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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 책꽂이]

장애를 좀 알고 싶어졌습니다 

 

 

 

 송나현

노들야학 휴직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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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의 시선』 (김도현, 2025, 오월의봄)

 

 

  작년 즈음, 청솔2반 국어 수업을 하며 『늑대의 눈』이라는 글을 함께 읽은 적 있다(아주 예전에 「노들바람」에 실은 글에서도 언급한 수업이다). 이 동화의 주인공인 늑대와 소년은 오랜 대치 끝에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그들의 눈에는 상대편의 이야기가 비친다. 늑대의 눈에는 시베리아의 늑대들이 사는 골짜기가, 그리고 소년의 눈에는 불타는 아프리카의 밀림들이 있다. 『늑대의 눈』은 추운 나라에서 온 늑대와 더운 나라에서 온 아이가 각자의 눈에 비친 서로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이들의 눈길(시선視線)은 현재의 서로를 비추는 동시에 과거, 각자의 삶의 경로를 향해있다.

 

  막상 수업에서는 끝까지 읽지 못하고 중간에 멈춰버렸지만,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이 동화를 읽으며 여기서 묘사되는 시선의 성질에는 매우 중요한 통찰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선, 다시 말해 세계를 바라보는 위치성과 인식론은 시선의 담지자가 살아온 삶의 질곡을 증명한다. 동시에, 그 시선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으며 무엇을 향해 있고, 어떤 궤적을 그리는지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관계를 맺기 위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예전에 언뜻 읽은 적 있는 도나 해러웨이의 글, 「상황적 지식들(Situated Knowledges: The Science Question in Feminism and the Privilege of Partial Perspective)」을 빌려와 보겠다. 여기서 해러웨이는 전체론적이고 보편적인 과학의 사실 주장(truth claim)을 반박하며 시선의 문제를 언급한 바 있다. 과학은 대상을 초연한 눈으로 볼 수 있는 힘을 보편성과 객관성의 근거로 삼는다. 해러웨이가 보기에 이와 같은 과학의 주장은 모든 시각은 체화(embody)된 것임을 간과한 것이다. 페미니스트 인식론은 관점(vision)이 언제나 특정한 상황, 맥락, 그리고 몸에 빚지고 있음을 지적해 왔다. 해러웨이는 여기서 더 나아가 사실과 진실은 매우 구체적이면서도 활동적인, 부분적인 관점들(Haraway 1988: 583)에 의해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음을, 누군가의 세계가 진실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서의 ‘객관성’은 그러한 방식으로 정의되어야 함을 지적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론이라는 매체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론이 누군가의 삶과 경험에 대한 재현을 독차지하려 할 때, 그것은 설명보다는 폭력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론의 목적이 서로의 세계 속에서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 부분적인 관점(partial vision)을 바로세우고 소통하고자 하는 이야기하기의 한 형태라면, 더 많은 관점을 소통의 장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끊임없이 새롭고 튼튼한 논리를 발명해 나가는 이론에는 분명한 유효성과 힘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김도현의 책, 『장애학의 시선』은 매우 적절한 제목임에 틀림 없다. 그의 이전 책, 『장애학의 도전』은 학문적 객관성의 반대항에 있다 여겨지는 ‘편파성’과 ‘당파성’(김도현 2019: 40-41)을 외려 주장하며, 장애인이라는 피억압자의 관점을 ‘장애학’이라는 학제를 경유하여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이는 장애 운동 내에서 이론적 언어이자 논리와 합의를 형성하는 것으로서의 장애학을 드러내고, 또 풀어내고자 하는 시도였다. 『장애학의 시선』은 어쩌면 장애 담론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을 지녔던 이전의 책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이 책은 잔뼈 굵은 활동가이자 연구자인 김도현이 작업한 원고와 강연을 모아놓은 책으로서, 장애학의 관점을 한국 사회의 여러 이슈들과 소통시키고자 시도한다. 여기서 장애학은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는 사회변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선으로 등장한다. 즉, 장애학은 장애인의 문제만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실천되어야 하는 관점인 것이다. 그 시선은 책 전반에 걸쳐 젠더, 재난, 노동, 기후위기와 같은 주제들을 다루는 시선과 맞물리며, 그들에 스며들기도, 확장되기도 한다.

 

  그 중 특히나 마음에 와닿았던 몇몇 장을 소개해 보고 싶다. 3장, 「차별, 장애화, 불안전의 정치: 안전할 권리에 대한 관계적 성찰」은 재난 상황을 특수한 사례로 보는 대신, 재난의 피해자들을 안전할 수 없게 ‘만든’, 무능력(disability)보다 무능화(disabled)시킨 환경과 관계를 질문한다. 장애인이 참사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것은 장애로부터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부상과 죽음에의 취약함이 장애인에게로 집중된다는 것은 역으로 사회의 안전망이 비장애인의 몸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여기서 저자는 국가를 영토나 정부가 아닌 ‘(세력과 세력 간, 누군가의 요구가 제도를 통해 응축된) 관계’로 간주하며, 만일 장애인이 동등한 한 명의 시민이라면, 국가의 토대를 이루는 이 관계와 그 관계의 시간성이 조율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않는 안전이란, 소수자의 삶에 대한 권리를 존속시키는 제도를 통해 다른 국가를 상상하며 가능하다는 것이다.

 

  5장, 「장애해방운동의 역사와 향후 과제」는 장애운동이 늘 지금과 같은 모습을 지닌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장애운동을 1기(1980년대 말~1990년대 말)부터 2기(2001~2007년) 3기(2008년 이후)로 나누며, “장애인 운동에서 장애해방이란 어떻게 구체화될 수 있을까?”(117)이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이 장을 읽으며 특히나 눈에 띄는 것은 여기서 저자가 그려내는 약 40년의 장애운동 역사가 빈곤운동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최정환 열사와 최옥란 열사 모두 장애인인 동시에 노점상이었으며, 두 열사의 죽음은 각각 전장협과 전국노점상연합회의 공동투쟁, 그리고 ‘기본생활권 쟁취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현실화를 위한 연석회의’ 발촉과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빈곤사회연대)’ 구축으로 이어진다. 단단히 맞붙어있는 두 운동의 역사는 같은 인물을 애도하고 이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현재와 연결된다. 이 장을 읽으며 노들야학에 발을 들인 첫 해, ‘326전국장애인대회’에서 보았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최옥란의 죽음을 기점으로 한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요구는, 아직까지도 장애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제 폐지라는 핵심의제이자 숙제로 남아있다.

 

  이 두 장 외에도, 『장애학의 시선』에는 수많은 빛나는 글들로 가득하다. ‘손상과 장애’를 페미니즘 이론의 ‘섹스와 젠더’ 개념을 통해 고찰하는 2장, ‘장애’가 수많은 시간과 문화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톺아봄으로써 장애를 역사화하는 3장, 장애인 개인예산제를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한국에 필요한 ‘장애인권리예산제’를 구체화하는 6장, 장애인의 ‘공공시민노동’이 어떻게 노동해방을 향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지 기술하는 7장, 그리고 기후위기 속에서 장애인을 뒤에 남겨두지 않기 위한 정의를 찾아나가는 8장. 각각의 글들을 읽으며 분명해지는 사실은 장애학이란 단 하나의 관점이 아닌, 장애‘들’의 시선이라는 점이다. 이 모든 글에서 장애학이란 답을 내리기 위한 심판관이 아니다. 장애학은 다양한 문제와 맞닥뜨리며 빈곤 속에서, 노동 속에서, 기후위기 속에서, 장애가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집중한다. 그럼으로써 장애학은 어쩌면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문제를 새로이 정의내리며, 동시에 그 스스로의 관점 또한 갱신한다.

 

  청솔2반의 수업에서 계속 마음에 남는 말이 있다. 지하철 선전전을 바라보던 시민들의 눈에, ‘진짜 눈길’과 ‘가짜 눈길’이 있더라는 말이다. 이 말을 한 애경님은 혐오에 찬 시선은 가짜 눈길, 저 사람들은 왜 지하철을 멈추는지 궁금증을 보이는 눈은 진짜 눈길이라고 했다. 처음 선전전에서 지하철에 탔던 날, 지하철에서 애경님이 말한 ‘가짜 눈길’을 받고 위축되었던 나 자신이 생각났다. 가짜 눈길은 입을 다물게 만들고, 관계의 가능성을 단절시킨다. 그러나 김도현의 『장애학의 시선』은 세상에 장애의 시좌에서 말을 걸며, ‘가짜 눈길’을 ‘진짜 눈길’로 바꾸려는 시도이기에, 그리고 그 스스로의 눈길 또한 성찰하기에 지금 가장 필요한, 용감한 책이다. 여기서 장애는 장애인의 문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장애(인)의 관점은 세상이 배제한 것이자, 세계를 구성하는 또 다른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가 인용한 〈늑대가 나타났다〉에서도 말하듯, 장애는 ‘곧 당신의 일이 될 것’이다. 혹은, 이미 당신의 일이다.

 

 

[참고문헌]

 

김도현, 2019, 『장애학의 도전』, 오월의봄.

김도현, 2025, 『장애학의 시선』, 오월의봄.

Haraway, Donna, 1988, “Situated Knowledges: The Science Question in Feminism and the Privilege of Partial Perspective,” Feminist Studies 14(3): 575-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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