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가을 112호 - 광화문 지하역사 농성 1842일의 기억. 남겨진 1842일간의 거리에서의 이야기
광화문 지하역사 농성 1842일의 기억
남겨진 1842일간의 거리에서의 이야기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농성은 중단되었습니다.
한명희 | 살아갈 것, 놀고먹을 것, 들을 자꾸 잃어버립니다. 노들야학에서 활동하는 그냥저냥, 명희에요.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고생한 건지 어찌 시간이 5년이나 지나간 건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5년이란 시간을 거리에서 투쟁하자고 약속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농성장의 현실은 불행히도 박근혜 정권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다행인 건 그 시간을 우리가 함께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이 광화문 지하역사 농성장의 하루의 시간들은 불행과 다행 사이를 부단히도 움직이며 지나갔습니다. 우리가 모두 고생했다고 인사했던 악수와 포옹이 스쳐지나가는 삶의 배경처럼 지나갔고, 현실은 정말 5톤 트럭 두 대를 불러 농성장을 정리했습니다. 5톤 하나면 될 줄 알았는데, 농성장을 정리하면 눈물 한 방울 날 줄 알았는데 눈만 껌뻑이며 그날도 그렇게 보냈습니다. 하필이면 정리하는 날 고장 난 광화문 지하광장 해치마당 출구 엘리베이터 출구 덕분에 그 많은 짐들을 광장 밖으로 몸에 이고 나갔습니다. 매일 광장에서, 역사에서 행사할 때마다 부딪쳤던 수위아저씨들도 만났습니다. 집회하려고 사부작거리고 있으면 괜히 어슬렁거리면서 어디에서 왔냐고 묻습니다. 그럼 손을 흔들며 “저예요”하면, “잘하고 가라”고 응답을 해주었던 광화문 역사도심관리과 아저씨의 수고했다던 인사가, 영정사진이 한 명씩 들어올 때마다 저 사람은 왜 죽었냐고, 누구냐고 물어주었던 개찰구 앞 편의점 아주머니의 잔소리 같은 인사말이 괜히 코끝이 찡했습니다. 정말, 뭔가 끝난 것 같았습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에 관한 면담을 했던 복지부와 서울시 역사도심관리과 공무원들은 바뀌었지만, 하물며 함께 싸웠던 동지들도 떠나기도 했고 돌아왔지만 변하지 않은 몇몇의 자리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광화문농성장은 그렇게 여러 번 바뀌었던 보건복지부 장관 중 2017년 현재 장관의 조문으로 사실상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국가가 건넨 사과를 믿었고 우리는 그 이후의 행동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고 지금도 가늠해 봅니다. 사실 다들 아주 찰떡같이 믿는 건 아니지만, 5년을 버틴 우리는 그들이 지키지 않은 약속을 보여준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겁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라는 마음이 있으면, 사실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그런 힘이 생기는 것만 같거든요.
장관들의 이야기를 하니,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생각납니다. 이름을 잘 기억하지 않은 저도 그가 장관이 아닌 지가 꽤 지났고 지금은 감옥에 있는 사람이지만 이름만 곱씹어 보아도 억울함이 왈칵 쏟아져 나옵니다. 열심히 했거든요, 우리 그때. 2014년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제도의 희생자였던 송국현 님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국가인권위원회 앞 분향소, 그리고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집 앞의 세 개의 공간을 매일 저녁 지켰던 그 시간들이 억울했습니다. 나의 가까운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은 어떤 실수 하나, 삐끗함으로 연신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합니다. 헌데 명백한 제도의 희생자였던 그이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 나라는, 장관은 무엇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을까요. 개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는 그것을 왜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광화문농성장이 차려지고 함께했던 18명의 영정사진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제도의 희생자 그리고 그 농성의 기간에 함께 활동했던 동지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광화문농성장의 시간은 우리가 그들을 더욱더 또렷이 기억하고 분노하여 단단히 활동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습니다. 농성장 전, 이 두 가지 제도의 희생자는 아마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더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회적 이슈로 사람들이 기억해주기 힘들고 우리가 싸울 수 있는 힘을 만들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광화문농성장의 그 시간동안 우리는 그 힘을 만들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함께 모여 여러 시간을 지켜왔지요. 5년의 광화문농성장의 시작도 끝도 그렇게 우리가 만들었고 결정했습니다. 그 5년의 공간의 부재를 그러니 너무 아파하지도 서운해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의 삶은 여러 갈래의 일상이 끊임없이 돌아가는 그 수레바퀴 속에 있는 것이고 그 중 쉬지 않고 어느 때는 삐걱거리며 돌면 바퀴 하나가 잠시 멈추었습니다. 다른 한 부분이 모나지도 빠진 것도 아니니 그래왔던 것처럼 나의 하루를 사수하면 됩니다. 늦지 말고, 빵구 내지 말고, 켜켜이 쌓여있던 그 분리수거 안 된 쓰레기들을 너무 남겨 두지는 말고 잘 정리해가면서 말입니다. 광화문농성장의 사진과 글들을 정리하면서 그 시간들을 좀 더 돌아봐야할 거 같습니다. 시간이 증명하듯 5년의 시간은 다들 얼굴이 좀 늙어버렸습니다. 빤빤했던 이마가 쭈글쭈글 해지기도 했고 여튼, 얼굴들이 변한 시간만큼의 투쟁이었다니요. 신기합니다. 그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함께했던 이 싸움의 의미들을 다시 한번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5년의 시간동안 나는 어떤 시간의 일부를 함께했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테니까요. 그 간극을 좁히고 내일 하루를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지금 필요한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우린 5년의 시간을 버티듯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버티며 살아가야하니까요. 제도의 폐지가 완전히 눈앞에 펼쳐져있는 건 아닙니다. 앞으로 갈 길이 온 길보다 조금 더 멀어 보입니다. 들판 위의 누군가에게 모를 간곡한 호소가 아니라, 나부터의 다짐이길 바래봅니다. 내일을 만날 수 있게 하는 오늘의 뜨거운 안녕 이었기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