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겨울 144호 -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감정 아닌 공감 / 원윤식
[나는 활동지원사입니다]
감정 아닌 공감
원윤식
김탄진 활동지원사이자, 나답게 살아가고 있는 나
눈부신 햇살에 잠을 깨고 아침을 시작한다. 양치하고 머리 감고 세수하고 전기포트에 물을 끓여 따뜻한 커피 한 잔에 오늘도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보며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한다. 나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용자 이야기이기도하다. 서로의 그림자 같은 관계. 우린 이용자와 활동지원사이다. 처음 만남에서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삐쩍 마르고 꼬질꼬질한 모습에서 나 이전에 지원사가 어떻게 이용자를 돌봄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잘못됐다고 말하진 않겠다. 그분 나름의 방식대로 케어했을 뿐일 것이다. 이젠 내 차례다. 본래 깔끔 떨고 꼼꼼한 성격이라 우선적으로 이용자의 몸부터 케어했다. 검은 피부에 꾀죄죄했던 얼굴은 차츰 하얀 피부와 정돈된 머리 스타일로 바뀌었고 주변 반응도 완전 새사람이 됐다며 놀랐다.
그런 반응에 이용자도 너무나 흡족해했다. 대화도 점점 많아졌고 서로의 공통점도 알 수 있었다. 이용자의 과거사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시설에서 보냈던 지옥 같은 하루하루 “차라리 죽고 싶었다.” 라고 이야기 하실 땐 군 생활 하면서 나도 경험했던 통제와 강요, 구타라는 공통점에서 작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 분의 부탁으로 탈시설에 관한 독립영화 촬영에 게스트를 맡게 되셨고 스토리상 예전에 생활했던 시설에 가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용자가 실제 생활했던 공간을 보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용자와 교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큰 버스를 타고 어느새 철원 깊숙한 산골에 자리 잡은 시설 앞에 도착했다. 한눈에 봐도 딱 감옥이 연상되는 그런 건물이었다. 주위는 쥐 죽은듯 고요했다. 그 고요함 뒤로 저 안에서 암암리에 일어나고 있을 지옥 같은 일들은 이용자가 지내왔던 그때와 여전히 똑같을 것이다. 내부의 모습을 화면에 담으려고 관계자들과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인다. 쉽지 않을 것이란 건 버스 안에서 이미 말해왔던 부분이었다. 강경하게 막아서는 그들 앞에 쫓겨나듯 내몰린다. 철조망이 걸린 담벼락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눈물을 보이신다. 지금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선뜻 다가가 말을 걸기가 망설여진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그의 어깨가 축 쳐져있다. 긴 시간 창밖만 쳐다보신다. 기분 전환 겸 버킷리스트를 하나 해보자고 말했다. 평소 바다를 좋아하셨기에 부산에 바다 보러 가자고.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얼마 뒤 그렇게 우리는 KTX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이용자와 휠체어 탑승이라는 처음 경험해보는 열차 여행이었다. 부산에 도착해서 그날 일들은 생각나지 않도록 맛있는 것도 먹고 부산 명소도 찾아다니며 즐거운 시간만 기억에 남도록 해드리고 싶었다. 시간 내내 미소가 끊임 없으셨다. 마지막 날 오후 답답하다며 밖에 나가자 하신다. 쌀쌀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아무 말 없이 넓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신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가슴이 먹먹해 온다. 또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말판을 달라신다. 순간 떠오른 글귀들을 말판에 써내려 간다. 몇 줄 되지 않는 글을 보고 눈물이 흘렀다. 그때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와닿았다.

부산 바다를 바라보며 쓴 김탄진의 시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늘 같은 패턴에 반복적인 하루하루. 한 살 한 살 늘어가는 나이. 그렇게 세월이라는 벽 앞에 부딪힌다. 아픔의 시작은 가슴통증과 호흡곤란으로 시작되었다. 병원으로 가서 몆 가지 검사를 받아봤지만 또렷한 증상은 나오질 않았다. 꽉 막힌 시설에서의 생활이 탈시설한 20년 가까운 지금까지도 그 여파가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딱히 증상이 없기에 간단한 해결책으로 저녁식사 후에 집 근처 산책은 어떠신지 물어보았고 흔쾌히 그러자 하셨다. 집 근처를 산책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심적인 아픔이었을까. 조금씩 증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탁 트인 공간과 소소한 이야기들이 답답했던 가슴을 치유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한 곳이 좋아지니 다른 곳이 또 말썽이다. 골반이 아프다 하신다. 평상시 틀어진 자세가 오래 지속되다보니 이젠 버틸 만큼 버텨주어 제 힘을 다한 것이다. 수술을 해야 하지만 그마저도 심해진 강직으로 수술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해드릴 수 있는 건 통증크림을 발라드리는 것과 잠깐의 마사지가 전부였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기대치가 더 커지고 당연히 여기시는 모습에 적당히 선을 그을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것. 그것이 이 일을 하는 데서 가장 힘들게 다가온다. 차츰 나만의 방법을 찾아간다.
이용자가 기쁘면 같이 기뻐하고 슬프면 같이 슬퍼하고.
감정이 아닌 공감.
이용자와는 현재진행형이다. 순탄하지 않은 날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잘 풀어 나갈 것이다. 만남의 끝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일할 것이다.
나의 이용자 김 탄 진 님. 아니 형님.
건강하게 행복하게 오랫동안 가보자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