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가을 143호 - 2025년 노들 모꼬지 / 엄정섭
2025년 노들 모꼬지
엄정섭
노들장애인야학 미술교사
이번 모꼬지의 첫 행선지는 백미항이었어요. 비 오는 바다가 쓸쓸하다기보다는 바닷바람과 흩뿌리는 비, 여행의 설렘이 한데 섞여 시원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커다란 그릇에 내어 온 칼국수를 배부르게 나눠 먹었어요. 그 자리에서 정우 님과 처음 만났고, 이후에 저녁도 같이 먹고 숙소도 함께 쓰면서 얘기도 나눴습니다. 수업 밖에서 다른 노들 구성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게 모꼬지에서 얻은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지민 님을 추모하러 바위섬으로 향했습니다. 백미항에 내리자마자 보이던 회색 하늘 아래 푸릇푸릇한 섬이었는데, 물이 들어오면 섬이 되고 빠지면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 지민 님이 좋아하던 레쓰비를 나눠 들었습니다. 학생 한 분 한 분이 지민 님에 대한 기억의 단편을 보탰고, 지민 님이 그 공간에 바위섬으로 함께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지민 님을 만난 적이 없지만, 노들 구성원이었던 이분을 함께 기억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었습니다.

비가 와서 체육대회는 실내로 옮겨졌습니다. 모두가 토끼 모자를 쓰고 색색의 조끼를 입었습니다. 몸을 움직이고 웃음이 터지며 공기가 금세 후끈해졌습니다. O/X 퀴즈에서 “명희 선생님은 물구나무를 설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기억에 남아요. 저는 ‘그걸 어떻게 알지?’라고 생각했지만, 홍철 님이 자신만만하게 정답을 맞추셔서 그 후론 홍철 님 옆에만 붙어 있었어요. 이어달리기는 미션이 너무 복잡해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끝내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혼란조차 재미있었습니다. 박 터트리기는 박을 너무 단단히 고정해 둬서 좀처럼 터지지 않아 결국 손으로 박을 열었어요.
저녁을 뷔페로 속을 든든히 채우고 노래자랑이 이어졌습니다. 규형 님이 모자를 부메랑처럼 던지며 무대를 휘저으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누군가 앞으로 나와 노래를 부르면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나와 춤을 추었고,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 아쉬웠습니다.

다음 날 매향리로 갔습니다. 폭격 훈련장이던 곳은 지금 평화기념관과 공원으로 단정히 가꿔져 있었습니다. 맑은 날씨에 산책을 하며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으로 바뀌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일 님과 오래 걸으며 유년 시절 이야기와 노들에서의 수업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자에 누워 바람을 쐬니 마음이 오랜만에 느긋해졌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귀가했습니다. 이번 모꼬지에서 다닌 공간들만큼 새롭게 만나게 된 분들도 특별하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또 수업에서만 보던 얼굴들을 하루 종일 다른 리듬으로 만나는 게 즐거웠습니다. 다음 모꼬지가 벌써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