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의 뜻과 노들의 꿈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의 터 - 노란들판
노란들판의 준말은 노들입니다. 희망의 씨뿌림이 있고, 힘겹고도 충실한 가꿈의 과정이 있으며, 그렇게 일구어 낸 결실들이 들판에 넘실대는 풍경을 뜻하는 말입니다.
들판은 누구의 것이 아니기에 누구나 씨앗을 뿌릴 수 있지만 항상 그렇듯이 어떤 이들은 지배욕과 소유욕으로 들판을 어지럽힙니다.
그리고 마치 경쟁과 도태만이 들판의 유일한 원리인 양 내세우며 사람들을 몰아갑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 속에서 더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해,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쉼없는 경주를 벌입니다.
당연히 나의 이익을 최대치로 만들기 위해 다른 이들을 고려할 여유를 갖기는 어렵습니다. 아니 오히려 다른 이들을 밟고 올라서야 더 많은 이익을 차지할 수 있기에 사람들은 이를 악물고 서로의 위에 올라서려 안간힘을 씁니다.
그런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인간이 되기보다 이익을 창출하는 도구적인 존재로 점점 격하되고, 서로의 이익관계 속에 너무도 쉽게 필요한 인간과 불필요한 인간으로 나뉘어집니다.
그래서 불필요한 인간으로 치부된 이들은 이젠 쓸모없는 인간으로 낙인이 찍히고, 결국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반면에 반대편에선 유리한 자리에 나아간 이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또는 체제를 유지한다는 명분 하에 차별을 당연시하고, 억압을 일삼게 됩니다.
슬프게도 이 안타깝고도 어이없는 상황이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오늘의 이야기이고,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의 한가운데에 바로 장애인이 있습니다.
차별과 억압의 폐해는 광범위하지만 장애인에게 있어 이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더 절박해집니다. 이는 눈에 보이는 차별 외에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차별적 구조로 인한 이차적 차별까지 가해지기 때문에, 결국 장애인은 이중적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노들은 일차적으로는 장애인이 겪고 있는 작금의 차별적인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직 많은 곳에 존재하는 차별적 구조와, 우리 주위에 팽배한 차별적 인식을 바꾸고자 노력합니다.
그래서 이 사회가 왜곡된 가치로 얼룩지지 아니하고, 인간 존엄성과 평등이 넘쳐날 수 있는 들판이 되기를 꿈꿉니다.
그리고... 그런 꿈을 지지하는 이들과 기꺼이 그런 들판을 일구고자 헌신하는 농부가 될 수 있겠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바로 '노들'입니다.
그래서 노란들판은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의 터'가 아닌,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의 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