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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얼마나 외로웠을까

홍은전 | 노들장애인야학 전 상근활동가. 사회생활 대부분의 시기를 노들야학 교사로 살아서, 노들야학을 빼면 자기소개하기가 매우 난감한 사람. 현재는 인권기록활동네트워크 ‘소리’ 멤버로, 잘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이야기 듣는 거 좋아해요. 좋은 이야기 있으면 소개시켜 줍시다.

노역살이에 들어가기 전, 이형숙 박옥순 이경호 님과 동료들

 

“그날 박진영 씨가 종이에 뭔가를 써와서는 세 부를 복사해 달라고 하더래요. 복사해주니까 그걸 하나하나 봉투에 넣더니 시청, 청와대, 경찰서에 보내 달라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칼로 자기 심장을 찔렀대요. 구급차로 이송하던 중에 돌아가셨어요.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심장을 너무 깊게 찔러서. 주민센터 담당자 말이, 두 달 동안 정말 ‘매일’ 찾아왔대요. 어릴 때 발병해서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는데 장애등급 하락됐다고 갑자기 자기를 ‘근로능력자’라고 하면, 당장 어딜 가서 돈을 버느냐고. 괴팍한 장애인이었대요. 만날 와서 따지고 화내는. 그러니 공무원들은 짜증나고 싫었겠죠. 누가 그런 사람을 좋아하겠어요.”

이것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집행위원장 이형숙의 말. 박진영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광화문 농성장에 들어온 네 번째 영정의 주인공이다. 나는 박진영을 이토록 피가 돌고 생생한 표정을 가진 존재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이형숙이 말했다. “그 사람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그녀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박진영의 유서를 핸드폰에 넣고 다녔다. “나는 비장애인이 되는 게 꿈이었어요. 장애인들은 구질구질하니까.” 그랬던 그녀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출근길 도로를 점거하고 으리으리한 국제대회장에 난입해 구호를 외치다 사지를 들려 끌려가는 ‘괴팍하고 구질구질한’ 장애인이 되었다. 며칠 후 그녀는 벌금 탄압에 항의하는 노역투쟁을 벌일 참이었다.


휠체어도 압수된 채 편의시설이라곤 없는 감방에 던져진 장애인이 그저 ‘냄새나는 존재’로 전락하는 데에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녀는 2년 전에도 노역을 살았다. ‘그 힘든 걸 왜 또 합니까?’ 내가 묻자, 그녀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럼 누가 합니까?’ 노역이 얼마나 고역인지 잘 아는 얼굴,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오래전 한 장애여성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당신은 왜 싸웁니까?’ 그녀가 대답했다. ‘싸운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뼈가 저리도록 처절하게 알지. 그래서 싸우는 사람들의 곁을 떠날 수가 없어.’


그땐 몰랐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두 문장 사이에 전혀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알기 때문에’ 떠났다. ‘안다는 것’과 ‘감당한다는 것’ 사이엔 강이 하나 있는데, 알면 알수록 감당하기 힘든 것이 그 강의 속성인지라, 그 말은 그저 그 사이 어디쯤에서 부단히 헤엄치고 있는 사람만이 겨우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신영복은 ‘아름다움’이 ‘앎’에서 나온 말이며, ‘안다’는 건 대상을 ‘껴안는’ 일이라 했다. 언제든 자기 심장을 찌르려고 칼을 쥔 사람을 껴안는 일, 그것이 진
짜 아는 것이라고.


세상엔 자신의 유서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싸움은 그들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싸움의 지속은 타인의 유서를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김소연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의 울음을 이해한 자는 그 울음에 순교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람의 구질구질함을 이해한 자는 그 구질구질함에 순교한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누리던 그마저의 권리도 내려놓고 창살 ‘있는’ 감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그들은 아름답다. 7월 17일, 이형숙·박옥순·이경호 세 사람이 국가의 벌금 탄압에 저항해 노역투쟁에 들어갔다. 농성 기간 5년 동안 그들과 그 동료들에게 지워진 벌금은 5천만원이 넘었다. 연대와 후원을 바란다.


국민은행 477402-01-195204 박경석.


*이 글은 <한겨레>에도 실렸습니다.

 

서울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벌금 탄압에 항의하는 활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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