부터 현재까지 활동지원사 일을 하고... file
545 2019년 여름 119호 - 아침 쓰레기를 줍다! / 배승천 아침 쓰레기를 줍다! 복지 일자리 인터뷰 겸 소개 글 배승천 노들야학에서 복지일자리와 인권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영화반과 기초사회반도요.     노들야학... fil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 56 Next
/ 56
© k2s0o1d5e0s8i1g5n. ALL RIGHTS RESERVED.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