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119호 - 잃어버린 기억과 남은 기억 / 김진수
잃어버린 기억과 남은 기억
인강원 방문기
김진수
자기 소개는 후원주점 홍보로 대신합니다. 후원주점 담당을 하게 됐습니다. 6월 15일 노들야학 무상급식 기금 마련 후원주점에 많이 많이 와주세요!!
노들야학에서는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주간반 수업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 수업을 이른바 낮수업이라고 부른다. 낮수업에는 15명의 교사가 있다. 수업을 하면서, 교사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어려움 중에 하나가, 학생들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학생들에 대해 더 잘 알고자 낮수업 교사들은 인강원에 방문 했다. 장판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시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보게 된다. 시설에서 벌어지는 너무나 많은 인권 유린에 대한 이야기와 그러한 시설을 벗어난 탈시설에 대한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내겐 잃어버린 기억과 남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정확히는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와 만들어내지 못한 이야기일 텐데, 남은 기억이 드러날 때는 이런 순간이다. 그러니까 누군가 내게 노들이 좋은 이유나, 노들에서 활동하는 이유에 대해 물어봤을 때, 난 그에 대한 답변으로 10년 전 노들에서 겪었던 일들 중 내게 남은 이야기를 한다.
10년 전 노들에는 석암시설에서 이제 막 탈시설을 한 학생들이 참 많았다. 시설에 있기를 거부하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기 위해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 농성을 한 여덟 분이 그 들인데, 그 당시 그들의 삶의 변화는 참으로 눈부셨다. 나는 그 눈부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시설에서 나와 공부를 하고 야학 교사들과 술을 한 잔 기울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고 하는 그런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때의 경험은 그 당시 내가 갖고 있는 고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답을 주는 경험이었다. 삶을 살아가는데 어떤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나도 저들과 같은 선택을 하리라. 남의 말이나 시선보다는 내 의지와 자유를 믿고 따르리라.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새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노들에서 많이 이야기하는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긴밀히 결합된 경험이었다.
인강원에 가서 시설에서 사용하는 용어인 ‘거주인’들의 숙소로 이동했다. 긴 복도에 나란히 연결된 방들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복도 중간에는 옷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모로 누워 있는 분 의 모습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양 그 옆을 지나치고 있었다. 복도를 따라 이어진 창문에는 쇠창살이 그 길이에 맞춰 사람의 몸이 통과되지 못할 만큼의 넓이로 이어져 있었다.
인강원 기관 방문을 마치고 오는 길에 10년 전 내가 겪었던 노들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눈부시게 찬란한 기억, 아니 눈부신 찬란함으로만 남아있는 기억들이 갑자기 공허하게 느 껴졌다. 반쪽뿐인 답을 찾고 인생의 큰 무언가를 알았다는 듯 지껄이는 모습이 부끄러웠다. 이제 내게 그 기억은 눈부시게 빛났던 그들 의 일상에 잃어버렸던 기억인 시설에서의 삶의 모습이 덧붙여진 기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덧붙여진 기억은 빛났던 그들의 일상에 비해 여전히 길고 크고 깊다. 시설을 방문하지 않았더라면 누군가가 낮수업에 대해 묻는 질문에 예전처럼 난 여전히 아름다운 기억에 대해서만 말할지 모른다. 낮수업의 아름다움은 사실이지만 거기엔 보이지 않는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다. 낮수업의 즐거움과 아름다움과 기쁨과 함께 그들이 시설에서 그리고 시설에 오기 전에 가족들과 같이 했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억압에 대해서 폭력에 대해서 혹은 슬픔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낮수업을 통해 만들어가고 있는 이야기는 아름다운 이야기로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억압의 이야기 고통의 이야기 슬픔의 이야기와 함께 찬란하게 빛나야 한다. 잃어버린 기억은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