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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 책꽂이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

 폭발하고 엉키고 맞물리는 노들의 시간

 

 

 린

책모임을 좋아합니다. 같이 읽으면 더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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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퀴어, 불구』(앨리슨 케이퍼, 오월의봄)

 

 

  다들 사두기만 하고 책장에 묵혀두고 있는 책이 있으시죠? 저는 그런 책이 100만 권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여름방학 교사세미나 기획으로 같이 그런 책 중 한 권을 읽게 되었습니다. 앨리슨 케이퍼의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는 2013년에 처음 쓰였고, 한국어로는 2023년에 번역되었습니다. 7월 동안 매주 월요일 오전에 모여서 책을 읽다보니 방학이 없어졌네요. 두꺼운 책이 매주 줄어드는 걸 보면서 신기했던 한 달이었습니다. 쉬운 부분도 있고, 어려운 부분도 있었던 568쪽짜리 책을 전부 혹은 부분적으로 읽은 우리에게 박수!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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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구의 시간(crip time)은 단순히 연장되는 시간이 아니라, 폭발해버리는 유연한 시간이다. 불구의 시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시간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고,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재상상하거나,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에 대한 기대가 어떻게 아주 특정한 마음과 몸에 기반하는지 인식할 필요가 있다.” - 85쪽

 

  페이지를 넘기기 어려웠던 시간성에 대한 내용으로 책은 시작합니다. 장애는 시간경험을 유연하고 비선형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 주장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하면서도 각기 다른 경험들을 모이게 했습니다. 이동에 걸리는 시간, 일상 활동에 필요한 시간, 통증과 피로로 인한 늘어짐, 불규칙한 증상으로 인한 시간계획의 어려움, ‘정상적’ 속도에 대한 사회적 기대, 다양한 시간인식. 불구의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선형적 가정에도 도전합니다. 

 

  진단과 치료의 시간, 재활에서의 ‘진전’,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기대, 미래에 대한 가정에서 지워지는 장애. 단순한 대화를 하면서도 시공간을 넘나드는 화법을 가진 사람도 있고요. 장애인 콜택시 때문에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가는 사람들. 저번 시간에 배운 걸 여쭈면 끔뻑이는 표정들. 가만히 있거나 조금도 가만히 있지 않는 모습도, 사무실에 걸려있는 고장 난 시계도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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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퍼는 셰익스피어의 탈구된 시간(time out of joint)이라는 표현을 인용해 시간의 비장애신체성을 이야기합니다. 찾아보니 ‘탈구된 시간’은 햄릿이 유령이 된 아버지를 통해 삼촌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으며 복수를 다짐하는 대사에 등장합니다. 세상의 질서가 어긋나있고 모든 것이 비정상적인 상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신체성을 활용한 은유를 장애학적 관점에서 비춰볼 수 있다는 것 흥미롭지 않나요. 
 

  이러한 영역 간의 얽힘은 현실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분류하기보다, 가려진 것을 들추고 복잡한 것을 끌어오는 케이퍼의 태도와도 연결됩니다. 차이를 매끄럽게 지워내기보다 복잡한 걸 복잡하게 바라보는 일. 고민하고 시도하면서 정적을 깨뜨리는 일. 

 

  하나의 책에 대한 다양한 감상에 서로가 개입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하반기 교사세미나에 대한 기대와 함께 페퀴불을 인용하면서 마칩니다. 2학기 세미나에서 또 만날 수 있길!

 

“푸아르의 말처럼 나 역시 이렇게 믿는다. '모순과 불일치는 조정되거나 통합되는 대신 긴장 속에서 함께 유지되어야 한다. 모순과 불일치는 지적인 몰입이 흔들리는 신호라기보다 어느 한 쪽에 서는 것이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징후다.'” -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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