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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국어사전에는 없는 신기한 동사, ‘노들야학하다’



“누구도 상처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 존재에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들이댄다면, 그것은 상처를 발생시킬 일체의 가능성을 거세한 무균질의 진공 상자 같은 것이어서는 안 된다. 거기서 양육된 존재는 영혼 없는 물질덩어리일 뿐이며, 적당한 자극에 예측 가능한 크기로 반응하는 모르모트에 불과할 것이다. … 그러므로 진정한 교육은 상처를 거세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응시하고 그것과 대화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결국, 교육이란 상처와 뒤엉켜 그것과 함께 흘러가는 과정일 뿐이지 않은가."   - 이계삼,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중에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공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받아온 교육은 위와 같은 의미의 교육과는 너무나 달랐다. 누군가의 상처를 응시하고 그것과 대화하는 것은 그저 귀찮은 일이었다. 어찌 보면 학교가 감당하기 꺼리는 상처가 있는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쫓아내는 것이 이 나라 교육이 암묵적으로 공유해온 ‘규칙’이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 규칙은 상처가 드러난 이들에게 ‘학교 부적응자’, ‘낙오자’와 같은 낙인을 찍어 교문 밖으로 내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학교에 남은 이들이라고 해서 크게 달랐을까. 더는 학교 안에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 득 될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학생들은 자신의 환부를 숨기기에 바빴고, 그럴수록 상처는 점점 안으로 곪아 들어갔다. 결국, 상처를 오롯이 견디며 성장해 간다는 교육의 목표는 학생 개인에게 떠맡겨진 채, 학교는 그저 반복되는 시험과 순위 매기기를 위한 거대한 관료기구가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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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전 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


그러나 여기, 이 상처를 외면할 수 없어서 만들어진 학교가 있다. 이 학교의 학생 중 상당수는 공교육에서 쫓겨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입학을 거부당했다. 심지어 집 밖 외출이라고는 한 달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이들도 여기저기 널려 있다. 그들의 성격, 생김새, 그리고 집안 환경까지 모두 달랐지만, 학교와 사회로부터 거부당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장애인’이기 때문이었다.

 

1993년 8월 8일, 이처럼 공교육으로부터 소외된 장애성인을 위한 교육을 하겠다는 이들이 광진구 아차산 중턱에 있는 정립회관의 탁구장을 빌려 작은 학교를 열었다. 지금은 이날 개교식의 기록도 남아 있지 않지만, 지난 20년 동안 이 작은 학교를 거쳐 간 수많은 이들이 흘린 땀과 눈물의 기록을 모아 만든, ‘장편의 러브레터’ 같은 책 한 권이 탄생했다. 바로 ‘노들장애인야학 스무해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합시다>(홍은전 저, 까치수염)이다.

 

미련하고 무모한 사람들, 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이 책을 쓴 홍은전은 노들장애인야학에서 13년간 일해 온 왕고참 교사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대학 4학년 시절 도망치듯 노량진을 빠져나와 처음 찾아간 노들야학에서 어쩌다 13년을 보내고 나니 그녀는 “취미도 특기도 노들야학”인, ‘노들에 최적화된 인간형’이 되어버렸다고 고백한다.

 

신기하다. 연애편지가 아니고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런 낯 간지러운 고백을 자신이 몸담았던 한 공동체에, 그것도 ‘학교’라는 공간을 향해 애틋하게 내보이는 마음이… 어쩌다가 그녀는 이 작은 학교와 사랑에 빠지게 된 걸까?

 

저자가 이 작은 학교를 사랑하는 이유는 이 학교 사람들이 잘생겨서도 아니고 잘나서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성격이 좋아서도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의 인생사 곳곳에 난 상처를 예측할 수 없는 시점에 폭발해대기 일쑤였고, 이 때문에 교사고 학생이고 할 것 없이 누구나 마음에 생채기를 안고 살았다.

 

오히려 저자가 이 학교에서 느낀 매력은 ‘미련함과 ‘무모함’에 있는 것 같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이 책 곳곳에 담긴 노들 사람들이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무대뽀 정신의 역사’라 할만하다. 수십 년간 집안에서 수인(囚人)처럼 살아온 장애인을 야학에 데려오기 위해 봉고기사를 자임한 야학교사 현준은 매일 서울 동서남북을 다 찍어가며 새벽 2시까지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그의 역할은 운전에만 그치는 것도 아니었다. 전동휠체어도, 활동보조인도 없던 시절, 봉고기사가 된 야학교사는 “방 안에 누워 있는 학생을 야학 교실 책상 앞까지 이동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활동보조”를 해야만 했다.

 

이들은 ‘겁대가리’를 상실한 듯한 행동도 거침없이 해댔다. 학교 공간을 무상으로 대여해 주던 정립회관 측에 감히 ‘민주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고, 그 대가로 결국 쫓겨나고 말았다. 하지만 이들은 반성할 생각은 하지 않고, 쫓겨난 것을 기회 삼아 교육청에 찾아가 교육 공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교육청이 이를 거부하자 아예 마로니에공원에 천막을 치고 석 달에 걸쳐 길바닥 수업을 해버린다. 그리고 결국엔 금싸라기 땅 대학로에 교육공간을 얻어낸다.

 

심지어 목숨을 거는 무모한 행동을 하는데도 거칠 것이 없었다. 휠체어 리프트 추락으로 한 장애인이 숨졌다는 소식에 노들야학 교사와 학생들은 한달음에 서울역으로 몰려가 지하철 선로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를 외쳤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혀를 차며 ‘병신 육갑한다’고 욕을 했지만, 이들은 “좋습니다. 우리는 병신입니다. 그러나 당당한 병신으로 살고 싶습니다. 30년 동안 집구석에서 갇혀 지냈다고 아무리 말해도 안 들어주더니, 자신들이 당장 30분 늦으니까 저렇게 욕을 하는군요. 이제 그 병신들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 줍시다”라고 되받아친다.

 

“숨 쉬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이 차별”인 삶을 살았던 노들의 장애인들은 이처럼 미련하고 무모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들의 미련함과 무모함을 사랑했다. 서로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과감히 끌어안고 나아가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던 사람들을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매일매일 절망과 희망을 오가며 그 진폭을 에너지 삼아 교육하고 투쟁하는 노들야학에 홀딱 반해 버렸다”라고 두 손을 오글거리게 하는 사랑 고백을 늘어놓는다.

 

세상 모든 교육이 공유해야 할 가슴 뭉클한 동사 ‘노들야학하다’

 

아니, 어쩌면 그들의 미련함과 무모함은 ‘용기’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스스로 ‘병신’임을 자처하면서 지하철 선로에 누워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노들야학의 모습을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장면은 마치 30년 전 전태일이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그 모임을 ‘바보회’라 부르자고 제안했던 모습과 비슷하다. 전태일은 노동자들이 ‘바보’처럼 굴종하며 살아왔음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바보’라고 비웃는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진짜 ‘바보’처럼 들이박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장애인도 ‘당당한 병신’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부정’의 표지를 ‘자긍심’의 표지로 바꿀 수 있는 힘. 그것은 오직 싸우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전복적 힘이다.”

 

이런 ‘용기’를 통해 그들은 ‘장애해방’이라는 저 멀리 높은 곳에 있을 법한 고결한 단어를 온몸으로 잡아당겨 지금 당장 이곳의 현실로 내려놓았다. 또한 이 ‘장애해방’이 지금 이곳의 현실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기꺼이 타인의 삶에 휘말려 들어가고자 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함도 보여줬다. 그것은 한때 노들야학이 “교육이 우선이냐, 운동이 우선이냐”를 두고 논쟁하고 갈등하던 때, 노들 사람들이 보여준 실천 속에서 드러난다.

 

“누군들 충돌이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시기 몇몇 교사들에게는 고통을 견디며 끝까지 밀고 나가는 어떤 힘이 있었다. 두려움보다 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충돌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일상 속에서 묵묵히 실천으로 증명했다. 어떤 교육파 교사는 어떤 운동파 학생과 함께 살며 그의 자립생활을 지원했고, 어떤 운동파 교사는 연극 수업에 들어가 ‘데모’라면 기겁을 하는 학생의 삶에 오랫동안 귀 기울였다. 운동파가 교육파에게, 교육파가 운동파에게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교육이 절대 눈감지 말아야 할 것과 운동이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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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노들야학의 하루하루는 학교답지 않은 구석이 너무 많다. 데모하러 간다고 교사가 먼저 나서서 수업을 땡땡이치고, 하루가 멀다고 교사와 학생이 모여 앉아 술을 마셨다. 그러나 이것은 노들야학이 교육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교육을 그 본연의 의미대로 실현해 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들이 노들야학을 만나 처음 했던 일은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다니고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영화를 보는” 아주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그것은 또한 너무나 눈부신 일상이기도 했다. 그 일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들은 차별의 백만 가지 얼굴을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그들은 자연스레 “일상의 모든 현장이 교실이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이 가장 훌륭한 교과서다. ㄱㄴ을 가르치기 위해 때로는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들야학한다’는 말은 “깜빡거리는 형광등을 갈고 사라진 걸레를 찾아 돌아다니듯 사소할 뿐”인 일이기도 했지만, 온전한 삶을 빼앗긴 존재에게 필요한 건 적응이 아니라 저항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표현해내는 일이기도 했다.

 

이 책은 ‘노들야학하다’라는 동사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단어는 국어사전에는 없지만, 이 땅의 모든 교육이 품어야 할 본연의 가치를 온전히 담고 있는 단어이다. 밤에 열리는 학교(夜學)가 아닌 거친 들판 위의 학교(野學)인 이 작은 학교는 ‘노들야학하면서’, 평균에 미치지 못해 내쳐진 다양한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 그들이 지나온 수많은 길을 또 하나의 교실로 변모시켜왔다. 그렇게 그들은 교훈처럼 새로운 세상의 밑불이 되고 불씨가 되어왔다.

 

공교육 바깥에서 교육의 또 다른 희망을 만들어온 노들야학 20년의 역사를 담은 이 책을, 새로 선출된 13명의 진보교육감에게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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