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가을 143호 - 지민이형 안녕! / 이예진
지민이형 안녕!
이예진
죽음이 무섭고 노들야학에서 활동합니다
2024년 12월
형은 너무 금방 죽어버렸다.
평등한 밥상 노란들판의 꿈에서 했던 쿵차 공연이 마지막이었다. 그날은 오랜만에 성호샘이 와서, 형들이 전부 공연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성호샘과 마시던 술잔을 못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았다. 결국 뽁작뽁작하게 형들을 겨우 데리고 와 공연을 했다.
형은 평밥이 끝나자마자 아프기 시작하더니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병세가 빠르게 악화되었고 그러고 병원에서 한 달 정도를 살았다. 그동안 이제는 자세히 기억나지도 않는 여러 일이 지나갔다.
나는 그 짧은 기간동안에도 어느 순간부턴가 형의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형이 죽기 열흘 전에 병문안을 갔었다. 형은 비쩍 말랐고 힘도 없었지만 그래도 우린 같이 음악도 듣고 대화도 했다. 형은 나름대로 힘을 내고 있었고 나 또한 형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학생들이 형을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회의에서 교사들이 면회 갈 때마다 학생들도 지민이형을 만날 수 있게 조금씩 함께 가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 다음 날 형이 죽었다.
주말 늦은 밤이었지만 사람들이 하나둘 병원으로 모였다. 메시지가 많이 올라왔지만 나는 너무 무서워서 몇 시간을 채팅창을 켜두고 벌벌 떨며 누워있었다. 새벽 2시쯤에나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택시를 탔다.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눈물이 많이 나다가도 갑자기 멍해지는 시간이 계속 지나갔다. 입관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형은, 음, 너무 작았다. 명학형이 관에다 "지민동생"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썼다. 슬펐다, 정말정말로. 추모제까지 끝내고 집에 가는 길에 동료가 계엄령이 떨어졌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엥? 진짜였다. 세상이 통째로 나를 속이고 혼자 앞으로 달려나갔다.
잠을 거의 못 자고 발인을 갔다. 오전 내내 말은 거의 안 했다. 돌아와서는 사람들이랑 점심을 먹고 세계장애인의날 투쟁과 계엄 이야기를 하며 하하호호 헤어졌다.
거짓말같이 12월을 보냈다. 정지민이 죽었다고? 에이 거짓말ㅋㅋ 계엄이 터졌다고? 에이 거짓말ㅋㅋ

2025년 1월
형은 백미항에 있다고 했다. 교사수련회가 끝나면 다 같이 형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마침 교사수련회 둘째날이 49재였다.
물이 빠진 항에는 휑한 돌길이 펼쳐져 있었다. 돌길을 쭉 따라 들어가다 거인의 비석 같이 크고 높은 돌 앞에서 형을 생각했다. 형이 좋아하던 막걸리랑 담배랑 레쓰비에 누군가의 핸드폰에 띄운 지민이형 사진을 판판한 돌 위에 올려두고 잠시 다 같이 형을 생각했다. 되게 신기한 게, 처음 거기 도착했을 땐 여기 형이 있단 게 거짓말처럼 느껴졌는데, 다 같이 조용히 형을 떠올리고 있으니 지민이형이 정말 거기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놀러온 줄 알고 찾아온 형의 영혼이라도 되는 건지 아님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어떤 공간감 있는 힘을 만든 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형이 잠깐 우리와 함께 있어주었다.
올해 모꼬지는 지민이형도 마지막으로 모꼬지 같이 갈 수 있게 여기로 오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모았다. 학생들도 다 같이 오면 너무 좋을 것 같았다. 항으로 들어가는 울퉁불퉁한 돌길에 휠체어 바퀴 빵꾸라도 나진 않으려나 소소한 걱정을 하며 백미항을 빠져나왔다.

2025년 6월
모꼬지는 학생들이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날이다. 여느 때처럼 주말 아침부터 야학에 모여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학생들은 지민이형이 있는 곳에 간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아침에는 정신이 없어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버스에 한참 탈탈탈 실려가며 반 년 전 왔던 길을 다시 가다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백미항에 도착했다. 뿌옇게 안개 낀 수평선을 배경으로 하는 한바탕 기념촬영 시간을 뒤로 하고, 썰물을 기다리며 점심을 먹었다. 슬슬 형과 친했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묘한 들뜸과 함께 지민이형을 만나면 어떤 말을 할지 와글와글한 고민들이 물결쳤다.
물이 빠지고 다 같이 지민이형 있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오래오래 사세요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야학에서 또 만나요
과일 아홉 박스 사서 갈게요” (장기형)
“오랜만에 왔네
일 때문에 바빠가지고
지민이형 안녕” (홍철이형)
학생들의 시간 관념에서 지민이형의 죽음은 어떤 걸까.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오래오래 살다가 야학에서 또 만나자는 말들이 쏟아졌다.
형은 야학에 가장 빨리 오는 사람 중 하나였다. 아직 몇 사람 출근하지 않아 조용한 사무실 문을 슥 열어보고 “나 왔어요. 뭐하세요?” 하고 실없이 말 걸어주던 사람이었다. 지민이형은 이제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줄 알았는데, 학생들의 말과 생각 속에서 지민이형은 예전의 지민이형답게 여전히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교사들 하고만 왔을 때는 잠깐 떠올랐다 살짝 닿고 갔던 형의 존재가, 학생들, 교사들 수십 명과 함께 우르르 찾아왔을 땐 엄청 크고 충만하게 느껴졌다. 지민아- 지민이형- 하고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정말 지민이형한테 닿고 있는 것만 같았다.
교사수련회 때 형을 만나러 온 것도 정말 좋았는데, 모꼬지 때 형을 만나러 오는 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좋았다. 야학에서의 사랑은 다른 어디보다도 특별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종종 있는데, 나중에도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이때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상하게도 죽음이 단절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너무 조그마한 형이 관에 들어가는 것도 불에 타버리는 것도 먼지가 되어버린 것도 분명 전부 내 눈으로 직접 보았는데, 그런데도 형이 없어진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기억해주는 사람들 덕에 이 사람의 존재가 이어지는구나. 죽음에 대한 여러 익숙하다 못해 식상한 표현들을 다시 떠올렸다.
이젠 없지만 동시에 계속 있는 정지민.
그런 사람을 알았나 잊고 살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쿵 하고 다시 생각나는 정지민.
지민이형 안녕! 또 만나!




고개 숙인 그대여
눈을 떠 보세 귀도 또 기울이세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 찾을 수 없이 밤과 낮 구별 없이
고개 들고서 오세 손에 손을 잡고서
청춘과 유혹의 뒷장 넘기며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러요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한대수, 행복의 나라)