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자료실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조선동님을 만나다 탈시설 지원 후기

 

 

 

박준호

노들야학 교사. 야학 수업 잘하고 싶어요.

새해부터 놀고 있습니다. 집이 너무 추워요.

 

 

20171128_124259.jpg

 

201610월 가평 꽃동네에서 선동이형을 처음 만났다. 꽃동네에서 의 만남 이전에 나는 사진으로만 그를 몇 번 보았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선동이형은 휠체어를 타지 않고 서 계셨고 웃는 얼굴이 참 예뻐 보이는 사람이었다. 꽃동네에서 선동이형을 실제로 처음 보았을 때 형은 생기 없는 표정에, 깡마르고, 머리를 삭발하고서는 긴 휠체어에 거의 누워서 나오셨는데 이 사람이 내가 봤던 사람이 맞나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형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언어 장애가 심한 사람이었다. 선동이형 이 함께 꽃동네를 방문한 노들 교사들에게 뭔가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나 는 선동이형이 오래 알고 지낸 홍 은전 교사와 선동이형의 탈 시설을 열심히 지원하고 있는 김 필순 교사와 이야기를 많이 하시라고 대화에서 발을 빼 고 있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한명이라도 더 붙어서 선동이형의 말 을 알아듣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동이형의 짧은 말과 표정 과 왼손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말을 듣고 맞추는 것은 마치 스무고개를 하 는 것 같았다. 언어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오고가는 한 두 번의 대화로 끝날 말인데 선동이형과의 대화에는 몇 십 번의 확인과 응답이 필요했다.

 

 

선동이형은 무엇인가 그 시간에 해야 하는 것은 꼭 해야 하는 사람인, 뭔가 집요한 성격이 있는 사람 같았다. 처음 만나 밥을 먹으며 한 이야기 는 거의 핸드폰, 핸드폰의 주소록과 사진, 가방, 현금의 보관방법 등 이었. 핸드폰에 있는 보관된 문자메시지를 지워 달라는 요청, 가지고 싶은 이어폰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 가지고 있는 현금을 지갑의 몇 번째 칸으로 넣어달 라는 요청 등등. 밥을 먹으며 한 이야기도, 차에서 뭔가 하는 이야기도, 대체로 저러한 것들이었다. 선동이 형은 자기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챙기고 안부를 묻거나 빈말이라도 탈시설 하고 싶어라는 말 같은 것은 하 지 않는다. 그래도 선동이형이 잘 되지 않는 말로 끊임없이 사람들과 대화하고 요청하고 자기 물건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있으니 어쩌면 이런 점은 시설을 나와 자립생활하면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 이 들었다.

 

KakaoTalk_20171128_195034051.jpg

 

 

지난달에도 선동이형을 보러 갔다. 올해 3, 6월 에 이어 올해 세 번째 방문이었다. 어쩐지 선동이형은 갈수록 건강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다행이다. 형은 12 월에 12일 자립생활 체험을 하고 내년에는 시설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선동이형은 이런 사실과 무관하게 즐거운 일이 있어 처음으로 즐겁게, 낄낄 웃으며 식사를 같이 하였다. 식사를 하고 들어가는 길에 선동이 형은 과자를 3만원치나 사서 내 평생 이렇게 과자를 많이 사본 건 처음이야라며 돌아가는 길에 우리를 즐겁게 해주셨다.

 

 

나는 선동이형을 잘 모른다. 형을 본 건 기껏 이번이 네 번째이고 아마 선동이형도 나의 이름을 모를 것이다. 나는 가끔 선동이형 한명의 자립생활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비용이 사용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나도 누군가를 비용과 생산성으로만 바라보는 것인가 고개를 휘 휘 저으며 부끄럽게 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선동이형을 매번 보러가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 되지 않고자 하는 나름의 노력이다. 나도, 선동이형도 세상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살아가 는 저기 밑바닥 어디쯤 있는 존재일 것이다. 형은 나에게 비용이 될 수 없고 나는 형에게 어떤 사람일지 모르겠지만 이 무지막지한 세상에서 함께 잘 살아보았으면 한다.

 

20171128_155019.jpg

 

 

언어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오고가는

한 두 번의 대화로 끝날 말인데 선동이형과의 대화에는 몇 십번의 확인과 응답이 필요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 2017년 겨울 113호 - 조선동님을 만나다 탈시설 지원 후기 / 박준호   조선동님을 만나다 탈시설 지원 후기       박준호 노들야학 교사. 야학 수업 잘하고 싶어요. 새해부터 놀고 있습니다. 집이 너무 추워요.       2016년 10월 ... file
359 2017년 겨울 113호 - [노들 책꽂이] 이 죽음들에대한 과학적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 죽음들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가 필요하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 승 섭 지음, 동아시아, 2017)     강 혜 민 노들야학 신입 교사. 호호. 맛있는 ... file
358 2017년 겨울 113호 - 최후변론   최후변론 2018년 1월 8일 오후 5시 서 울 중 앙 지방법원 418호에서     존경하는 재판관님, 제가 이곳 법정에서 유무죄를 판결받기 전에 재판관님께 꼭 드리고...
357 2017년 겨울 113호 - 고마운 후원인들   2017년 12월 노들과  함께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CMS후원인   (주)머스트자산운용, 강남훈, 강문형, 강병완, 강복현, 강선아, 강성윤, 강수...
356 2017년 가을 112호 - 노들바람을 여는 창 노들바람을 여는 창     2012년 8월 21일 이번 농성은 얼마나 길게 할까? 나쁜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무기한 농성을 하자는데, 폐지될 때까지 뭐든 해야겠지만, ... file
355 2017년 가을 112호 - 광화문 지하역사 농성 1842일의 기억     2012년 8월 21일 ~ 2017년 9월 5일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 폐지를 위한 광화문 지하역사 농성 1842일의 기억       file
354 2017년 가을 112호 - 광화문 지하역사 농성 1842일의 기억. 남겨진 1842일간의 거리에서의 이야기 광화문 지하역사 농성 1842일의 기억 남겨진 1842일간의 거리에서의 이야기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농성은 중단되었습니다.   한명희 | 살아갈 것, 놀... file
353 2017년 가을 112호 - 광화문 지하역사 농성 1842일의 기억. 사진으로 보는 광화문농성 1842일   광화문 지하역사 농성 1842일의 기억 사진으로 보는 광화문농성 1842일      2012.08  농성 2일째. 아주 무더웠던 여름날, 은박롤과 몇 장의 선전물과 함께.   ... file
352 2017년 가을 112호 - 광화문 지하역사 농성 1842일의 기억. 1842일, 나의 광화문농성장 이야기   광화문 지하역사 농성 1842일의 기억 1842일, 나의 광화문농성장 이야기           <정소영> 5년의 농성 중 2년을 함께하였습니다. 2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 file
351 2017년 가을 112호 - 광화문 지하역사 농성 1842일의 기억. 현수막과 깃발이 되어 함께한 1842일 광화문 지하역사 농성 1842일의 기억 현수막과 깃발이 되어 함께한 1842일 이 이미지는 5년 농성 기간 동안 깃발이 되어, 현수막이 되어 함께 싸웠던 노란들판의 ... file
350 2017년 가을 112호 - 광화문 지하역사 농성 1842일의 기억. 장애인 복지의 ‘구체제’ 무너뜨릴 ‘종자돈’을 얻었다 광화문 지하역사 농성  1842일의 기억 장애인 복지의 ‘구체제’ 무너뜨릴 ‘종자돈’을 얻었다 광화문 공동집행위원장 박경석 고장님 인터뷰     하금철 | <비마이너... file
349 2017년 가을 112호 - 광화문 지하역사 농성 1842일의 기억 [형님 한 말씀] 광화문 5년... 또 다시 시작되는 투쟁 / 김명학         ( 이미지 속 글자 )     「광화문 5년... 또 다시 시작되는 투쟁」     김명학: 노들야학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2012년 8월 21일 ~ 2017년 9월 5일... file
348 2017년 가을 112호 - 궁리소 차담회, 시설 잡감 / 박정수   궁리소 차담회, 시설 잡감   박정수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노들’에 온 지 1년 반이 넘어 간다. 작년에는 『비마이너』 객원기자로 생활했고, 올해는 ... file
347 2017년 가을 112호 - [고병권의 비마이너] 국가는 장애화를 즉각 중단하라 [고병권의 비마이너] 국가는 장애화를 즉각 중단하라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해석에 반대하며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맑스, 니체, ... file
346 2017년 가을 112호 - [자립생활을 알려주마] 시설 밖에서 보낸 나의 2년 6개월 [자립생활을 알려주마] 시설 밖에서 보낸 나의 2년 6개월     김진석 | 노들야학 학생 겸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용자입니다.         장애인생활시설에서 30... file
345 2017년 가을 112호 - [나는 활동보조인입니다] 나의 잣대와 기준은 뭐였을까   [나는 활동보조인입니다] 나의 잣대와 기준은 뭐였을까 활동보조 하면서 느낀 글       이용자 김장기   활동보조인 이상석     활동보조 일을 하면서 겪었던 ... file
344 2017년 가을 112호 - 24번째 노들 생일을 축하합시다 / 김진수 24번째 노들 생일을 축하합시다 사람(8)과 사람(8)이 만나는 날      김진수 | 노들야학 상근교사 진수입니다. 저는 산책을 좋아합니다. 왜 좋아하나 가만히 생각... file
343 2017년 가을 112호 - [노들아 안녕] 트로트를 좋아하고 잘 불러요 [노들아 안녕] 트로트를 좋아하고 잘 불러요   김장기   안녕하세요. 저는 (김)장기예요. 저는 전라북도 완주에서 태어났고 완주에서 살다가 2007년부터 송전원에... file
342 2017년 가을 112호 - [노들아 안녕] 나는 임종운입니다 [노들아 안녕] 나는 임종운입니다     임종운 나는 임종운입니다. 나이는 50세입니다. 누림홈에서 나와 지금은 마장동 삼성아파트에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file
341 2017년 가을 112호 - [노들아 안녕] 자립생활을 도와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 방재환 [노들아 안녕] 자립생활을 도와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방재환   안녕하세요. 저는 방재환입니다. 12월 21일 생일이고요, 24살입니다. 열 살까지 광주에... fil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 54 Next
/ 54
© k2s0o1d5e0s8i1g5n. ALL RIGHTS RESERVED.
SCROLL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