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가을 139호 - [오 그대는 아름다운 후원인] 비건 빵으로 매달 만나는, 책빵자크르_하라경 님 인터뷰 / 영희
오 그대는 아름다운 후원인
비건 빵으로 매달 만나는, 책빵자크
하라경 님 인터뷰
인터뷰 영희, 유미
정리 영희
노들야학에는 1~2달에 한 번씩 하얀 스티로폼 택배가 온다. 택배 상자를 열면, 노들야학의 급식 반찬이 들어 있다. 바로 ‘빵’이다. 어떤 날은 생강청과 식혜, 어떤 날은 바질페스토가 함께 들어 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하얀상자가 오면 주변으로 몰려들어 “자크르에서 왔나보다”, “ 빵이에요? 내일 급식에 나오겠네” 등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이번 <노들바람>에는 반년이 넘게 빵을 받아 먹기만 해도, 책방에 한 번을 찾아 가지 않아도, 노들야학에 꾸준히 선물을 보내주는 ‘책빵 자크르’의 이야기를 영희, 유미가 담았다.
Q1.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울산에서 ‘책빵자크르’라는 동네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하라경입니다. 2018년 2월까지 고등학교 교사로 23년 근무하다가 명퇴를 했어요. 그리고 그냥 3년을 놀았어요. 백세시대에 계속 놀 수 없으니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라는 고민에 가장 먼저 생각난 게 책방이었어요. 그렇지만 일을 하나 접고 무언가 새로 연다는 것, 더구나 상업 공간을 연다는 것의 제일 고민지점은 손익분기점이었어요. 그러던 중 한겨레 신문에서 <사회학자가 부모를 ‘기억’하는 방법…‘니은’서점>이란 기사를 읽었어요. 부모님 상 이후, 조의금으로 서점을 열었다는 노명우 교수의 이야기인데, 책방의 목표는 ‘지속가능한 적자’라며 매월 100만원을 넣으면 책방을 운영할 수 있겠다는 계산을 했다더군요. 저는 고정 수입이 없으니 지속가능한 적자는 어렵고 ‘지속가능한 제로’를 목표로 책방을 시작했어요. 제가 원래 비건이기도 하고, 우연히 부산에서 비건 빵 만드는 것을 배웠어요. 빵을 배울 때만 해도 판매를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팔고 있네요.
Q2. 23년 근무하다가 명퇴를 하셨다고 하셨는데, 좀 이른 명퇴 같은데요?
당시 울산에서는 제가 최연소 명퇴자라더군요. 주위 사람들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였는데, ‘어디 아프냐’와 ‘돈이 많은가’보다 였어요.
그때 제 나이가 48세였는데, ‘충분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날, 한겨레신문에서 시집 소개 글을 보았는데,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집인데 제목이 ‘충분하다’였어요. 제목을 보는 순간 제게 건네는 말같이 여겨져 울컥하더라구요. 마지막 학교는 동료, 학생들과 관계도 좋았거든요. 그래서 그동안 교직생활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 그만 두었어요.
Q3. ‘책빵 자크르’의 뜻은 무엇일까요?
우선 책과 빵이 모두 있어 ‘책빵’이고요, ‘자크르’는 ‘딱 알맞게 좋다’는 뜻의 순우리말인데요. 저희 책방은 동네 사람보다 관광객이 더 많은 여행지의 책방이 아니라 손님의 대부분이 동네 주민으로 이루어진 정말 동네 책방이거든요. 지금까지는 자크르라는 이름처럼 동네 사람들이 알맞게 공간을 채워주고, 여러 작당을 함께 하며 굴러가고 있는 것 같아요.
Q4. 책빵 자크르에서는 책과 빵. 2가지만 판매하고 계신가요?
책과 빵 뿐만 아니라, 약간의 음료도 판매하고 있어요.
Q5. 택배로 보내주신 바질페스토도 직접 만드셨어요?
빵에 들어가는 모든 부재료(팥조림, 바질페스토, 감자샐러드, 망고잼, 블루베리잼, 버섯조림, 병아리콩 조림 등)은 모두 직접 만들어 사용합니다. 바질이나 루꼴라는 가격의 변동이 심한데, 아마도 날씨에 따라 생산량에 차이가 큰 가 봐요. 책방을 하면서 가장 안 좋았던 일은 최근 루꼴라를 생산하는 청년 농부가 땅을 재임대하지 못해 유기단계까지 일군 땅에서 쫓겨난 일이에요. 저희야 생산지를 바꾸면 그만이지만 그분은 일터를 잃은 것이니 참 속상하더군요.
Q6. 책과 빵 중에 어떤 것이 더 많이 팔리나요?
매출은 반반이거나 책이 더 많거나 해요. 순수익 말고 매출만 보았을 때, 책은 단가가 크니 좀 더 많아요.
Q7. 책빵 주변에도 빵을 나눌 곳들이 많이 있으셨을 텐데, 노들장애인야학과는 어떤 인연이 있으신가요?
노들을 알게 된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어요. 1990년 말에서 2000년 초에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대해 기사를 보고 알게 되었어요. 그 후, 고병권 선생님이 울산에 자주 오셨어요. 그때가 노들과 교도소에서 수업을 하실 때인데, 노들의 활동을 상세히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언론에서 접한 것보다 노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어요. 장애인부모단체에서 주관한 박경석 선생님의 강연도 들었고요. 그러다 홍은전 작가님이 노들야학 20주년에 쓴 책(노란들판의 꿈)을 읽으면서 ‘노들은 계속 유지되어야 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8. 매달 노들야학으로 빵을 보내주시고, 기금행사로 얻은 후원금도 야학으로 보내주셨는데요. 어떤 마음으로 이러한 결심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결심은 없었어요. 저희가 빵은 매일 매일 판매량을 맞출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많이 남을 때는 푸드뱅크에 보내고 있어요. 그런데 양이 적으면 푸드뱅크에서 가져가질 않아, 주변인들에게 나눠 주고 있어요. 그러다가 고병권 선생님께 “노들에 빵을 보내면 어떨까요?” 여쭤보니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빵을 보내게 되었어요.
저희가 무언가 기획해서 하기 보다는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많아요. 장터를 매년 하고 있는데, 손님들 반응이 좋아서 책방에 매일 장터 “곁” 이라는 상설 코너를 아예 만들었어요.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기부받아 운영하는데, 필요한 사람은 좋은 물건을 적은 돈으로 가져 갈 수 있다보니, 사람들이 좋아하고 활성화가 많이 되었어요. 애초에 제 것이 아닌 돈이고, ‘잘 쓰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여기저기 찾아보았어요. 그때 노들야학이 공부도 하지만 투쟁도 많이 나가고,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다 후원하게 되었어요.
Q9. 책빵 운영을 혼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분들이 여럿 있으신가요?
맞아요. 한살림 활동을 같이 하던 친구랑 둘이서 동업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빵 배우러 왔던 분, 뭐 할 일 없냐며 들렀던 분들이 붙잡혀 지금은 4명이 함께 일하고 있어요. 그래서 2명씩 나름 로테이션으로 운영하는지라 주3일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Q10. 책빵 안에서 여러 활동들이 있더라구요. 독서모임, 비닐/플라스틱 포장X 등. 운영 철학이나 원칙이 있으신가요?
철학이라 말하기엔 넘 거창하고, 저희의 활동이 최대한 흔적을 남기지 않길 바라며 비닐과 플라스틱 포장, 일회용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처음 책방을 열었을 때는 빨대도 없다, 테이크아웃도 되지 않는다고 하니 낯설어 하는 분이 있더라구요. ‘뭐 이런 곳이 다 있어’ 하는 표정을 보이는 분도 간혹 있고요. 하지만 지금은 용기를 가져오는 분도 많고, 기증받아 사용하는 공유 텀블러도 자연스럽게 이용하시고요.
지금 진행되는 책방 모임은 각각 월 2회, 월 1회로 꾸려지는 책모임이 둘 있고요. 단톡방으로 꾸려지는 필사 모임(한 권의 필사가 끝나면 오프라인에서 만납니다), 매주 진행되는 낭독모임, 인물드로잉 교실이 있어요. 손님이 꾸려서 진행하는 책모임도 있어요. 공간 이용에 대한 문의가 가끔 오는데, 딱히 저희 생각과 대치되는 것이 아니면 열어두는 편입니다. 마을의 너른 ‘평상’ 같은 공간이 되길 바라니까요. 낭독 모임, 왕초보 영어교실, 뜨개교실, 캘리그라피 교실 같은 모임이 그렇게 채워진 모임입니다.
Q11. 주민활동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가끔은 ‘여기는 어딘가’ 생각해요. 문화센터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으니까요. 어쨌든 고령화 사회가 점점 되어 가는데, 지금은 그냥 쓸 수 있는 공간이 아파트 경로당 정도더라구요. 책방을 하다보니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여기도 상업 공간이다보니 음료라도 한 잔 마셔야하는 부담이 있는데, 그런 부담없이 사람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며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Q12. 울산을 소개해 주신다면?
저는 부산에 살다가 직장따라 울산으로 오게 되었어요. 그때는 식구들도 낯설어 하고 냄새도 많이 났는데, 지금은 공해랑 냄새가 거의 없어요.
울산에서 20년 넘게 살았지만, 나고 자란 도시가 아니라 그런지 울산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별 애정도 없었어요. 그러다가 2022년 1월 부터, 울산대학교 역사 전공 선생님과 시를 쓰는 선생님이 동네 산책을 가자고 했어요. 아직 코로나가 한창인 때라 감염자의 동선이 다 까발려지는 엽기적 시기였지만, 야외 활동은 가능하다고 하니 “걸어보자” 해서 시작했어요. 그래서 일요일 아침마다 격주로 아침 9시에 모여 3~4시간 정도를 함께 걸었어요. ‘자크르산책단’이라 이름지어 책방 SNS에 공지하고 참여할 사람을 모집했어요. 그렇게 스무 명 정도가 함께 걸었습니다. 길을 걷다 그 길에 관련한 이야기를 듣고, 그 길에 어울리는 시를 낭독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일상 도시가 마치 여행을 온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때 ‘내가 이제 울산 사람이구나’를 처음 느꼈어요. 하지만 이제는 울산을 좀 소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Q13. 사람이 모이는 것을 보면 책빵이 인기가 많은 것 같아요.
매일 드나드는 사람은 10~15명 정도이고, 북토크나 행사를 하면 사람들이 많이 와요.
Q14. 오늘 인터뷰는 노들바람 가을호에 실릴 예정이에요. 노들 후원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나 책빵 홍보를 한다면?
이번에 나온 박경석 대표님 책의 표지 글귀가 가장 와닿았어요.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투쟁이다.”
지하철 방송에 ‘선량한 시민’이라는 말이 나올 때 되게 속상했는데, ‘우리 모두 선량한 시민’이라고 돌려주고 싶어요.
울산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석유화학단지도 있지만, 도심에서 30분 내외로 산, 바다, 들, 강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석유화학 단지의 야간 풍경은 사진도 기괴스럽게 잘 나오고 색다른 여행을 할 수 있어요. 원전 가까이 있는 바다 마을에는 멋진 대형 카페들도 많아요. 원전뷰가 궁금하다면 여기도 좋겠네요. 자크르에 오셔서 살짝 “노들”이라고 해주시면 열렬히 환대할게요.
라경님의 인터뷰를 통해, 동네에 대한 애정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서울에서 매일 아침, 장애인을 갈라치기하고 혐오하는 우리에게 ‘동네를 사랑하는 것’이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노들을 함께 만드는 농부들은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 그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가, 사람들이 장애인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 중심의 사회가 혐오하고 있다는 것을.
울산에 오면 재워 주겠다고, 우리가 사는 동네를 걷거나 휠체어 타고 돌아보라는 책빵 지기 라경님은 오늘도 우리의 밥상을 평등하게 만들어주는 농부 중 한 명이다. 노들야학에게 바라는 것, 기대하는 것이 없는 듯한 이야기들은 무심하거나 실망한 말들이 아닌, 우리에게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지지의 말’처럼 느껴졌다. 그러한 믿음을 지키고 싶어,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차별에 저항하는, 세상 전체에 균열을 내는 투쟁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