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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같이 공부하고, 같이 일하고, 같이 놀았던 지민을 보내며

추모의 말 2 

 

 

 

 천성호

노들야학에서 이어달리기 중에 국어교사

 

 

 

 

  (먼저, 저의 개인적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 드립니다.) 

 

  정지민 님을 처음 본 것은 2018년쯤으로 기억합니다. 처음 만나고 인사를 하면서 말수는 적지만 다정하게 사람들을 챙기는 모습으로 기억합니다. 다른 학생들을 많이 챙겼습니다. 특히, 소민에게 먹을 것을 사주기도 했지요. 소민이가 학교 밖으로 나가면 급하게 사무실로 와서 “소민이 나갔어”라고 말하곤 했지요. 외부 행사나 집회에 가서 제가 가방을 두고 나오면 가방을 챙겨 오면서 “선생님, 가방”이라고 하면서 전해주기도 했어요.

 

  제가 사는 곳이 지민이 형이 사는 영등포 쪽방촌과 가까워 가끔 광야교회에 가서 목사님도 만나고, 집에도 들르고 커피믹스도 한 잔 얻어먹기도 했지요. 

 

  2020년에는 쪽방촌에서 나오기로 하고 이사하기로 했어요. 더운 여름 이사하는 날 수연 아버님, 승천, 진수 샘, 홍철까지 이삿짐을 날랐습니다. 지민이 형이 사는 그 작은 쪽방은 막걸리병과 소주병으로 가득차 있었고, 스스로 제 한 몸을 누이기 위한 틈도 없어 보였지요. 야학 근처로 이사를 한 후에는 더 밝은 모습으로 야학에 나왔지요. 종종 자전거를 타고 영등포에 가서 커피도 먹고, 이발도 하고, 동대문에 가서 신발을 사고요.

 

  한국피플퍼스트 활동을 하게 되면서 광주와 부산에 가서 회의도 참석했습니다. 특히, 회의를 마치고 해운대 모래밭에서 열심히 달리던 모습도 기억납니다. 형은 야외활동을 좋아했는데, 낮수업 체육수업을 하면서 축구도 하고, 배드민턴도 같이 하면서 잘 지냈습니다. 공공일자리에 참여하면서 야외에서 하는 집회나 기자회견도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자신의 권리를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지민이 형은 사람이 함께한다는 것을 배우면서 조금씩,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2020년에 들어 코로나가 시작되며 야학은 휴교와 개학을 반복하면서 학교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지민 형은 무료한 시간에 드시는 술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함께 차근차근한 말투도, 웃음도 점점 사라지고 있었지요. 원체 식사량이 적었지만, 그마저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어요. 

 

  2022년에 들어 지나면서 코로나가 덜 심각해지며 지민 형이 다시 야학을 나오고, 공공일자리도 참여하였지만, 형의 일상은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어요. 말수도 웃음도 이전만큼 되찾지 못했지요. 몸은 점점 말라가는 것 같았어요. 

 

  작년부터는 점점 야위어가는 몸이 걱정되어 한 달에 한 번 저와 삼겹살을 먹자고 약속했어요. 동네에서 삼겹살을 같이 먹으면서 “맛있어”라고 물어보면, “맛있어”하고는 “허허”하고 크게 웃었습니다.

 

  그간 잊었던 형의 너털웃음을 다시 만날 수 있었지요. 

 

  올해를 지나면서 형의 몸은 점점 나빠졌던 것 같아요. 지난달 병문안을 가고, ‘나아지겠지’라는 희망도 있었지만, 중환자실에 너무 오래 있어 걱정도 되었습니다. 어제 지민형 병문안을 가기로 했는데, 부고 소식을 받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저는 노들야학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형의 인생에 있어 가장 따뜻한 봄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노들야학에는 지민형 사랑하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장애인이라는 편견과 차별이 아닌, 한 명의 온전한 사람으로 그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안함도 남습니다. 형을 놓아주지 못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야학이 밖으로도 강해야 하지만, 안에서도 강해야 하는 것, 그것이 지민형을 기억하는 것이고, 함께 하는 길이라고 봅니다. 

 

  지민형, 

  하늘에서도 편히 쉬기를 바랍니다. 

 

추모_정지민(천성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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