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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 책꽂이]

누가 탈시설을 두려워하는가? 

『장애, 시설을 나서다』를 읽고

 

 

 

 황시연

노들야학 교사입니다. 『장애, 시설을 나서다』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을 담아 썼습니다

 

 

 

 

황시연1.jpg

『장애, 시설을 나서다_공존을 위한 탈시설 이야기』 _ 김남희, 김유미, 김정하, 변재원, 이주언, 조아라, 최태현, 최한별 (지은이), 유승하, 황인혜 (그림) / 진실의힘

 

 

  탈시설이라는 말이 무섭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장애인을 많이 만나보지 않아서, 낯설어서, 잘 몰라서, 막연히 무서웠다. 장애인차별에는 반대하지만, 정말 장애인이 탈시설하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을까? 중증장애인도? 어떻게 살 수 있지?

 

  그런데 노들야학에 와보니 웬걸, 이미 살고 있더라. 중증장애인이라 지역사회에서 살기 어렵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조차도 이미 시설을 박차고 나와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꾸리고 있었다. 낮이면 야학에 나와 권익옹호 활동이나 문화예술 활동을 하고, 저녁이 되면 수업을 듣고, 일과가 끝나면 들다방에서 밥을 먹고, 장콜을 타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각자 집으로 가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이 사람들 중 대다수가 수십년간 시설에 갇혀 살았다는 것을 믿기 어렵게 생생한 얼굴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버럭 화를 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잘 살 수 있는데, 왜 세상은 탈시설을 격렬하게 거부할까?

 

  『장애, 시설을 나서다』는 중증장애인의 탈시설이라는 문제를 다각도에서 살펴보며 탈시설에 대한 갖은 의심에 맞서 싸우는 귀한 책이다. 탈시설 당사자들의 목소리부터 장애인 거주시설이 어떤 공간인지, 탈시설은 무엇을 가능케 하는지 등 여러 사람들의 투쟁과 고민으로 쌓은 탈시설의 역사가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고민과 시간이 들어간 이야기를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읽을 수 있다니 이런 호사가 또 있나 싶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노들바람을 읽는 독자들이 특히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를 몇 가지 소개해보려 한다.

 

  노들야학 교사로서는 책을 통틀어 학생들의 과거와 지금 야학의 풍경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첫 번째 목소리: 조상지」와 「두 번째 목소리: 박만순」, 그리고 「세 번째 목소리: 우리 잘 살고 있어요!」가 가장 감동적이었다. 곱씹을수록 그렇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37쪽) 것이 곧 적응이었던 요양원을 벗어나 “활동지원사와 함께, 발 자판기로 한 글자, 한 글자 완성해나가며”(48쪽) 글을 써 거주시설에서의 학대를 폭로하고 중증장애인의 권리를 호소하는 상지 언니의 삶. 시설에서 49년 동안 “갇혀 있다는 감각도 없이, 그곳이 세상의 전부였기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았”(128쪽)던 만순 언니. 그래서 “자립의 ‘자’자만 나와도 그냥 바로 소리를 빽 질러버리고 가버렸”(131쪽)던 만순 언니가 자신의 유일한 세계였던 인강원 바깥에서 비빌 언덕을 찾고 지역사회에 발을 딛기까지의 여정. 그리고 들으려고 부단히 노력할 때 비로소 보이고 들리기 시작하는 이들의 저마다 다른 목소리까지. 노들바람의 독자라면 상지 언니와 만순 언니뿐만 아니라 가명으로 쓰인 이들의 탈시설 이야기에도 이름을 끼워 넣고, 문장 사이사이에 생략된 시간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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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 언니가 활동지원사인 수경 쌤과 손을 겹쳐서 남긴 싸인과, 만순 언니가 “내 책이다!”라고 팔을 걷어 붙이고 남긴 싸인

 

 

  “그래도 좋은 시설이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아직 떨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제1장 시설은 어떤 공간인가?」를 주목해 읽기를 권한다. 탈시설은 “시설이라는 공간이 인권의 관점에서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는 역사적 경험”(8쪽)에서 출발했다. 자기결정권의 부재, 대상화와 사회로부터의 분리라는 시설의 근본적 문제는 한 사람 몫의 공간이 넓어진다 해서 결코 개선될 수 없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시설은 “주체성의 상실을 목적으로 하거나, 그것을 의도하지 않더라도 주체성의 상실이라는 결과를 낳는다.”(59쪽) 시설의 작동 방식과 시설의 구조를 살피며, 시설 너머에서 함께 살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쌓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어렴풋이 찾아나갈 수 있다.

 

  탈시설의 필요성은 이미 이해했고, 좀 더 적극적으로 탈시설을 외치고픈 사람들은 「제4장 탈시설을 둘러싼 우려에 답하다」를 읽고 설득의 논거를 갖추자. 이 장을 읽고 탈시설에 대한 마지막 망설임 내지는 의구심을 떨칠 수 있었다. 당사자가 시설에서 살고 싶을 수도 있지 않느냐, 시설에서 나오면 원가족이 고스란히 돌봄을 짊어지는 게 아니냐,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느냐 등등의 질문에 대한 답이 촘촘하게 마련되어 있다. 「두 번째 목소리: 박만순」의 이야기와 함께 읽으면 더욱 좋다. 대표적으로 “‘당사자가 싫다고 하는데 억지로 내보낼 수는 없지 않냐’라는 납작한 소극적 자유주의 논리”(136쪽)로 대표되는 우려에 저자들은 “자기결정권은 시설 입소 단계에서도 보장돼야 하는 권리이지, 시설 퇴소를 막으려고 할 때만 자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198쪽)라고 반박한다.

 

  돌봄과 안전에 대한 우려 역시 제4장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고 싶다는 장애인의 외침은 자칫 나머지 가족 구성원에게 일상적 자유를 포기하라는 협박처럼 인식”(210쪽)되지만, 탈시설은 결코 원가족으로의 복귀를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로 야학에 있으면 탈시설 당사자들이 가족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 맺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활동지원사, 근로지원인, 교사들과 다른 학생들, 다른 단체의 활동가들, 동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그리고 관계망이 다양하고 넓을수록 그 사람이 특정한 누군가에게 착취당하고 있지 않은지, 위험한 상황에 있지 않은지 견제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진다. “안전은 장소의 변화가 아니라 관계의 강화를 통해 확보해나갈 수 있다.”(223쪽) 탈시설운동 현장은 ‘지역사회=집’이나 ‘일상=가족’ 같은 고리타분한 상상에서 벗어난 현재를 이미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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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조아라, 노들야학 학생 박만순, 노들야학 교사 김유미 등이 참여한 『장애, 시설을 나서다』 북토크의 한 순간

 

 

  이외에도 제2장, 제3장과 제5장은 국가적 차원에서 탈시설이 왜 국가적 과제인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사회복지법인과 공모하며 시설사회를 강화해 온 국가가 시설수용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져야만 하는 이유, 탈시설을 위해 국가가 실현해야 하는 과제 등이 있다. 노들바람의 독자들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되 일률적으로 조기에 강제하는 것은 섣부르다.”1)라며 탈시설운동을 왜곡하는 정치인들이나 행정가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야학에서 탈시설 당사자들의 말과 글, 움직임을 보고 들으며 “그동안 ‘못 하고, 안 되며, 그래서 실패한 존재’로 취급받아온 사람들에게 없던 것은 능력이 아니라 자리”(293쪽)라는 것을 몇 번이고 느꼈다. 이들과의 만남이 처음부터 쉽지만은 않았다. 야학에 2년 넘게 드나든 지금도 언어장애가 있는 학생과의 대화에 쩔쩔매곤 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길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사람을 마주치면 낯설기보다 반가운 마음이 들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반복해 소리를 내는 사람을 봐도 그냥, 그렇구나 싶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지 않거나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그 사람을 시설에 가두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292쪽) 나의 존엄만큼, 타인의 존엄 역시 중요하기 때문에. 탈시설운동은 지역사회 내부에 이들이 가져 마땅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움직임이며,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노숙인, 아동 등 시설적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든 시민의 권리를 고양할 민주적 에너지의 원천”(307쪽)이다. 이 파도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1) 오마이뉴스, “이재명, 탈시설 방향 제시 환영하지만...” 장애인 단체 유감 표시한 이유, 2025.05.26.,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3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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