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겨울 113호 - 어둠모꼬지 <노들 선감도에 가다> / 이현아
어둠모꼬지 <노들 선감도에 가다>
이현아
첫 학기 수업을 가까스로 마치고 스스로 대견해하는 중. 수업을 빠진 횟수와 뒤풀이를 빠진 횟수가 동일하다(...) 노들 덕분에 안 그래도 짧은 주말이 부쩍 짧아진 느낌이다.
나의 첫 노들야학 모꼬지가 이렇게나 좋았던 것은 참으로 행운인 것 같다. ‘좋았다’ 이상으로 글로 표현할 자신이 없어서(...) 틈틈이 도촬한 사진들로 보완을 해볼 작정이다. 11월 10일 오전 10시, 집결 시간이 30분이나 남았지만, 조금은 쌀쌀한 날씨에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며 설레는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준비를 했다는 이, 7시에 집에서 출발했다는 이, 도로 공사로 두 시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는 이 등 사연이 다양했지만, 모두 이렇게 험난한 여정이 익숙한 듯 노련하게 약속 시간을 잘 지켰다.
출석 체크를 하고 짐 꾸러미들을 챙기다보니, 드디어 우리가 타고 갈 버스와 승합차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버스 여행이라니! 지금까지 캠프나 수련회 등 단체여행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내 몸과 휠체어가 분리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었고, 휠체어를 들어 별도의 공간에 싣는 것은 드는 사람이나, 그걸 보는 나나, 서로가 너무 힘들었다. 그렇기에 내가 정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동행하지 않는 한, 여행을 포기하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힘들지 않아도 되는, 휠체어 탑승 가능한 버스라니, 정말 너무나 좋았다. 휠체어들이 테트리스 조각처럼 빈칸에 쏙쏙 들어가 자리를 잡았고 나는 운 좋게 가운데 줄의 제일 앞자리를 차지했다. 전방 유리와 양 옆 유리로 사방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당이었다. 시외로 멀리 차를 타고 나가는 일이 흔하지 않은 지라 풍경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내 주위의 모든 이들이 단잠을 청하는 때에도 내내 말똥말똥했다.
넓게 펼쳐진 시커먼 갯벌이 목적지에 다 와 가고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평소 바다를 무척 좋아하는 나이지만,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때문이었는지, 그날의 바다는 슬펐다. 선감도에 위치한 경기도청소년수련원에 도착. 다시 테트리스를 분해하듯이 휠체어가 한두 대씩 리프트를 타고 길바닥으로 내려갔다. 섬 아니랄까봐 매서운 바람이 우리를 맞았다. 서울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빨강과 노랑이 선명한 단풍나무들이 즐비했다. 아, 정말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구나 생각했다. 늦은 점심으로 도시락을 폭풍 흡입하고 나서는, 흐리고 쌀쌀한 날씨에도 개, 토끼, 공작 등을 비롯한 다양한 동물들과 만나며 어여쁜 단풍을 감상하며 여유로운 산책들을 즐겼다.
팀의 노력이 단연 돋보인 운동회 시간에는 다채로운 종목들이 준비되었다. 팀 이름에도 녹아든 센스(!) - 장(애등급제)폐(지)팀, 부(양의무제)폐(지)팀, 수(용시설)폐(지)팀. ‘몸으로 말해요’에서는 팀을 가릴 것 없이 합심하여 문제를 맞히는 훈훈한 장면들이 연출되었고, ‘OX 퀴즈’에서는 모꼬지에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을 후에 페이스북 라이브 본방을 사수하며 달랬다던 박ㅇ호 교사가 무려 근무 중에 진행팀의 전화를 번개 같은 속도로 받는 바람에 1차로, 허ㅇ행 교사가 팔씨름 대회에서 아들 ㅇ이의 진심어린 응원 덕에 어쩔 수 없이 이ㅇ철 학생을 이기는 바람에 2차로 탈락자가 대거 발생했다. (후에 팔씨름 참가자 둘 다 후유증으로 고생했다는 후문이...) 이어달리기 출전 선수를 선발하는 과정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역동적인 장면들이 넘쳐났던 운동회를 마치고, 나를 포함한 신임교사 네 명은 허둥지둥 모였다. 각자 집에서 열심히(!) 노래 연습을 했지만 한 번도 함께 맞춰보지 못한 탓에 우리는 밥 먹는 것도 미루고, 리허설을 하는 것 마냥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드는 휴게 공간에서 벼락치기 연습에 돌입했다. 이상하다, 분명 혼자 연습할 때보다 음이 높은 것 같은데 똑같단다. 전주와 간주가 끝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타이밍에 들어가기 위해서, 맹연습은 저녁 식사 후에 식당에서 쫓겨나 복도에서도 계속되었다.
세 곡씩이나 준비하고 화려하게 ‘노들가왕’의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땡 땡 땡. 그 흔한 “한 번 더”도 한 번 나오지 않았고 앵콜송은 마음속에 간직하기로. 조금 섭섭한 마음을 안고, 학생들의 무대를 감상했다. 끼가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수업시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feel 충만한 학생들의 모습에 놀라기도 하면서, 몸을 들썩이며 즐겼다. (흥에 심취하느라 사진 찍을 겨를이 없었다며 사진이 없는 것에 대한 변명 하나.)
드디어 시작된 뒤풀이 시간. 시상식보다 뒤풀이 음식에 더 매료된 사람들은 노래도 부르면서, 못다 한 이야기도 나누면서 같은 반 학생들, 교사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함께 수업을 하고 있는 불수레반 학생들과 술을 마시거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지 않아 열심히 임했고, 그렇기에 짧았던 뒤풀이 시간이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쉬웠다. (그 아쉬움을 여자 교사방에서는 새벽 네 시까지 이야기 꽃(!)을 피우며 달랬다는 후문이.) (이야기에 심취하느라 미처 사진을 찍지 못했다며 변명 둘.)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챙겨먹은 부지런한 사람들 중의 한 명이 되는 데 실패하고(...) 아침에 힘겹게 눈을 떴다. 창문 밖으로는 어제와는 달리 너무나 파랗고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 이렇게 맑은 날에, 우리는 ‘선감학원’의 역사를 들으러 떠났다. 차로 오 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를 가느라 버스를 타고 내리는 시간이 더 길었을지라도, 이 버스가 아니었다면, 함께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곳에 올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20년 이상을 선감학원의 사건을 알리는 데 헌신해오고 계신 정진각 선생님의 진정성 있고 울림 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무 이유 없이 존재만으로 학대받고 차별받는 우리의 삶과 그 곳의 역사가 너무나 닮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곳에서 희생당한 원혼들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들이 참으로 아름다웠지만, 마냥 즐거울 수가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걷고 걸어 묘지에 도착해, 모꼬지의 들뜸과는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는 침묵과 경건함 속에서, 우리는 선감학원과 만나야 했고, 만날 수 있었다.
끔찍하고 잔혹한 폭력의 이야기를 한참이나 듣고 난 후에도, 가을 하늘은 여전히 높고 파랬다. 그 하늘 아래에서 우리는 함께 단체 사진을 찍고, 햄버거를 먹고, 선감도와 작별 인사를 했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지만, 선감도에서의 모꼬지 추억, 그 곳의 아픈 역사는 모두의 가슴에 길게, 길게 남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