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특별한 ‘나’, 사용 설명서
▲도토리 사용설명서(공진하 글, 김유대 그림) ⓒ한겨레 출판
‘나’는 특별한 조종장치를 가졌다. 엄마 말에 의하면 나는 다른 아이들과 눈곱만큼 다르다. 이러한 나의 특별함 덕분에 나는 집 앞에 있는 초등학교가 아닌 다른 초등학교에 다닌다. 나는 올해 2학년이 되었다.
새로운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 나를 알지 못하는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한시도 떨어져 본 적 없는 엄마와 잠시 떨어져 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두렵고 무섭기보다 그 낯선 세계가 신 난다. 거기서 새로운 친구도 만난다.
도토리 사용설명서(공진하 글, 김유대 그림)는 장애아동이 경험해 나가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움츠림 대신 발랄함을 보여준다. 이 책의 화자는 뇌병변장애가 있는 ‘유진’이다. 휠체어를 탄 유진은 혼자선 잘 움직이지 못하고 말을 잘하지 못한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이들은 유진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다가 유진은 엄마의 새 휴대전화 사용설명서를 보고 자신 또한 ‘도토리 사용 설명서’를 만들기로 한다. 도토리는 휠체어에서 내려오면 데굴데굴 구르는 유진의 모습을 본뜬 별명이다.
유진을 만나면 그의 왼손을 잘 살펴야 한다. ‘예/아니오’, ‘좋아요/싫어요’는 왼손 주먹을 꼭 쥐거나 손바닥을 쫙 펴는 것으로 표시한다. 오줌이 마려울 때는 손가락 하나, 똥이 마려울 때는 손가락 두 개, 둘 다 한꺼번에 마려울 때면 손가락 셋을 펴서 표시한다. ‘예/아니오’로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는 휠체어 뒤에 매달린 수첩에 붙여 놓은 글자표를 사용해 이야기할 수 있다. 유진은 그렇게 자신만의 ‘사용설명서’로 사람들과 소통해 나간다.
사회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고 언어는 구화가 가능한 사람들 중심으로 짜여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경계 밖으로 밀려난다. 심한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도 내면에 다양한 생각과 느낌이 있지만, 사람들은 이를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는다. 구화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이들은 자기 생각을 밖으로 다 표현해내기 전에 바깥에서 먼저 해석되어 진다.
그러나 이 동화책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 유진이 사는 ‘아홉 살 세계’는 장애/비장애로 철저히 나뉜 사회 이전의 사회다. 툭 하면 울음이 터지는 울보 유진의 시선으로, 자신이 있어 엄마가 행복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아홉 살 장애아동의 시선으로 쓰였다.
그리하여 움직임이 제 마음 같지 않고, 엄마와 담임교사 없이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이를 만났을 때 ‘오줌’이라는 표현이 전해지지 않아 바지에 싸게 되었을지언정, 딱 그만큼이다. 아홉 살 아이가 바지에 오줌을 지렸을 때의 속상함. 최대한 참고 참았는데 결국 지려버렸고 아침부터 온몸에 힘을 주고 울어대서 저녁 늦게까지 힘이 나지 않은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는 이야기.
이 책을 쓴 동화작가 공진하 씨는 현재 특수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자신이 아는 한 아이를 생각하며 썼다고 한다. 장애아동 유진의 시각으로 서술되는 이야기의 흐름은 흔들림 없이 투명하다.
아이도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계를 만난다는 것을, 언어장애가 심해도 그것은 바깥으로 터져 나오는 언어가 잘 표현되지 않을 뿐 자신 안에서는 이미 다 여물어 있는 생각과 느낌인 것을, 책장을 덮을 때쯤 새삼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